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 시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종교개혁자 칼빈과 그를 따르던 몇 개혁자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제네바대학 정면의 넓은 광장을 둘러보는 일은 제에게는 큰 관심거리였습니다. 제네바대학 정면 맞은 벽에 새겨진 캘빈과 다른 종교개혁자들의 부조를 보면서 저는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 곳에는 네 사람의 종교 개혁자들이 서 있었습니다. 화렐(Farel)과 칼빈(Calvin)과 베자(Beza)와 존 낙스(John Nox) 바로 그 네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저는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에 따라 각 사람들을 자신의 역할과 재능에 따라 적절하게 잘 사용하시구나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화렐이 없는 캘빈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캘빈 없는 베자는 생각할 수가 없으며, 베자의 학교로부터 영국의 가장 위대한 복음전도자인 존 낙스가 배출되었기 때문입니다.
벽에 새겨진 인물 부조의 순서를 보면 우선 화렐이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얼굴이 깡마른 캘빈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캘빈 옆에는 베자와 존 낙스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처음 개신교의 복음은 화렐을 통하여 제네바 시에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화렐의 청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칼빈의 “나의 심장을 당신에게 바칩니다”(Cor Meum tibi opere prompte et sincere!)라고 하는 헌신으로 오늘날의 장로교가 제네바 시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장로교의 정치적 체계와 신학적인 기반은 칼빈의 제자였던 베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구체화된 복음은 존 낙스에 의해 스코틀랜드로 전해지면서 개신교 칼빈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신앙고백이 퍼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 속에 나오는 한 사람 여호수아를 생각해 봅니다. 그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수장된 사람으로서 마치 칼빈을 뒤를 이어 장로교를 세웠던 베자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여호수아의 나이는 자신에게 약속된 땅을 자력으로 쟁취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기력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던 갈렙과 비슷한 연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퇴 명령에 따라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정리했습니다. 저는 이런 여호수아로부터 소박한 한 사람의 신앙인의 얼굴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사명을 깨달아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를 깨달았고, 또한 자신의 남은 때를 깨달아 자신을 잇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자신의 역할을 마무리하는 오직 하나님의 뜻과 영광만을 위해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 말입니다.
여호수아는 어쩌면 자신보다 먼저 종교개혁을 시작한 칼빈으로부터 대업을 물려받은 베자와 같은 역할의 사람이었습니다. 칼빈이 세운 신앙을 물러 받아 베자가 제네바 대학을 세우고 칼빈주의 신학의 기초를 구체화하고 신조들을 정비했던 것처럼,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들을 성취하고 그 뜻을 성취하는 역을 맡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위대했던 것은 자신은 마치 화렐이 진정한 미래의 유익을 위해 칼빈에게 복종하고 그의 도우미를 자처했던 것과 같이 오직 하나님의 명령을 자신의 유익보다 기꺼이 앞세웠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역사의 중심인물 내지는 모든 역사가 ‘나’ 중심적으로 쓰여지기를 바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위대한 선구자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대업을 다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후계자를 선정하는 문제 역시 하나님의 뜻에 맡겼습니다(신18:18). 모세가 죽기 전에 예언했던 “나와 같은 한 선지자”로 뽑혀진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들을 성취하기 위해 선택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위해 일찍부터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장막으로 돌아간 후에도 회막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성막을 지키며 기도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시내산으로 등정한 후 기약 없는 40여 일이 지난 후에도 그는 산 중턱에서 그를 기다렸던 충실한 모세의 종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는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와 낙심에 빠진 다른 이들과 달리 오히려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음을 고백했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미 준비된 사람일 뿐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격려하고(1:7),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라합을 이스라엘 백성으로 편입시켰던 일이나, 비록 강력한 유다지파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아간의 종교적인 죄에 대해 공정한 판단을 가했으며, 또한 기브온 거민에게 속아 거짓된 약조를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중시하여 그 약속을 이행하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위대한 사람이었던 것은 자신이 물러나야 할 때를 알았고 또한 후손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즉 후손들이 언약을 따라 자신들에게 주어진 남은 언약을 성취할 것을 격려하기를 잊지 않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를 평하기를 단지 ‘모세의 종, 여호수아’라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의 종, 여호수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1,24:29).
결국 우리가 그로부터 받는 교훈은 그는 삶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곧 여호수아는 자신의 모든 삶의 가치와 목표를 역시 하나님의 명령에 맞추어 살아감으로써 진정한 성도의 삶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이란 본문의 말씀에서 얻을 수 있는 두 번째의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또 다른 언급에서 발견됩니다. 즉,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란 말씀입니다. 이 본문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얻을 땅이 매우 많다”는 말은 이미 땅들이 정복되었으나 아직도 정복해야 할 남은 땅들이 많다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의 흥미를 끄는 이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 이미 어떤 땅들이 정복되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정복되지 않은 남은 땅들을 누군가가 정복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 없는 이스라엘이 과연 이 일을 해 낼 수 있을까하는 노파심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답변을 우리는 본문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나의 명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6)라고 말씀합니다. 즉, 이스라엘에게 땅을 분배해 주는 일은 곧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여호와의 종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일부 성취되었으나, 그러나 그 마저도 하나님 자신이 그 약속들을 스스로 성취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모세 때, 바산 왕 옥의 온 나라를 빼었었던 것(12)도 하나님에 의한 것이며, 레위지파에게는 하나님 자신이 기업이 되신 것도 자신의 결정으로 된 것이며, 또한 아모리 사람 시혼의 온 나라와 시혼의 방백 즉 미디안 귀족들을 죽인 것도 하나님이며, 브올의 아들 술사 발람을 죽인 것 역시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르으벤지파와 갓 지파를 위시해 므낫세 반 지파에게 준 땅들 역시 하나님이 주셨다는 말씀을 본문은 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가나안 정복은 곧 하나님 자신의 작품이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정복했던 모든 땅들 역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성취였던 것입니다. 여호수아 23장 43절에서 4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맹세하사 주마 약속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으며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의 모든 땅의 정복과 분배는 자신의 작품이었으며 곧 남은 땅을 정복하는 문제 역시 자신이 성취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이 말씀은 고대인들의 “땅”에 얽힌,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비교되는 모든 가치와 목표를 하나님이 곧 섭리하시고 주장하신다는 말씀과 함께, 오늘날 우리에게 “삶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교훈으로 간접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얻는 교훈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에게 땅을 약속하시고 그 땅을 나누어주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며,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한 그 약속은 변함없이 그 백성들에게 성취되어지며, 또한 미래의 모든 약속의 성취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위해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점입니다. 준비된 사람, 그리고 오직 하나님을 자신의 목표와 가치관으로 생각하는 사람, 즉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들을 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수아를 기억해야 할 이유는 그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람이었지만 역사의 다른 페이지를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소용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김호환 박사의 신학단상 (18)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여호수아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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