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딸의 생일이 되었는데 저녁까지 기다려도 아빠와 엄마가 자신을 위해 생일케익 하나 준비하지 않은 것을 본 딸이 작정한듯이 필자와 아내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딸 생일이 되어도 케익하나 없습니까?”라는 말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우리 부부는 딸에게 한방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그후 아내는 딸아 어떤 케익이 먹고 싶으냐? 라고 물어 보았을때 딸이 말하기를 “바스킨 로빈슨에서 파는 오레오 아이스크림 케익이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바스킨 로빈슨이 문닫기 20분전에 도착하여 케익을 사려고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비싸기에 아내와 상의하여 가정살림의 절약 측면에서 케잌대신 아이스크림으로 대체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기 전에 오레오 생일 케익을 간절히 바라는 딸에게서 괜찮다는 말을 기대하고 전화를 해서 생각을 물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딸아! 아빠가 생각하기에 케익 대신에 그냥 아이스크림이 어떨까?”라고 물어 보았을때 딸이 말히기를 “아빠 아이스크림이 생일 케익이야”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 바스킨 로빈슨에서 아내와 무엇을 사야 할까 라는 갈등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아무말없이 제일 싼 케익 하나를 사가지고 집에 돌아가서 생일축하의 노래를 부르면서 늦은 하루였지만 딸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목사에게 교회와 성도가 우선이고 자녀들은 항상 차선이 되는 목사의 자녀(Pastor Kids)들이 갖는 고통을 사랑하는 딸도 동일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평불만 하지 않고 아빠의 목회를 돕기 위해 힘이 들어도 교회 대예배의 찬양단원으로 봉사하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자연적인 아빠의 모습은 많이 보여 주었지만 정작 “좋은 아빠”로서의 모습을 사랑스런 딸에게 보여 주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움이었다.

그 이유는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란 그들이 살아가는데 큰 버팀목이 되어 그들이 성장하면서 희망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육과 정신적인 건강한 삶을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생일날이 되어도 제대로 축하 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머리속에 갑자가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어릴때 읽었던 책의 제목인 “아낌 없이 주는 나무”이었다.

그 책 내용의 핵심은 나무가 아이를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인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소년은 나무 곁에서 나뭇잎으로 왕관을 만들고 그 나무의 나무가지에 매달려 그네도 뛰고 사과도 따먹고 피곤하면 나무 곁에서 잠을 자기도 하며 어린 시절을 나무와 함께 보내었다.

소년이 나무에게 ‘물건도 사고 싶고 신나게 놀고 싶은데 돈이 필요해서 그런데 돈을 좀 줄 수 있겠니?”하고 물었을때 나무는 소년에게 자신이 가진 사과를 시장에다 팔아서 쓰라고 자신의 과일을 주었다. 그리고 소년은 청년이 되어 나무에게 돌아와서 “내게는 나를 따뜻하게 해줄 집이 필요해, 아내도 있어야겠고,어린애도 있어야 겠어. 그래서 집이 필요하단말야 내게 집하나 마련해 줄 수 없겠니?”하고 말할때에도 나무는 “ 이 숲이 나의 집이야 하지만 내 가지들을 베어다가 집을 짓지 그래? 그러면 행복해 질 수 있을 거야” 소년에게 집을 지어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한다.~~~오랜 세월이 지나 소년은 노인이 되어 다시 나무에게 돌아왔을때에는 기력이 다해버린 소년은 평생을 아낌없이 모든 것을 준 사과나무의 그루터기에 와서 조용히 앉아 쉼을 가질때에도 나무는 소년에게 마지막까지 무엇인가를 줄 수 있어서 행복해 한다.

이렇게 사랑을 소년에게 “아낌 없이 주는 나무”가 곧 가정의 자녀들에게 희망을 주는 버팀목의 역할을 하는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일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아버지의 모습의 상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최근 1박2일에서 제작한 “외국인 근로자의 가족상봉”이라는 프로 그램이었다. 그 방송에 미얀마에서 예양의 아버지가 3박4일 짧은 여정의 방문을 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기 이전에 국제공항에서 자신의 아들에게 쪽지 하나를 건네주면서 힘이들때 마다 이것을 열어서 보아라 그러면 힘든 역경을 견뎌 낼 수 있다는 권고이었다.

그 쪽지의 내용은 “인생이란 돌고 도는 것이다.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고 만나면 헤어짐이 있는 것이고 행복이 있으면 슬픔이 있는 것이다. 그게 인생인 것이다” 그러니 환경이 어렵다고 슬퍼하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고 잘 견디며 살아가라는 말이었다. 부자간의 사랑과 그리움의 눈물을 화면으로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슴이 뭉클해졌을 것이다.

가부장 중심의 옛날 사회나 시대가 변하여 가정에 아이들 위주로 사는 현대인의 사회라 할지라도 가정에서 아버지의 사랑은 동일하다는 것과 아버지의 사랑은 나라와 민족과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자녀들에게 “삶의 큰 버팀목”이라 말할 수 있다. 그속에는 사랑과 조건없는 희생이 자리매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름다운 육신의 아버지의 모습인데 하물며 인간을 창조하시고 조건없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으신 우리 주 예수님의 사랑은 영원하시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을 아는 자는 “삶에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

그 말씀이 시편 1:3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말은 주안에서 거하는 사람의 영혼은 범사에 잘되고 모든일에 형통하며 평화스럽고 영생의 삶을 살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아래서 생령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은 무한하시며 영원토록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아버지는 때로 자식들에게 친절과 겸손을 보이는 무화과 나무처럼 그리고 진리의 상징인 포도나무처럼 또한 진심으로 선한 모습을 보이는 감람나무처럼 보이지만 완벽한 아버지가 될 수 없기에 자식이 마음에 안들면 가시나무처럼 분을 내고 화를 내어 마음에 큰 상처와 그것으로 인해 그 상처가 너무나 깊어서 가슴속에 쓴뿌리 처럼 자리잡아 평생을 용서하지 못하고 용서 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의 삶을 사는 아버지와 자녀들도 있다.

그러나 영적인 하나님의 아버지는 세상의 아버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사랑을 주시는 분이고 그분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조건 없이 피흘려 죽으신 희생을 보이신 분이시다. 자녀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기를 바라고 그들의 버팀목이 되려 한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며 그 영적인 축복을 자녀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