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제자도의 필수 조건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눅9:23). 주님을 따르는 길은 고난과 죽음이다. 그런데 나는 성공과 행복을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목회가 점점 힘든 것 같다.

자기 부인은 이기주의, 자기 중심성, 자기 숭배 이런 것들을 극복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모두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다. 자기 행복이 중심이 된 사람들은 교회는 즐겁게 다녀도 주님을 따라가라면 힘들어 한다. 제자도에서 자기 중심성을 부정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없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기적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자선을 배풀고 선행을 할 때조차도 이기적이라고 한다. 선행의 보상으로 신의 은총이나 행복감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것도 이기적인 동기가 숨어있다. 기독교인들도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십자가를 지는 것을 연결하셨다. 자신에 대해 먼저 죽어야 주님을 따를 수 있다. 그 당시 사회에서 십자가는 정죄받고 권리를 박탈당한 후 메달려 죽는 형틀이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고난과 죽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고난받다 죽어야 할 지 모른다.

본 회퍼는 나치에게 교수형을 당하기 전에,“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 그는 와서 죽으라고 명하신다”는 글을 남겼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에게 자기를 부정하고 죽은 자가 되라는 것은 따르기 쉬운 말이 아니다. 그런데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고백했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다.

요즘 사람들이 선호하는 교회는 “유쾌한 환경에서 위안을 받으며 즐기고 마음을 달래주는 느낌을 누리면서도 별로 부담을 주지 않는” 그런 교회다. 대중적 교회들은 이런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 호의를 배푸는데 충실하다. 고객친화적인 교회(user friendly church)가 되었다.그러지 못하면 수평이동하는 교인들을 묶어 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회마다 주님의 고난을 이야기 하는 주간이 되었다. 나의 삶과 관련짓지 않는 고난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두자. 눈물흘리며 묵상해서 뭐 하나. 주님을 따라가고 싶은 교인들은 편하게 교회다니고 싶은 유혹과 싸워야 한다. 편한 시설과 안락한 분위기를 제공하는 곳보다 주님을 위해 수고하며 고난받을 수 있는 곳으로 나가라. “온천탕 교회"는 몸에는 좋지만 영혼은 병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