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저는 ***라고 하는 사람인데요. 며칠 전 한국에서 사업차 이곳에 들렀다가 지금 아주 난처한 상황에 빠져있습니다. 혹시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없으신지요?...” 전화 저편에서 한 남성분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지요? 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아셨는지 혹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예, 하도 급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이 전화번호를 발견했습니다. 씨애틀은 초행길이라 아는 사람도 없고, 지금 있는 곳에서는 당장 나가야 하는데 차편이 없습니다. 혹시 택시를 이곳까지 좀 보내주실 수 없으신지요?” “그러지 마시고 주소를 말씀하시면 제가 가서 도와드리겠습니다. 택시를 어떻게 보내드려야 하는지 아는 바도 없고, 설령 보내드린다해도 초행길이시라면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또 낭패를 보실 수도 있으니 제가 가서 도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밤 10시 30분이 훌쩍 넘어 저는 그 분이 계시다는 북쪽으로 갔습니다.
사실 약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너무 늦은 밤이었기에 다음 날 새벽기도에 대한 부담이 있었고 어떤 상황인지 잘 알지 못하고 낯선 곳을 찾아가고 있었기에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화로도 느낄 수 있는 한 사람의 낙심의 무게를 외면할 수 없었고, 또 선한 이웃이 되라 하신 주님의 말씀도 기억이 났습니다. 가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초행길에 이런 일을 당했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오죽 힘이 들었으면 나한테까지 전화를 걸게 되었을까? 혹, ‘LA에서 왔는데 개스비가 떨어졌습니다’라는 유의 사람들은 아닐까? 어디까지 도와줘야 하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도착한 곳은 많이 어두운 곳이었습니다.
약간의 고성이 들려온 뒤에 집 밖으로 나온 한 남성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이십니까?” “예 그런데요…” 곧 이어 그 남자 뒤를 따라 나온 한 여성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어느 교회 목사예요? 지금 우리 집 양반하고 이 양반하고 한 잔하면서 사업 얘기를 하다가 뭔가 틀어져 이러는 거니까 남의 일에 간섭할 생각, 하지 마세요…” 엥? “집사님도 이러는 거 아니예요! 왜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어요!” 그 남자도 지지 않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맡겨 놓은 돈을 주시란 말입니다!!!” 다 듣지 않아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참 씁쓸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웃을 도와주려던 한 사람의 숭고한(?) 마음을 ‘남의 일에 상관 하지 말라’는 매몰찬 한 마디로 매도해버린 것보다, 오히려 서로를 ‘집사님’이라고 부르는 그 말이 더 아팠습니다. 어떻게 예수를 주로 믿는다는 두 그리스도인의 만남이 이렇게 끝이 날 수 있을까? 그들이 교인이 아니고 제가 목사가 아니었더라도, 이런 일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먼 길을 찾아 왔다면 먼저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마땅한 일일 텐데 어떻게 집사님들이 술을 마시다 싸움을 하고 그래서 목사가 먼 길을 찾아왔는데 ‘어느 교회 목사냐’고,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라’고 따지듯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왜 나는 또 목사로써, 그런 슬픈 이 시대 교회들의 자화상을 향하여 말씀으로 권면하는 일을 그리 쉽게 포기하고 돌아왔을까? 정말 회개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하여 정말 애통한 심정을 가지고 회개하는 참된 목사, 그리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
사실 약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너무 늦은 밤이었기에 다음 날 새벽기도에 대한 부담이 있었고 어떤 상황인지 잘 알지 못하고 낯선 곳을 찾아가고 있었기에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화로도 느낄 수 있는 한 사람의 낙심의 무게를 외면할 수 없었고, 또 선한 이웃이 되라 하신 주님의 말씀도 기억이 났습니다. 가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초행길에 이런 일을 당했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오죽 힘이 들었으면 나한테까지 전화를 걸게 되었을까? 혹, ‘LA에서 왔는데 개스비가 떨어졌습니다’라는 유의 사람들은 아닐까? 어디까지 도와줘야 하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도착한 곳은 많이 어두운 곳이었습니다.
약간의 고성이 들려온 뒤에 집 밖으로 나온 한 남성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이십니까?” “예 그런데요…” 곧 이어 그 남자 뒤를 따라 나온 한 여성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어느 교회 목사예요? 지금 우리 집 양반하고 이 양반하고 한 잔하면서 사업 얘기를 하다가 뭔가 틀어져 이러는 거니까 남의 일에 간섭할 생각, 하지 마세요…” 엥? “집사님도 이러는 거 아니예요! 왜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어요!” 그 남자도 지지 않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맡겨 놓은 돈을 주시란 말입니다!!!” 다 듣지 않아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참 씁쓸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웃을 도와주려던 한 사람의 숭고한(?) 마음을 ‘남의 일에 상관 하지 말라’는 매몰찬 한 마디로 매도해버린 것보다, 오히려 서로를 ‘집사님’이라고 부르는 그 말이 더 아팠습니다. 어떻게 예수를 주로 믿는다는 두 그리스도인의 만남이 이렇게 끝이 날 수 있을까? 그들이 교인이 아니고 제가 목사가 아니었더라도, 이런 일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먼 길을 찾아 왔다면 먼저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마땅한 일일 텐데 어떻게 집사님들이 술을 마시다 싸움을 하고 그래서 목사가 먼 길을 찾아왔는데 ‘어느 교회 목사냐’고,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라’고 따지듯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왜 나는 또 목사로써, 그런 슬픈 이 시대 교회들의 자화상을 향하여 말씀으로 권면하는 일을 그리 쉽게 포기하고 돌아왔을까? 정말 회개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하여 정말 애통한 심정을 가지고 회개하는 참된 목사, 그리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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