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에피소드는익명성을 위해서 당사자들의 신분과 이름, 상황 등은 각색이 되었음을 알림)

필자가 지역사회 봉사 및 위기 현장에서의 전도와 상담사역의 일환으로 워싱톤주의 킹카운티에서 경목으로 10여년 봉사하던 중의 한 이야기이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 진다고 어떤 이가 말했는 지, 주로 비상호출 전화는 밤에 오고, 그 중 한 날도 어김없이(?) 새벽에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급작스런 경찰 상황실의 호출이다. 한인이 연루된 가정폭력의 사건이라는 내용만 듣고 두 어 시간도 못자고 달려간 곳은 지역의 한 주택가의 한 집. 본인을 알아보고 맞이하는 먼저 온 동료 경목과 출동한 경찰관의 설명은 한인 부부가 사는 가정인데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여 현장체포를 당하였다는 것이다. 가해자인 남편은 경찰차 안에 격리되어 있고 그 아내와 아들은 집 안에서 흥분되고 황망한 마음으로 앉아 또 다른 경찰관에게 이것 저것 대답을 하고 있었다. 상황이 현저한 것이, 경찰에 신고한 당사자는 아버지의 폭행을 보다 못한 제3자인 그 집 아들이었고, 육체적 외관상 폭행의 증거들과 함께, 현장 조사중에 기물들을 부수고 위협하고 폭행을 행사한 것이 처음이 아닌 여러 번의 가정폭행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현장에서 그 남편을 체포하여 그 가정으로 부터 분리시켜야 했다.

아들과 함께 육체적, 정서적 상처를 갖고 눈물짓는 그 중년 피해여성을 어느 정도 위로하고, 접근금지 명령을 받고 부인과 가정으로 부터 강제로 격리를 당하여 이동하는 가해자 남편과 대화를 하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대략적 설명을 해 주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이유가 무엇인지 등 저간의 사정들에 대한 대화들을 나누었다. 통상 가정폭행의 가해자가 보이듯이 그는 처음부터 변명 일색이었고, 자기 합리화를 하고, 가정에서 있을 수 있는(?) 가벼운 폭행(?)을 행사한 정도가 무엇이 그리 큰 일인지 이 미국이란 나라에서 유난을 떤다는 식이었다. 하나, 점차 시간이 가며, 가정에서의 폭력이 실정법상의 범죄행위가 되며, 결국 그것으로 인해 본인은 범죄인으로서 재판을 받게 되고, 그에 대한 댓가를 치뤄야하며 가족으로 부터 강제 생이별을 당하여 입은 채로 경찰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온 상황을 점점 실감하면서 다소 후회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실망과 다소의 충격이 된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이 분이 어느 교회의 장로님이라는 사실이었다.

가정이란 곳은 모든 이들에게 특별한 곳이다. 안식과 회복, 격려와 위로, 준비와 양육 그리고 성장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런 가정에서의 가장 중요한 관계단위는 부부관계이다. 상담에서는 이를 실행적 하부구조(Executive Sub-System)라 부른다. 왜냐하면 부부관계는, 부모관계나 형제관계 등의 다른 어떤 하부단위 관계들보다 우선하며 중요한 결정과 기능을 행사하는 우선적 관계의 단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결혼을 통하여서 이루게 되는 가정을 축복하시고, 구별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인류전반을 향한 명령에 대한 순종이 실현되는 곳이 가정이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을 이루어 가지게 되는 것이 부부관계이다. 그리고 창세기 2장 24절은 ‘….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새로운 부부관계로 인한 새로운 가정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중요시 하심을 보여 준다.

물론 이것은 관계들 중의 우선성에 관한 이야기이지 다른 가족관계들 안에서의 윤리적 의무와 도리들을 등한시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런 연고들로 인해서 신앙의 모범을 보이고 귀감이 되어야 할 사람이 세상의 실정법과 가족관계 중의 가장 중요한 부부관계의 도리를 저버리는 일은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할 가정을 ‘화의 근본’으로 만들어 고통과 실망, 그리고 배신감을 초래하는아주 고약한 범법임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의 큰 불법과 불순종이 되는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축복하시되 우리의 가정을 그 시작으로 삼으셨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가정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우리의 불순종, 범법, 미약함으로 인해 가정을 ‘화의 근원’이 되도록 이끌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과 존중, 하나님의 말씀의 순종과 실천으로 ‘복의 근원’으로 가꾸어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