虎死留皮人死留名 즉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이다. 신라 진평왕(서기628년) 때, 지난해에 몰아닥친 서리 한파로인해 백성들은 자식까지 팔아 먹을만큼 극심한 흉년을 맞이하였다. 일반 백성들뿐 아니라 관공서의 관리들도 생계에 위협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에 舍人(사인) 이란 직위의 말단 공무원들이 모여서, 국고에 비축되어 있는 곡식을 도적질하여 피차 연명하기로 모의하였다. 그러나 화랑의 낭도로서 사인들과 함께 근무하는 ‘검군’이라는 사내는 “굶어 죽으면 죽었지 화랑의 명예를 더럽힐 수는 없다” 며 그 모의에 가담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이렇게 되니 검군의 동료들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입만 벙긋하면, 자기들의 목숨을 잃는 것은 한 순간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검군을 죽이기로 합의하고 검군에게 자기들의 모임을 아무에게도 알리지말고 조용히 오라고 전달하였다. 명석한 두뇌를 지닌 검군이다. 그 부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있는 그는 모시고 있던 근랑을 찾아가서 “오늘 이후로는 다시는 뵙지 못하겠습니다”라며 하직 인사를 하였다.
이에 그 까닭을 묻는 근랑에게 검군은 화랑의 명예를 걸고 지금 자기가 한 말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노란 약속을 받아내곤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사정 이야기를 들은 근랑은, 바른 사람이 그처럼 무의미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니 그 전모를 사직 당국에 밝히고 오히려 그들을 고발하는 것이 옳다고 권했다. 그러나 검군은, 이와같은 나라 형편에 목숨을 건지기 위해 누군들 그만한 범죄를 범하지 않겠는가고 하면서 결연히 사지로 들어가 동료들이 주는 독배를 마시고 죽고 말았다. (삼국사기 “열전”)
대부분의 사람은, 누구나 양심이 있어 시시비비를 명백히 알면서도 정의로운 삶을 살지 못하고 양심의 가책을 억누른채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간다. 일반 소인들의 삶이 그러하다. 그러나 검군같은 사람들이 소수이기는 하나 아직도 존재하기에 이 땅은 그래도 살만하다. 그들은 목전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앞날에 나타날 진정한 유익과 가치를 위해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며 선한 삶을 굳게 지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역사가는, 어리석을만치 옳고 바른 삶을 살면서 남달리 의로운 삶을 살다간 검군 같은 삶을 찾아 살려내어, 시간이라는 세계 속에 영생시키고 있다. 이것은 의인이 비록 현세에서는 이루지 못하였으나 죽어서라도 받는 보상의 하나인 “명예”라는 것이다.
이씨 조선 세조 때 단종을 복위시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충신 성삼문이 아직 벼슬에 나가지 않았을 때 이야기이다. 누이를 시집보내야 하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혼수 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때 마침 성삼문의 집에서 도망친 종이 황해도에서 큰 부자로 살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삼문의 아버지는 그 종에게서 혼수비용을 뜯어내리라 작정하고 삼문에게 다녀오라고 했다. 삼문은 내키지 않았지만 아비의 명이라 하는 수 없이 길을 떠났다. 그러나 어느 산중에서 노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노인이 다음과 같이 얘기를 해 줬다. “사람은 의로서 이름을 남겨야지 종이나 붙잡아 돈을 뜯어내는 그런 구차한 짓을 해서는 안됩니다” 삼문은 크게 깨달아 가던 길을 돌이켜 집으로 돌아왔고 이 말을 평생 명심하다가 나중에 명분있는 의로운 죽음을 함으로써 그 이름을 천추에 남겼다고 한다.
사람이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출세해서 묘비명에 거창한 행적과 직위를 새기는 것이 아닌 것이다. 역사는, 어떤 사람이 가졌던 지위와 소유를 찾은 것이 아니라 그가 이룬 의를 평가하여 재 발굴하는 것이다. 의인은 뭇사람의 존경을 받음이 당연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의인들이 생존시에는 세인들의 미움과 멸시를 받고 고통속에 살다가 가는 것이 상례이다. 그 대표적인 예는 물론 예수님 아니던가 ?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참고 견디는 자와 그 후손에게 축복해 주신다 약속하셨다.(마5:10, 시75:10)
“우물쭈물 살다가 내 이렇게 될줄 알았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어느 시인의 묘비명이다. 그래도 당대 최고의 상인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인데, 스스로의 삶을 평가한 허탄한 외침인가 ? 세월의 허망함은 나이가 들어갈 수록 깊어가는 듯하다. 20년전 아니 10년 전의 1년의 속도는 지금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1년이 지금의 1달이 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하루를 사는 깊이가 낮아진 것은 아닌지 ? 참으로 깊이 있고 품위있게 오래도록(육신의 수명을 말함은 아님) 살고픈 심정은 모두의 바램일 것이다.
목전의 이익에 급급하고, 현재의 명성 쌓기에 집착하면서, 물질 끌어 모아 남기기에 열중하는 삶이라면, 세상에서 잘 산 것 같지만 별 볼일 없는 인생이요 기껏해야 한 두 세대 정도 기억되는 단명의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를 위해 살아간다면 비록 핍박받아 초라하게 산 것 처럼 보이지만 이름을 후손에게 오래도록 남기는 귀한 삶인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삶을 쫒기듯 초조하게 살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 의연하게 의를 추구하며 사는 삶을 소망해 본다. dahn1957@gmail.com
이에 舍人(사인) 이란 직위의 말단 공무원들이 모여서, 국고에 비축되어 있는 곡식을 도적질하여 피차 연명하기로 모의하였다. 그러나 화랑의 낭도로서 사인들과 함께 근무하는 ‘검군’이라는 사내는 “굶어 죽으면 죽었지 화랑의 명예를 더럽힐 수는 없다” 며 그 모의에 가담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이렇게 되니 검군의 동료들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입만 벙긋하면, 자기들의 목숨을 잃는 것은 한 순간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검군을 죽이기로 합의하고 검군에게 자기들의 모임을 아무에게도 알리지말고 조용히 오라고 전달하였다. 명석한 두뇌를 지닌 검군이다. 그 부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있는 그는 모시고 있던 근랑을 찾아가서 “오늘 이후로는 다시는 뵙지 못하겠습니다”라며 하직 인사를 하였다.
이에 그 까닭을 묻는 근랑에게 검군은 화랑의 명예를 걸고 지금 자기가 한 말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노란 약속을 받아내곤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사정 이야기를 들은 근랑은, 바른 사람이 그처럼 무의미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니 그 전모를 사직 당국에 밝히고 오히려 그들을 고발하는 것이 옳다고 권했다. 그러나 검군은, 이와같은 나라 형편에 목숨을 건지기 위해 누군들 그만한 범죄를 범하지 않겠는가고 하면서 결연히 사지로 들어가 동료들이 주는 독배를 마시고 죽고 말았다. (삼국사기 “열전”)
대부분의 사람은, 누구나 양심이 있어 시시비비를 명백히 알면서도 정의로운 삶을 살지 못하고 양심의 가책을 억누른채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간다. 일반 소인들의 삶이 그러하다. 그러나 검군같은 사람들이 소수이기는 하나 아직도 존재하기에 이 땅은 그래도 살만하다. 그들은 목전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앞날에 나타날 진정한 유익과 가치를 위해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며 선한 삶을 굳게 지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역사가는, 어리석을만치 옳고 바른 삶을 살면서 남달리 의로운 삶을 살다간 검군 같은 삶을 찾아 살려내어, 시간이라는 세계 속에 영생시키고 있다. 이것은 의인이 비록 현세에서는 이루지 못하였으나 죽어서라도 받는 보상의 하나인 “명예”라는 것이다.
이씨 조선 세조 때 단종을 복위시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충신 성삼문이 아직 벼슬에 나가지 않았을 때 이야기이다. 누이를 시집보내야 하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혼수 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때 마침 성삼문의 집에서 도망친 종이 황해도에서 큰 부자로 살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삼문의 아버지는 그 종에게서 혼수비용을 뜯어내리라 작정하고 삼문에게 다녀오라고 했다. 삼문은 내키지 않았지만 아비의 명이라 하는 수 없이 길을 떠났다. 그러나 어느 산중에서 노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노인이 다음과 같이 얘기를 해 줬다. “사람은 의로서 이름을 남겨야지 종이나 붙잡아 돈을 뜯어내는 그런 구차한 짓을 해서는 안됩니다” 삼문은 크게 깨달아 가던 길을 돌이켜 집으로 돌아왔고 이 말을 평생 명심하다가 나중에 명분있는 의로운 죽음을 함으로써 그 이름을 천추에 남겼다고 한다.
사람이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출세해서 묘비명에 거창한 행적과 직위를 새기는 것이 아닌 것이다. 역사는, 어떤 사람이 가졌던 지위와 소유를 찾은 것이 아니라 그가 이룬 의를 평가하여 재 발굴하는 것이다. 의인은 뭇사람의 존경을 받음이 당연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의인들이 생존시에는 세인들의 미움과 멸시를 받고 고통속에 살다가 가는 것이 상례이다. 그 대표적인 예는 물론 예수님 아니던가 ?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참고 견디는 자와 그 후손에게 축복해 주신다 약속하셨다.(마5:10, 시75:10)
“우물쭈물 살다가 내 이렇게 될줄 알았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어느 시인의 묘비명이다. 그래도 당대 최고의 상인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인데, 스스로의 삶을 평가한 허탄한 외침인가 ? 세월의 허망함은 나이가 들어갈 수록 깊어가는 듯하다. 20년전 아니 10년 전의 1년의 속도는 지금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1년이 지금의 1달이 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하루를 사는 깊이가 낮아진 것은 아닌지 ? 참으로 깊이 있고 품위있게 오래도록(육신의 수명을 말함은 아님) 살고픈 심정은 모두의 바램일 것이다.
목전의 이익에 급급하고, 현재의 명성 쌓기에 집착하면서, 물질 끌어 모아 남기기에 열중하는 삶이라면, 세상에서 잘 산 것 같지만 별 볼일 없는 인생이요 기껏해야 한 두 세대 정도 기억되는 단명의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를 위해 살아간다면 비록 핍박받아 초라하게 산 것 처럼 보이지만 이름을 후손에게 오래도록 남기는 귀한 삶인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삶을 쫒기듯 초조하게 살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 의연하게 의를 추구하며 사는 삶을 소망해 본다. dahn195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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