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로마서의 결론 부분에서 사도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9장에서 자기 민족을 향해 절규하고 있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이방인들은 회개하고 예수께로 돌아와 구원을 받는데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거부하고 복음을 거부하고 구원을 거부하는 것을 생각하면 사도바울은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로마서 9장 1절과 2절에서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가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라고 자신의 심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내 민족이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예수에게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천국의 생명책에 자기의 이름이 빠지게 될지라도 자기 민족이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고통은 사랑하는 자기 민족을 위하여 일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것을 이룬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의 간절한 꿈은 ‘민족구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사도바울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에게 이방인을 위하여 살라고 명령했습니다. 여러분, 은혜란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바울은 자기 민족을 구원하는데 일생을 바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이방인을 위해서 순교하는데 바울의 생애를 바치기를 원하셨습니다.

16절에서 사도바울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싶은 것이 자신의 마음이지만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된 것이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자기의 뜻을 이루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16절에서 자신을 이방인을 위하여 부름 받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고민은 자신을 설명하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부족하고 확실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제가‘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십니까?’라고 질문한다면 ‘예’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분도 있겠지만 어떤 분은 대답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복음의 제사장입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일꾼입니까? 당신이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받았든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가정에서 일을 하든지 직장에서 일을 하든지, 혹은 한국에서 살든지 아프리카에서 살든지‘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희미하고 불안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삶이 분명하지 않고 환경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이 말을 아직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냐고 물을 때 ‘저는 집사인데요, 저는 장로인데요, 어떤 분은 자기의 직위를 대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사장인데요? 혹은 저는 국장인데요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사장이건 대통령이건 노동자건 간에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인가가 중요합니다. 바울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이방인을 위한 일꾼’이라고 자기가 헌신할 대상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한 자매가 불교를 믿는 집안에 시집을 갔습니다. 제사를 지내야만 하는, 예수를 제대로 믿을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나는 이 집에 보내진 선교사다’라고 생각하고 20~30년을 버티고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30년 후에 그 집안이 예수 믿는 가정으로 변할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녀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우리가 직장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이 직장에 보내주셨다. 내 월급을 반으로 줄여도 상관없다. 나는 월급 받으러 온 사람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러 왔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분명한 하나님의 일꾼이요, 복음의 제사장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생각이 분명했습니다. 그는 생애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쓰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싶어 하는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로마서를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한 가정에 딸이 있었습니다. 그 딸과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아서 딸은‘나는 시집가지 않고 아버지와 함께 살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미국으로 시집을 가야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 딸의 심정,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일 수 있고 사도바울의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동족을 두고 이방인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 기막힌 심정이 로마서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 그렇지만 사도바울은 자신과 같은 사람을 사용해서라도 이방인을 구원하려고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있다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환경을 만듭니다. 좋은 환경을 쫓아다니고 좋은 조건을 쫓아다니면 행복 할 것 같지만 결국 불행합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직업이나 위치가 분명하고 사무실에 내 자리가 분명해야 만족합니다. 그것을 빼앗으면 모두 가버립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빼앗아도 있어야 합니다. 월급을 주지 않아도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서든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그는 자기를 가리켜‘나는 이방인을 위하여 하나님이 특별하게 세워주신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에게 이런 믿음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 일을 꼭 해야 한다. 내 생명 끝날 때까지 이 일만은 굶더라도 죽더라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겠다.’ 이런 마음을 갖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