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의 가족 전체를 하나도 빠짐없이 몰살시킨 악명높은 왕 바아사는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이다. 바아사는 히브리어로 ‘바알이 듣고 있다’ 또는 ‘바알은 태양이다’ 라는 의미를 문자적으로 지니고 있다. 사악한 우상의 최고 정점인 바알과 깊은 관계가 있는 인물로 성경은 그를 해석한다.
남유다 왕 아사 제2년에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왕이 되어 약 2년 동안 다스렸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속한 깁브돈을 포위하고 공격하던 중 북이스라엘 대장군으로 있던 바아사가 갑자기 모반하여, 나답왕을 시해하고 북이스라엘 제3대왕이 됐다. 국가적으로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출세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 판단해 통치자 나답을 죽이고 쿠데타를 감행했다. 바아사는 국가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개인 권력에만 눈이 어두운 세속적 인물이었다.
바아사가 나라를 다스리던 중, 하나님 앞에서 사악한 여로보암의 후손 모두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켰다. 불법으로 빼앗은 권력이라 후환이 두려운 나머지, 상대방의 핏줄을 모두 제거하고 자신의 왕권을 견고히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이로써 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됐다(왕상 14:19).
하나님이 세운 이스라엘 민족 국가 전체의 정체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우상의 도가니로 만들어버린 여로보암 족속은 바아사를 통해 소위 인종청소를 당하게 됐다. 하나님은 사악하고 교활한 바아사를 허용적 작정의 도구로 사용해 여로보암 족속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징계를 단행했다. 북이스라엘을 세운 초창기 통치자들이 하나님 앞에 너무나 악하므로, 더 교활한 인물을 통치 지도자로 세워 징계했던 것이다.
유다왕 아사 제3년에 바아사가 디르사에서 북이스라엘 제3대왕이 되어 약 24년을 치리했다(왕상 15:25-34). 치리하는 동안 바아사도 역시 사악한 정적 여로보암 족속의 궤도를 그대로 밟았다(왕상 15:25-34). 여로보암 족속들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 여호와 정책을 펼쳤다. 하나님 아닌 우상을 숭배하고, 여호와의 절기를 마음대로 바꿨으며, 성전에서 봉사할 레위 족속 제사장을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바꿔 세우는 극악을 범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예후에게 임하여 타락한 바아사 왕을 크게 꾸짖었다. “내가 너를 진토에서 들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여 저희 죄로 나의 노를 격동 하였은즉 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 하리라”고 경고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지시에 반해 잘못을 저지르면 처음에는 온유한 말씀으로 조용히 경고하신다. 하나님의 경고도 듣지 않고 지속적으로 잘못을 범하면 가벼운 징계로 다스린다. 징계가 가해져도 끝까지 불순종하게 되면 생명마저 앗아가는 마지막 징계가 기다리게 된다. 생명을 가져가는 마지막 징계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이름을 더 이상 더럽힐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바아사는 남유다왕 아사와 더 많은 땅을 얻기 위해 일생 동안 피터지게 싸웠다. 바아사는 남유다 북방지역 경계를 봉쇄하고, 남북으로 흩어진 사람들이 서로 왕래할 수 없도록 라마에 요새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남유다 아사왕이 이웃 다메섹왕 벤하닷의 원군을 얻어 바아사를 격퇴시켜 바아사의 사악한 전쟁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왕상 15:16-22, 대하 16:1-6, 렘 41:9). 바아사가 라마성 요새 건축을 포기하고 물러가자, 아사왕은 그곳에 비치된 돌과 재목 등 건축자재를 모두 취해서 게바와 미스바성을 축조했다.
게바는 남유다 왕국의 최북단에 위치한(왕하 23:8) 베냐민 지파 성읍인데, 가나안 동북 지경에 놓여 있었으며(수 18:24) 후에 레위 자손 소유의 성읍이 됐다(수 21:17, 대상 6:60). 게바에 설립된 성은 예루살렘의 북쪽 9㎞에 위치한, 오늘날의 졔바(Jeba)로 추정된다. 또 다른 성이 축조된 미스바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경계에 놓인 베냐민 지파 주요 성읍이다(수 18:21-28). 포로 시대에 예루살렘을 대신해 정치와 종교의 중심이 됐다. 하나님은 바아사 왕을 사용해 앞으로 있을 포로기 종교와 정치의 센터를 미리 준비했다. 바아사는 죽은 다음 디르사에 매장되었고, 아들 엘라가 이어 제4대 왕이 됐다(왕상 16:1-6).
악한 자들이 악한 사역을 위해 세운 것은 때가 되면 무엇이든 바벨탑처럼 무너진다. 하나님이 만든 선한 것을 악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공의로운 여호와께서는 절대 묵과하지 않는다. 생명을 살리는 염소 젖으로 염소 새끼를 죽여 삶는 행위를 성경이 금하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바아사는 라마에 요새를 만들어서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남유다에 있는 성지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없도록 조치했다. 하나님은 라마의 요새 건축을 완전히 무효화시키고, 그 건축 재료를 사용해서 게바와 미스바성을 축조하도록 조치했다.
북쪽의 김정일이 아무리 정예부대를 증군하고, 최첨단 무기로 현대화해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악한 생각과 악한 일을 하게 되면 바아사처럼 머지 않아 멸망하게 됨을 그는 깨달아야 한다. 바아사의 정권은 그의 아들 엘라로 마감되고, 새로운 시므리 및 오므리 정권이 들어섰다.
남유다 왕 아사 제2년에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왕이 되어 약 2년 동안 다스렸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속한 깁브돈을 포위하고 공격하던 중 북이스라엘 대장군으로 있던 바아사가 갑자기 모반하여, 나답왕을 시해하고 북이스라엘 제3대왕이 됐다. 국가적으로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출세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 판단해 통치자 나답을 죽이고 쿠데타를 감행했다. 바아사는 국가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개인 권력에만 눈이 어두운 세속적 인물이었다.
바아사가 나라를 다스리던 중, 하나님 앞에서 사악한 여로보암의 후손 모두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켰다. 불법으로 빼앗은 권력이라 후환이 두려운 나머지, 상대방의 핏줄을 모두 제거하고 자신의 왕권을 견고히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이로써 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됐다(왕상 14:19).
하나님이 세운 이스라엘 민족 국가 전체의 정체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우상의 도가니로 만들어버린 여로보암 족속은 바아사를 통해 소위 인종청소를 당하게 됐다. 하나님은 사악하고 교활한 바아사를 허용적 작정의 도구로 사용해 여로보암 족속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징계를 단행했다. 북이스라엘을 세운 초창기 통치자들이 하나님 앞에 너무나 악하므로, 더 교활한 인물을 통치 지도자로 세워 징계했던 것이다.
유다왕 아사 제3년에 바아사가 디르사에서 북이스라엘 제3대왕이 되어 약 24년을 치리했다(왕상 15:25-34). 치리하는 동안 바아사도 역시 사악한 정적 여로보암 족속의 궤도를 그대로 밟았다(왕상 15:25-34). 여로보암 족속들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 여호와 정책을 펼쳤다. 하나님 아닌 우상을 숭배하고, 여호와의 절기를 마음대로 바꿨으며, 성전에서 봉사할 레위 족속 제사장을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바꿔 세우는 극악을 범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예후에게 임하여 타락한 바아사 왕을 크게 꾸짖었다. “내가 너를 진토에서 들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여 저희 죄로 나의 노를 격동 하였은즉 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 하리라”고 경고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지시에 반해 잘못을 저지르면 처음에는 온유한 말씀으로 조용히 경고하신다. 하나님의 경고도 듣지 않고 지속적으로 잘못을 범하면 가벼운 징계로 다스린다. 징계가 가해져도 끝까지 불순종하게 되면 생명마저 앗아가는 마지막 징계가 기다리게 된다. 생명을 가져가는 마지막 징계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이름을 더 이상 더럽힐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바아사는 남유다왕 아사와 더 많은 땅을 얻기 위해 일생 동안 피터지게 싸웠다. 바아사는 남유다 북방지역 경계를 봉쇄하고, 남북으로 흩어진 사람들이 서로 왕래할 수 없도록 라마에 요새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남유다 아사왕이 이웃 다메섹왕 벤하닷의 원군을 얻어 바아사를 격퇴시켜 바아사의 사악한 전쟁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왕상 15:16-22, 대하 16:1-6, 렘 41:9). 바아사가 라마성 요새 건축을 포기하고 물러가자, 아사왕은 그곳에 비치된 돌과 재목 등 건축자재를 모두 취해서 게바와 미스바성을 축조했다.
게바는 남유다 왕국의 최북단에 위치한(왕하 23:8) 베냐민 지파 성읍인데, 가나안 동북 지경에 놓여 있었으며(수 18:24) 후에 레위 자손 소유의 성읍이 됐다(수 21:17, 대상 6:60). 게바에 설립된 성은 예루살렘의 북쪽 9㎞에 위치한, 오늘날의 졔바(Jeba)로 추정된다. 또 다른 성이 축조된 미스바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경계에 놓인 베냐민 지파 주요 성읍이다(수 18:21-28). 포로 시대에 예루살렘을 대신해 정치와 종교의 중심이 됐다. 하나님은 바아사 왕을 사용해 앞으로 있을 포로기 종교와 정치의 센터를 미리 준비했다. 바아사는 죽은 다음 디르사에 매장되었고, 아들 엘라가 이어 제4대 왕이 됐다(왕상 16:1-6).
악한 자들이 악한 사역을 위해 세운 것은 때가 되면 무엇이든 바벨탑처럼 무너진다. 하나님이 만든 선한 것을 악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공의로운 여호와께서는 절대 묵과하지 않는다. 생명을 살리는 염소 젖으로 염소 새끼를 죽여 삶는 행위를 성경이 금하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바아사는 라마에 요새를 만들어서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남유다에 있는 성지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없도록 조치했다. 하나님은 라마의 요새 건축을 완전히 무효화시키고, 그 건축 재료를 사용해서 게바와 미스바성을 축조하도록 조치했다.
북쪽의 김정일이 아무리 정예부대를 증군하고, 최첨단 무기로 현대화해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악한 생각과 악한 일을 하게 되면 바아사처럼 머지 않아 멸망하게 됨을 그는 깨달아야 한다. 바아사의 정권은 그의 아들 엘라로 마감되고, 새로운 시므리 및 오므리 정권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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