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Starbucks에 앉아 아이들 성경공부를 준비하다가 창가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은 적이 있습니다. 돋보기를 콧잔등에 걸친 채 책을 읽고 있는 한 남자의 풍경이 전혀 낯설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처진 눈꺼풀, 또 안경 너머로 창가에 비친 또 다른 저를 바라보고 있던 저의 모습이 영락없이 아버지의 그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찾아온 노안에 당황하셨던지, 아버지는 “큰~일 났네. 하나도 안보여…”라는 말을 연신 되풀이하곤 하셨었는데, 오늘 제가 그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안’이라 함은 보통 40대가 되면서 가까운데 있는 것을 잘 보지 못하게 되는 증상을 말합니다. 눈 속의 수정체가 탄력을 잃어, 가까운데 있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조절해주는 능력을 상실하게 될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몇 주 전에도 설교본문이 잘 보이지 않아 혼이 났던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양미간을 찌푸리고, 또 실눈을 치켜 뜨고 읽으려고 해도 읽을 수가 없어, 당황하고 또 상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노안상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월요일이 되면 길고 긴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됩니다. 아이들의 콧노래는 점점 높아만 가고 부모들의 시름은 하염없이 깊어만 가는 계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이들 셋과 이 여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조금은 부담스런 마음이 되어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이런 것이 영적 노안의 증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까운데 주어진 행복의 기회를 기회로 읽지 못하고 그것을 부담으로만 읽는 저의 영적 시력이 제게 참으로 문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싶습니다. 2년만 지나면 곧 하람이가 대학생이 될 것이고, 또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면 하영이도, 하원이도 모두 자기 길들을 가고 없을 터인데, 왜 나는 이런 시간들을 기회로 여기지 못하고 부담으로만 여기고 있는 것인가…이제 '정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머니도, 아내도, 교우들도, 또 나 자신까지도, 모두 모두 자기 길들을 가고 없을 터인데 왜 나는 이렇게 주어진 기회들을 행복의 기회로 삼지 못하는 것일까…정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까운데 주어진 천국의 기회들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의 주위를 한번 둘러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여러분들에게 허락하고 계신, 그 가까이에 있는 기회들을 한번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애쓰고 수고함으로 그 기회들을 지극한 행복의 기회로 삼으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천국은 이미 가까운데 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