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들이 당하는 고통에 뜻이 있다고 하지만 너무 일찍 그 비밀을 알게 된 아이. 생명을 위협하는 화상을 입고 겨우 살아남았는데 그 후 더 지독하고 참기 힘든 외로움 속에 7년간 눈물 섞인 도시락을 먹던 아이. 그 아이는 자라 생명의 말씀을 확신 있게 전하는 사람이 됐다. 그 확신은 성경을 보고 배워 얻은 게 아니라 그를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내 지금까지 인도하고 계시는 분을 만나고 체험한 데서 나온다.
2007년 울산중앙침례교회를 세워 담임을 맡고 있는 김남성 목사. 그는 지난 5월 21일 워싱턴침례대학 신학대학원으로부터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졸업식 다음날인 22일엔 버지니아거광교회 초청으로 주일 예배 강단에도 섰다.
그날 김 목사는 창세기 12장 4-5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삼았다. 초점은 5절 뒷부분에 나오는 ‘아브람이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는 대목에 있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가나안에 실제 들어가는 경험이 없어요.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배우고 또 그렇게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삶으로 체험하는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신앙인들을 구원받았다고 말하기가 솔직히 어렵습니다.”
자칫 오해하기 쉽고 듣기 거북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이유는 아브라함처럼 예배하는 자, 승리하는 자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현대 크리스천들을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에서다. 오래 전 당했던 사고의 흔적은 그의 몸에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그를 살려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은 그때보다 지금 더 강렬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들이 ‘신나’라는 화학물질이 들어있는 드럼통 주변에서 불장난을 하다 일으킨 대형 폭발사고는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놨다. 전신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가 과산화수소가 들어있는 욕조에서 끔찍한 목욕을 했다. 미이라처럼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채 6개월. 너무나 상처가 처참해 의사들도 처음에는 소망이 없다고 했는데, 아무런 치료도 안했는데 붕대 안의 그의 몸은 기적같이 새로운 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기억에 없는데 제가 과산화수소로 목욕을 하며 아파 부르짖을 때 예수님의 이름을 그렇게 불렀답니다. 어머니는 제가 그토록 찾던 예수님이 살려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고통은 퇴원으로 종료되지 않았다. 여전히 온몸을 붕대로 감싸고 등교해야 했다. 무서운 몰골인 데다 냄새까지 나니 아이들은 가까이 하지 않았다. 점심 시간은 더욱 괴로운 시간이었다. 못된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다른 곳에 가 먹으라며 도시락을 복도에 내팽개쳤다. 그 음식들을 다시 주워 담아 화장실로 갔다. 냄새가 코를 찌르는 그곳이 혼자 식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그 찬양을 수없이 불렀습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도시락을 먹었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존재와 사랑은 의심해본 적이 없습니다.”
철부지 노릇을 하는 게 오히려 당연한 나이에 바위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모태 신앙 덕분이었다. 김 목사는 항상 교회가 좋았다. 그러나 신앙이 없는 아버지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와 교회에 갔다 돌아오니 불이 꺼져 있었다. 방에 어머니가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비명이 들렸다. 칼을 품고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옆구리를 찌른 것이다. 그 아버지는 이후 집을 나가버렸고 20여년이 훨씬 지나 폐인의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2006년 목사 안수를 받고 이듬해 교회를 개척해 이끌고 있는 김 목사는 그런 간증들을 품고 목회에 올인하고 있다. 특히 기도와 말씀으로 정결케 되는 신앙의 중요성을 늘 강조한다.
기독교 방송 울산 CBS TV와 라디오, 울산 극동방송 등에서 설교하며 왕성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김 목사는 설교를 너무 직설적으로 한다는 말도 듣지만 조금도 양보할 생각은 없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를 건져내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든든한 후원자이기 때문이다.
<워싱턴 한국일보>
2007년 울산중앙침례교회를 세워 담임을 맡고 있는 김남성 목사. 그는 지난 5월 21일 워싱턴침례대학 신학대학원으로부터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졸업식 다음날인 22일엔 버지니아거광교회 초청으로 주일 예배 강단에도 섰다.
그날 김 목사는 창세기 12장 4-5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삼았다. 초점은 5절 뒷부분에 나오는 ‘아브람이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는 대목에 있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가나안에 실제 들어가는 경험이 없어요.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배우고 또 그렇게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삶으로 체험하는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신앙인들을 구원받았다고 말하기가 솔직히 어렵습니다.”
자칫 오해하기 쉽고 듣기 거북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이유는 아브라함처럼 예배하는 자, 승리하는 자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현대 크리스천들을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에서다. 오래 전 당했던 사고의 흔적은 그의 몸에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그를 살려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은 그때보다 지금 더 강렬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들이 ‘신나’라는 화학물질이 들어있는 드럼통 주변에서 불장난을 하다 일으킨 대형 폭발사고는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놨다. 전신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가 과산화수소가 들어있는 욕조에서 끔찍한 목욕을 했다. 미이라처럼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채 6개월. 너무나 상처가 처참해 의사들도 처음에는 소망이 없다고 했는데, 아무런 치료도 안했는데 붕대 안의 그의 몸은 기적같이 새로운 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기억에 없는데 제가 과산화수소로 목욕을 하며 아파 부르짖을 때 예수님의 이름을 그렇게 불렀답니다. 어머니는 제가 그토록 찾던 예수님이 살려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고통은 퇴원으로 종료되지 않았다. 여전히 온몸을 붕대로 감싸고 등교해야 했다. 무서운 몰골인 데다 냄새까지 나니 아이들은 가까이 하지 않았다. 점심 시간은 더욱 괴로운 시간이었다. 못된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다른 곳에 가 먹으라며 도시락을 복도에 내팽개쳤다. 그 음식들을 다시 주워 담아 화장실로 갔다. 냄새가 코를 찌르는 그곳이 혼자 식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그 찬양을 수없이 불렀습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도시락을 먹었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존재와 사랑은 의심해본 적이 없습니다.”
철부지 노릇을 하는 게 오히려 당연한 나이에 바위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모태 신앙 덕분이었다. 김 목사는 항상 교회가 좋았다. 그러나 신앙이 없는 아버지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와 교회에 갔다 돌아오니 불이 꺼져 있었다. 방에 어머니가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비명이 들렸다. 칼을 품고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옆구리를 찌른 것이다. 그 아버지는 이후 집을 나가버렸고 20여년이 훨씬 지나 폐인의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2006년 목사 안수를 받고 이듬해 교회를 개척해 이끌고 있는 김 목사는 그런 간증들을 품고 목회에 올인하고 있다. 특히 기도와 말씀으로 정결케 되는 신앙의 중요성을 늘 강조한다.
기독교 방송 울산 CBS TV와 라디오, 울산 극동방송 등에서 설교하며 왕성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김 목사는 설교를 너무 직설적으로 한다는 말도 듣지만 조금도 양보할 생각은 없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를 건져내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든든한 후원자이기 때문이다.
<워싱턴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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