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그리스도인과 모든 그리스도의 공동체 및 교회는 자신이 처한 그 시대의 영적 필요충족 여건에 따라 자신의 신앙고백을 결정한다.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과 모든 공동체나 교회는 그가 속한 매시대마다 영적 요구에 따라 자신들의 정체성(Identity)을 새롭게 정립해야 하고, 자신이 지금까지 지켜온 진리를 새롭게 재해석해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된다.

곧 이 의무는 소위 우리가 말하는 나 개인의 신앙고백(Credo)으로, 혹은 공동체의 공동된 신앙고백인 신경(Creed)나 각 교파의 신앙 고백적인 성격을 띈 신학(Theology)으로 발전하게 된다.
21세기의 초두에 들어선 우리들은 이 시대적인 새로운 요청, 즉 우리 신앙의 새로운 정체성 확립이라는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당면한 이 시대의 진정한 영적 화두(話頭)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주제를 새롭게 적용하고 실천하는 작업이 요청된다.

21세기의 기독교의 최고의 관심사는 영성의 회복에 있다. 이 영성에 대한 관심은 현대주의, 즉 서양의 역사에서 종교개혁이래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이성적인 신앙만을 추구해온 교회가 필연적으로 자초한 영적 공백을 메우는 일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새로운 신학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후기 현대주의 사상인 포스터모더니즘(Postmodernism)은 타종교와의 대화를 통해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 전락시킴으로서 기독교의 독창성을 훼손하고 있다. 또한 지난 기독교 역사상 친 이성주의적 성향에 반대하여 극단적인 탈 이성주의로 전향함으로써 새로운 신비주의적인 형태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때를 즈음해서 기독교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적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궁구(窮究)하게 된다. 곧 영성신학을 위한 새로운 시도와 그 영성신학을 우리들의 장(場)인 교회에 확립 실천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의 초두부터 거론되고 있었던 영성이란 주제는 다양한 시각으로부터 다양한 정의가 진술되고 있었다. 대체로 복음주의적 시각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의 실천에 초점을 두고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이성적이고 논리주창적인 전통적 신앙 고백에 고착된 근본주의적 복음주의는 각 교파마다 가파른 이론신학에 얽매인 나머지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시대적 답변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자유주의적인 경향을 띈 교회들은 예수중심의 신학에서 신(神) 중심의 신학으로 전환한 나머지 기독교와 타종교의 경계선을 지워 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오히려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의 모든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를 즈음에 새로운 영성에 대한 재해석의 시각이 한 세기 전부터 구체적으로 불거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전혀 이론신학에 근거하여 출발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독특한 체험을 통해 새로이 경험되고 진술된 실천목회로부터 나타났다.

20세기로부터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형태의 영성의 모습은 이론으로부터가 아닌 전혀 다른 영적 체험의 시각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분명히 기독교의 본질을 전통적인 신앙고백에 정초(定礎)시켜야 함은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대의 영적 공허함을 메우는 일은 이론이 아닌 위로부터의 주어진 영적 체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20세기초로부터 출발된 오순절운동은 바로 전혀 예기치 않았던 부분으로부터 불거져 나와 새로운 밀레니움을 넘어서고 있는 기독교 교회들에게 중요한 자극과 시야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세기초에 발생했던 오순절운동(Pentacost Movement)은 더 이상 한 교파 혹은 집단의 신앙고백으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직접적으로는 18세기 요한 웨슬레이 부흥운동과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새로운 이 성령운동은 지난 하반세기를 풍미한 초교파적 은사주의 운동(Charismatic Movement)으로 연계되었고 급기야 지난 세기 1980년 중반의 소위

“제 3의 물결”이라고 하는 영성운동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인 교조적인 신학중심의 체계가 아닌 체험중심의 새로운 영적 운동이 나타났다는 것은 분명히 그 신학적인 기반에 취약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이 영적 체험신앙이 새로운 신학적 전통을 발굴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모든 신학이 이미 성경을 통해 설정된 진실을 통해 얻은 고백에 기초하고 있음을 잘 안다. 그러나 역사상 모든 신학은 각 개인 혹은 공동체의 신앙적인 반성, 곧 개별적인 체험을 통해 재해석되어 나타나고 있다. 곧 20세기에 나타난 영적 체험들은 새로운 신학의 발굴 및 과거 신학의 재해석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21세기로 이어지고 있는 영성운동과 그 운동의 신학적인 논리는 예수님의 사역을 재평가하도록 한다. 단순히 예수님의 사역을 “구령”(救靈)으로 묶어두지 않고 하나님나라의 회복을 위한 “능력복음 사역‘(Power Evangelism)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회복과 하나님나라의 회복은 곧 인간구령이라는 대 주제와 또한 잃어버린 통치의 회복이라는 측면, 즉 사탄에 대한 심판이라고 하는 대 주제들을 포함하게 한다.

이러한 신학적인 시각은 전통신학이 오랫동안 간과해 왔던 부분이었다. 분명히 능력 사역과 영적 대결을 통한 하나님나라의 회복이라는 대 주제는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함으로써 그의 제자들에게 자연스럽게 각인(刻印) 되어져 나갔다. 바울이 기록한 성경들에 나타나고 있는 성령을 통한 능력사역과 사탄에 대한 구체적인 지적들은 마치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와의 대결구도의 양상을 띄게 하기도 한다(엡6:10-20, 히2:14-16). 후에 바울에게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요한사도의 글들에게서 우리는 좀 더 구체적인 구령과 능력사역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요일 2:20,27;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