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30년경에 로마가 전 세계를 점령할 당시, 대조를 이루는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네로라는 황제요, 한 사람은 바울이라는 평민이었다. 네로는 황제였고, 바울은 낮은 시민이었고, 네로는 수십 명의 처와 첩을 가졌고, 바울은 한 명의 연인도 없었다. 네로는 수많은 재산과 권력을 가졌고, 바울은 집도 땅도 권력도 없었다. 네로는 휘하에 신하와 군사도 많았고, 바울은 따르는 자도 별로 없었고, 네로는 상아궁, 악어침대에서 잠을 잤고, 바울은 아무데서나 자는 떠돌이였다, 네로는 산해진미, 육선을 먹었고, 바울은 거지처럼 먹었으며, 네로는 왕이지만 처, 이복동생, 어머니, 기독교인들을 많이 죽였고, 바울은 평민이지만 주리고 목마른 자를 먹였고 병든 자를 고쳤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했다. 네로는 바울을 죽였고 자살로 인생을 끝냈고, 바울은 순교로 생을 마쳤다.
역사가들은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위대한 삶을 살았는가를 안다. 지혜 있는 여러분도 누가 옳은 삶, 값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았는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고양이나 개에게 이름을 붙일 때는 네로라고 붙이고, 훌륭한 사람, 귀한 사람 되라고 이름을 붙일 때에는 바울이라 이름을 붙여준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있던 것도 다 빼앗기고 얻어맞아 거반 죽게 되어 방치되었다. 그 광경을 길 가던 제사장이 보았으나 길을 피하고 구조의 손길을 주지 않고 외면하였다. 레위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사마리아 인은 죽어가는 자를 불쌍히 여겨 응급처지를 해주고 병원에 데려가서 자기 돈을 지불하여 치료해주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고 하셨다.
현대의 한국 사람에게 강도 만나 죽게 된 자는, 다름 아닌 탈북자들과 북한 주민이다.
2000년 전까지 북한에서 굶어서 죽은 자가 300명이 넘는다고 탈북자들이나 외신은 보도하고 있다. 탈북자의 77%가 자기 친인척 중에 굶어서 죽은 자가 있다고 말했으며, 96.9%가 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진술했다. 그들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 즉 생존을 위해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을 통해 동남아 지역과 러시아로 탈출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반겨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움막에서, 산 속에서, 동굴에서, 체포와 강제 송환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여인들은 성매매 당하면서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체포되어 강제 송환되면 수십 년간을 수용소에서 고생과 고문을 당하고 때로는 교수형, 총살형으로 죽어간다. 그들은 지금도 강도를 만나 거의 죽어가고 있다. 김정일이란 강도를 만나서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고, 먹고 살기위해 피난 가는 자를 다시 잡아들려, 비참하고 처절하게 고통을 주거나 처형하고 있다.
강도만나 거반 죽어가고 있는 탈북자들과 북한 동포들을 구출해야 함이 한 국민의 시급한 과제이다. 제사장되는 종교지도자나 레위인 되는 신자들이 외면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이 도움을 주어 그들을 살려냈다. 그들이 미국의 인권단체, 국회의원, 행정부요원들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닌가?
수년전에 미국의 NED 회장 Carl Gershman은 말하길 "주민 참상에 대해 침묵만 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했고 국방포럼 재단 회장이며 NKFC의 회장인 Suzanne Scholte는 말하길 "탈북자의 증언은 외부 세계가 북한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며 그들은 살아 있는 증인이다. 이런 참상을 묵과하는 것은 죄악이다.", "북한 김정일 독재체재야 말로 모든 문제의 출발이다. 만약 북한에 김정일 체제가 없었다면 핵 위협도 없고 엄청난 기근으로 주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이 예측불가 능한 상황을 만들지 못하도록 포괄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며 더 이상 북한의 눈치만 봐서는 어떤 정책도 성공하기 힘든 만큼 이제는 운전석에 앉아 북한의 인권문제, 내부개혁 문제, 탈북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나가야 한다"라고 했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다
그렇다. 강도 만나 죽게 된 탈북자들과 북한 주민을 살리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이를 외면하는 것은 죄악이다. 성경은 더 적극적으로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다. 마태복음 25: 31-46절에 보면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 즉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었고 병들고 감옥에 가 있는 사람을 돌보아 주지 않는 자를 영벌에 처한다고 했다. 지옥에 간다는 말이다.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동족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지나쳐 버리는 제사장, 레위인이 되서는 안 된다.
북한의 악정, 김정일 독재를 무너뜨리도록 대북풍선 날리기 운동에 우리는 적극 참여 해야 한다.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밀어내고,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키는 시민운동이 중동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기회를 못 잡는다. 호기를 간파해야한다
성직자의 사명은 무엇이며 신자들의 할일은 무엇일까? 탈북자 구출과 북한정권을 도말하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한 사람은 네로라는 황제요, 한 사람은 바울이라는 평민이었다. 네로는 황제였고, 바울은 낮은 시민이었고, 네로는 수십 명의 처와 첩을 가졌고, 바울은 한 명의 연인도 없었다. 네로는 수많은 재산과 권력을 가졌고, 바울은 집도 땅도 권력도 없었다. 네로는 휘하에 신하와 군사도 많았고, 바울은 따르는 자도 별로 없었고, 네로는 상아궁, 악어침대에서 잠을 잤고, 바울은 아무데서나 자는 떠돌이였다, 네로는 산해진미, 육선을 먹었고, 바울은 거지처럼 먹었으며, 네로는 왕이지만 처, 이복동생, 어머니, 기독교인들을 많이 죽였고, 바울은 평민이지만 주리고 목마른 자를 먹였고 병든 자를 고쳤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했다. 네로는 바울을 죽였고 자살로 인생을 끝냈고, 바울은 순교로 생을 마쳤다.
역사가들은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위대한 삶을 살았는가를 안다. 지혜 있는 여러분도 누가 옳은 삶, 값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았는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고양이나 개에게 이름을 붙일 때는 네로라고 붙이고, 훌륭한 사람, 귀한 사람 되라고 이름을 붙일 때에는 바울이라 이름을 붙여준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있던 것도 다 빼앗기고 얻어맞아 거반 죽게 되어 방치되었다. 그 광경을 길 가던 제사장이 보았으나 길을 피하고 구조의 손길을 주지 않고 외면하였다. 레위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사마리아 인은 죽어가는 자를 불쌍히 여겨 응급처지를 해주고 병원에 데려가서 자기 돈을 지불하여 치료해주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고 하셨다.
현대의 한국 사람에게 강도 만나 죽게 된 자는, 다름 아닌 탈북자들과 북한 주민이다.
2000년 전까지 북한에서 굶어서 죽은 자가 300명이 넘는다고 탈북자들이나 외신은 보도하고 있다. 탈북자의 77%가 자기 친인척 중에 굶어서 죽은 자가 있다고 말했으며, 96.9%가 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진술했다. 그들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 즉 생존을 위해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을 통해 동남아 지역과 러시아로 탈출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반겨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움막에서, 산 속에서, 동굴에서, 체포와 강제 송환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여인들은 성매매 당하면서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체포되어 강제 송환되면 수십 년간을 수용소에서 고생과 고문을 당하고 때로는 교수형, 총살형으로 죽어간다. 그들은 지금도 강도를 만나 거의 죽어가고 있다. 김정일이란 강도를 만나서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고, 먹고 살기위해 피난 가는 자를 다시 잡아들려, 비참하고 처절하게 고통을 주거나 처형하고 있다.
강도만나 거반 죽어가고 있는 탈북자들과 북한 동포들을 구출해야 함이 한 국민의 시급한 과제이다. 제사장되는 종교지도자나 레위인 되는 신자들이 외면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이 도움을 주어 그들을 살려냈다. 그들이 미국의 인권단체, 국회의원, 행정부요원들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닌가?
수년전에 미국의 NED 회장 Carl Gershman은 말하길 "주민 참상에 대해 침묵만 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했고 국방포럼 재단 회장이며 NKFC의 회장인 Suzanne Scholte는 말하길 "탈북자의 증언은 외부 세계가 북한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며 그들은 살아 있는 증인이다. 이런 참상을 묵과하는 것은 죄악이다.", "북한 김정일 독재체재야 말로 모든 문제의 출발이다. 만약 북한에 김정일 체제가 없었다면 핵 위협도 없고 엄청난 기근으로 주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이 예측불가 능한 상황을 만들지 못하도록 포괄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며 더 이상 북한의 눈치만 봐서는 어떤 정책도 성공하기 힘든 만큼 이제는 운전석에 앉아 북한의 인권문제, 내부개혁 문제, 탈북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나가야 한다"라고 했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다
그렇다. 강도 만나 죽게 된 탈북자들과 북한 주민을 살리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이를 외면하는 것은 죄악이다. 성경은 더 적극적으로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다. 마태복음 25: 31-46절에 보면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 즉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었고 병들고 감옥에 가 있는 사람을 돌보아 주지 않는 자를 영벌에 처한다고 했다. 지옥에 간다는 말이다.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동족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지나쳐 버리는 제사장, 레위인이 되서는 안 된다.
북한의 악정, 김정일 독재를 무너뜨리도록 대북풍선 날리기 운동에 우리는 적극 참여 해야 한다.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밀어내고,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키는 시민운동이 중동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기회를 못 잡는다. 호기를 간파해야한다
성직자의 사명은 무엇이며 신자들의 할일은 무엇일까? 탈북자 구출과 북한정권을 도말하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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