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 위치한 선교지를 방문할 때, ‘애양원’을 잠시 들렸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곳에서 목사인 내가 어떤 원칙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깊이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 순교기념관에서 구입한 책 <하얀 불꽃>, 이 책은 손양원 목사님의 일생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따라가며 창작을 가미한 전기동화입니다. ‘신앙인 손양원 목사’ 안에 있는 ‘자연인 손양원’의 고뇌에 초점을 맞췄기에 쉽게 읽을 수 있는 동시에 깊은 생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책들과 자료를 참고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들에 기초해서 기록되었고, 연령과 상관없이 읽을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1902년 경남 함안군에서 손종일 장로와 김은주 집사의 장남으로 태어난 손양원 목사님은 동방요배 거부로 칠원공립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서 퇴학 위기를 맞고, 부친 손종일 장로의 독립운동으로 인해 중학교에서 퇴학됩니다. 하지만 1924년 경남성경학교에 입학하며 주기철 목사님을 만나게 되고, 23세 때에 18살인 정양순 양과 결혼을 합니다. 유명한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지만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여수 경찰서에 구속되고, 광주 구치소로 옮겨가 재판까지 받게 됩니다.
그 남편에 그 아내인가요? 여수 경찰서에서 광주 구치소로 옮겨갈 때 잠깐의 만남 속에서 이런 대화가 오갑니다. “어, 어디로 가십니까?” “광주로…” 남편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정 여사는 포대기 앞섶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손바닥만한 성경책이 딸려 나왔다. 정 여사가 접어두었던 페이지를 펼쳐 다급하게 손 목사 눈앞에 들이대며 속삭였다. “목사님, 이 말씀 아시지요? 신사참배에 응하면 내 남편 될 자격 없습니다. 영혼 구원도 못 받습니다. 아시지요?” 손 목사의 초췌한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뺨에도 불그레하게 핏기가 돌았다. “염려 마오. 기도나 해 주구려.” 그제야 정 여사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어났다. 이신전심. 안도의 웃음이자 믿음의 웃음이었다. 웃음 끝에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정 여사가 펼쳐 보인 성경 구절이 손 목사의 가슴에 콕 박혔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장 10절)
손 목사님의 일기 중에 ‘예수 중독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예수 중독자가 되어야 하겠다. 술 중독자는 술로만 살다가 술로 죽게 되는 것이고, 아편 중독자는 아편으로만 살다가 아편으로 죽게 되나니, 우리도 예수의 중독자 되어 예수로 살다가 예수로 죽자. 우리의 전 생활과 생명을 주님을 위해 살면 주같이 부활된다. 주의 종이니 주만 위해 일하는 자 되고 내 일 되지 않게 하자.” 정말 신앙과 원칙을 지키려는 손 목사님의 굳은 의지를 알 수 있는 일기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홉 가지 감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자가 나왔으니 하나님께 감사.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 어쩌면 이렇게 귀한 보배 사역을 나에게 맡겨주셨으니 하나님께 감사. 셋째. 3남 3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자와 차자(次子)를 바치게 하신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 넷째. 두 아들이나 순교 하였으니 하나님께 감사. 다섯째. 누워서 죽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복인데 끝까지 전도하다가 총살로 순교 당했으니 하나님께 감사. 여섯째. 미국을 가려고 준비 중이었던 두 아들을 미국 보다 더 좋은 천국에 보내주셔서 내 마음을 안심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 일곱째. 내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시킨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 여덟째. 두 아들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맺어 질 듯이 믿어지니 하나님께 감사.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속에서도 이상(理想)의 진리(眞理)와 사랑과 신애(信愛)를 찾는 기쁜 마음과 여유 있는 믿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
그런데 이 감사 기도를 한 시점이 더 도전이 됩니다. 여순사건 때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한 두 아들 동인(23세), 동신(18세)의 장례식 답사에서 행한 것입니다. 슬픔이 잦아든 후에 믿음의 모습으로 고백한 것이 아니라, 가장 슬픈 그 시간에도 원칙과 중심을 지키며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두 아들을 총살시켜 죽인 ‘안재선’을 양 아들로 삼아서 그를 목사로 만듭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이 정말 어울리는 분입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후퇴하는 인민군 공작대원들에 의해 49세라는 짧은 인생을 마감합니다. 그 날은 국군이 서울을 탄환한 날이고, 손 목사님의 막내 아들이 태어난 날이기도 합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의 애양원은 정말 평화로웠습니다. 손 목사님이 계실 때에는 나환자들에게 더 천국이었을 겁니다. 왜? 그 영혼들을 사랑하는 목자가 있었기 때문에. 참된 사랑과 믿음을 심어준 아버지 같은 분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 애양원에 있는 ‘성산교회’에는 성경을 통째로 외우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한센인들 중에는 병 때문에 시각 장애를 가지게 된 분들이 꽤 있는데, 그 분들은 성경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성경을 외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원칙은 무엇일까요?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그 원칙을 너무나 쉽게 버리는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손양원 목사님의 삶을 통해 다시 한 번 신앙의 원칙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원칙이 우리의 영혼을 지키고 가정을 인도하며, 교회다운 교회로 이끌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안에서 원칙을 회복해서, 이 사회 속에서 상실된 교회 모습이 다시 바로 서기를 소망하고, 예수님의 이름이 아름답게 회복하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훈 하늘뜻섬김교회 담임목사(www.servingod.org
1902년 경남 함안군에서 손종일 장로와 김은주 집사의 장남으로 태어난 손양원 목사님은 동방요배 거부로 칠원공립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서 퇴학 위기를 맞고, 부친 손종일 장로의 독립운동으로 인해 중학교에서 퇴학됩니다. 하지만 1924년 경남성경학교에 입학하며 주기철 목사님을 만나게 되고, 23세 때에 18살인 정양순 양과 결혼을 합니다. 유명한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지만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여수 경찰서에 구속되고, 광주 구치소로 옮겨가 재판까지 받게 됩니다.
그 남편에 그 아내인가요? 여수 경찰서에서 광주 구치소로 옮겨갈 때 잠깐의 만남 속에서 이런 대화가 오갑니다. “어, 어디로 가십니까?” “광주로…” 남편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정 여사는 포대기 앞섶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손바닥만한 성경책이 딸려 나왔다. 정 여사가 접어두었던 페이지를 펼쳐 다급하게 손 목사 눈앞에 들이대며 속삭였다. “목사님, 이 말씀 아시지요? 신사참배에 응하면 내 남편 될 자격 없습니다. 영혼 구원도 못 받습니다. 아시지요?” 손 목사의 초췌한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뺨에도 불그레하게 핏기가 돌았다. “염려 마오. 기도나 해 주구려.” 그제야 정 여사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어났다. 이신전심. 안도의 웃음이자 믿음의 웃음이었다. 웃음 끝에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정 여사가 펼쳐 보인 성경 구절이 손 목사의 가슴에 콕 박혔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장 10절)
손 목사님의 일기 중에 ‘예수 중독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예수 중독자가 되어야 하겠다. 술 중독자는 술로만 살다가 술로 죽게 되는 것이고, 아편 중독자는 아편으로만 살다가 아편으로 죽게 되나니, 우리도 예수의 중독자 되어 예수로 살다가 예수로 죽자. 우리의 전 생활과 생명을 주님을 위해 살면 주같이 부활된다. 주의 종이니 주만 위해 일하는 자 되고 내 일 되지 않게 하자.” 정말 신앙과 원칙을 지키려는 손 목사님의 굳은 의지를 알 수 있는 일기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홉 가지 감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자가 나왔으니 하나님께 감사.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 어쩌면 이렇게 귀한 보배 사역을 나에게 맡겨주셨으니 하나님께 감사. 셋째. 3남 3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자와 차자(次子)를 바치게 하신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 넷째. 두 아들이나 순교 하였으니 하나님께 감사. 다섯째. 누워서 죽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복인데 끝까지 전도하다가 총살로 순교 당했으니 하나님께 감사. 여섯째. 미국을 가려고 준비 중이었던 두 아들을 미국 보다 더 좋은 천국에 보내주셔서 내 마음을 안심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 일곱째. 내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시킨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 여덟째. 두 아들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맺어 질 듯이 믿어지니 하나님께 감사.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속에서도 이상(理想)의 진리(眞理)와 사랑과 신애(信愛)를 찾는 기쁜 마음과 여유 있는 믿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
그런데 이 감사 기도를 한 시점이 더 도전이 됩니다. 여순사건 때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한 두 아들 동인(23세), 동신(18세)의 장례식 답사에서 행한 것입니다. 슬픔이 잦아든 후에 믿음의 모습으로 고백한 것이 아니라, 가장 슬픈 그 시간에도 원칙과 중심을 지키며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두 아들을 총살시켜 죽인 ‘안재선’을 양 아들로 삼아서 그를 목사로 만듭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이 정말 어울리는 분입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후퇴하는 인민군 공작대원들에 의해 49세라는 짧은 인생을 마감합니다. 그 날은 국군이 서울을 탄환한 날이고, 손 목사님의 막내 아들이 태어난 날이기도 합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의 애양원은 정말 평화로웠습니다. 손 목사님이 계실 때에는 나환자들에게 더 천국이었을 겁니다. 왜? 그 영혼들을 사랑하는 목자가 있었기 때문에. 참된 사랑과 믿음을 심어준 아버지 같은 분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 애양원에 있는 ‘성산교회’에는 성경을 통째로 외우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한센인들 중에는 병 때문에 시각 장애를 가지게 된 분들이 꽤 있는데, 그 분들은 성경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성경을 외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원칙은 무엇일까요?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그 원칙을 너무나 쉽게 버리는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손양원 목사님의 삶을 통해 다시 한 번 신앙의 원칙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원칙이 우리의 영혼을 지키고 가정을 인도하며, 교회다운 교회로 이끌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안에서 원칙을 회복해서, 이 사회 속에서 상실된 교회 모습이 다시 바로 서기를 소망하고, 예수님의 이름이 아름답게 회복하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훈 하늘뜻섬김교회 담임목사(www.servingo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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