장세규 목사지난 목요일에는 박경춘 집사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암 수술을 하고 이제 회복될 만 할 때 사고를 당했습니다. 몸의 75%에 3도 화상을 입고 워싱턴 호스피탈 센터에 입원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화상 전문 의료팀이 맡았습니다. 의사들은 화상 정도와 나이를 고려할 때 생존율은 전혀 없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수차례의 수술을 비롯한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숨졌습니다. 성도의 마지막 가는 길 곳곳에서 격려와 은혜를 맛 볼 수 있었습니다.

화상전문센터에서 일하는 전문가들까지도 최악의 상황이라고 하면서도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난 50년의 기록을 보면 생존율이 전혀 없지만 그래도 지난 1-2년 동안에 새로 나온 약과 기술을 보면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다고 하면서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크게 격려 받았습니다. 화상 환자를 다루는 중증환자실이어서 감염에 특히 주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가족과 교우들의 방문에 짜증내지 않고 변함없이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격려해 주었습니다. 폐에 차오르는 물 때문에 더 이상 스스로 생존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가족과 목사를 부르게 했습니다. 담당 의사가 가족에게 마지막이라고 통보 할 때 본인도 이민자로서 가족의 아픔을 잘 이해한다고 흐느껴 울면서 가족들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가족들과 교우들이 중환자실 작은 방에 가득 서서 예배를 드리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중환자실 문 밖에 물과 소다, 과일을 담은 탁자가 왔습니다. 가족들과 친지들이 임종하는 시간에 지치지 않도록 병원에서 배려해 준 것입니다.

숨 거두기 며칠 전에 가족들과 교우들이 모인 자리에서 의식이 돌아 왔습니다. 비록 말을 할 수는 없어도 눈을 뜨고 표정으로 몸짓으로 대화하면서 아내와 아들, 그 동안 10년 동안 같이 지내던 교우들과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평소의 모습 그대로 장난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농을 치면서 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마지막 날 숨거두기 직전에도 사랑한다는 고백과 잘 가라는 인사를 다 듣고 있는 듯 평온한 얼굴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기고 가는 가족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습니다.

장례를 준비하면서 시신 수습과 화장을 맡아 줄 장의사를 구했습니다. 마침 24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미국인 친구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목사 되기 전 사업할 때부터 서로 신뢰하고 가까이 지내던 친구였습니다. 목사가 된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던 친구였습니다. 하던 사업 다 정리하고 목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휴가 보내라고 호숫가에 있는 자기 별장을 내 주던 친구였습니다. 연락을 받고는 마치 자기 일처럼 돌봐 주었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 모든 편의를 다 봐 주었습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열심으로 섬기던 성도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배푸신 자상하고 풍성한 은혜 가운데서도 가장 크게 감사할 일이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함께 삶을 나누었던 쎌교회 가족들입니다. 어려울 때 위로를 나누고, 고비가 있을 때마다 마음과 물질로 돕고, 모일 때마다 만날 때마다 즐거이 사랑 나누고, 친 형처럼 친 누이처럼 아끼고 사랑하던 쏄교회 가족들이었습니다. 큰 수술을 할 때도 의지할 가족이 되어 주고 사고를 당해 생명이 경각에 달릴 때도 교대로 그 곁을 지켜주고 보호자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마지막 장례를 치를 때까지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사랑으로 섬겨 주었습니다.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자매들이여." 찬송가 가사처럼 천국의 가족이 나누는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함께 누릴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고, 섬기고, 돌보면서 더 큰 슬픔을 안고 서로 위로하여 준 모든 쎌교회 가족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드립니다. 천국 길 가신 박경춘 성도께서도 똑 같이 인사하시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