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기치 않던 기막힌 사건에 부딪치게 되면 그 사건이 크면 클수록 비정상적인 반응을 나타내게 됩니다. 정상적인 사고와 기능이 정지되기 때문입니다. 귀에 말소리가 들어오지 않고 생각의 문도 닫혀 버리며 판단력도 흐려지고 말문도 막히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혼란 속에서 멍 한 상태에 빠져들게 됩니다.

저는 그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남편인 장로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는데 저는 너무도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정신의 균형을 잃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그 위기를 대처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낼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왔다 갔다 주위를 서성거리며 한참동안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가 지난 후에야 병원으로 모시고 가야한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입니다.

저는 또한 6.25의 험한 상태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폭탄이 쏟아지는 사태를 피하기 위하여 동네 사람들은 방공호로 몰렸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부상당한 사람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곳엔 중년부인 한사람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날 딸 셋을 폭탄 속에 잃었고 남은 아들 하나마져 부상을 심하게 입은 채 방공호 안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아들 곁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그 여인을 대신하여 통곡하고 울어주었습니다만 그녀는 아무런 감정의 요동도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충격적인 슬픔을 당하게 되면 처음은 마비된 감정을 보이게 됩니다. 얼마 후 자기 정신으로 돌아오면 그때서야 뒤늦게 우울증 증세로 반응을 보여주게 됩니다.

욥도 갑자기 닥친 사건에 정신이 몽롱해 있었습니다. 무엇을 당했는지 왜 당했는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다만 일생동안 하나님을 경외해 온 사람으로서 극심한 상황 속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주권을 알고 또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배 드리는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동안 말을 잃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충격의 단계를 지나면 우울 상태에 빠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버림받았다는 느낌, 쓸모없다는 생각, 존재의 가치가 없다는 판단...그러므로 죽었으면 하는 소원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는 이해하기 힘든 현실 변화에 대한 ‘분노’때문입니다. 이 분노가 밖으로 표출되게 되면 사람은 난폭해 집니다. 독을 뿜어내며 원망하고 폭력을 휘두르면서 살인까지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노를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새기며 자학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은 사랑받을만한 존재가 못된다는 생각을 거듭하게 됩니다. 그래서 살 가치를 느끼지 못하여 슬퍼하며 깊은 우울증을 앓게 되고 자살충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때로 '자살' 에 대한 뜻 을 나타내면 신중하게 받아드리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욥은 그 분노를 자신에게 돌렸습니다. 그는 환경을 원망하지 않았고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를 탓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깊은 우울증에 빠져 허덕이면서 죽고만 싶었던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태어난 날 을 저주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큰 좌절감에 고통당하고 있는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는 그러한 자기의 심정을 이해해 주는 친구를 바라고 원했던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그러한 고통 속에 있는 그를 이해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욥 을 이해해주는 대신 그가 우울증에서 벗어 나와야 한다고 논설을 펼쳤습니다. 욥 이 원한 것은 그를 이해해 주는 친구들이었지만 친구들은 그의 슬픔과 고통을 밖으로 표현하는 욥 을 제제 시키기고 절제 시키기를 원했습니다. 그냥 들어주고 그의 심정을 이해해 줄 수 있었다면 욥 은 다음 단계를 거쳐 신앙의 승리를 좀 더 쉽고 빠르게 전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를 무조건 들어주시고 이해해 주시는 참 친구는 예수그리스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의 고통과 고난을 이해해 주십니다. 아무리 우리의 슬픔과 좌절과 분노를 쏟아놓아도 그분은 이해해 주시고 절대로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그분 앞에서는 자신을 포장 시킬 필요도 없습니다. 자존심을 내 세울 필요도 없습니다. 아름다운 언어만을 사용할 필요도 없습니다. 입 밖으로 말을 내지 않아도 우리의 깊은 심중에 숨어있는 말 들을 아시고 이해하십니다. (시 139) 심리학에서는 말합니다. 우리가 의식하는 것은 오직 10% 뿐이라고....... 내가 '다 안다' 하고 또 그것을 표현한다고 해도 그것은 10% 의 진실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느끼는 분노, 좌절, 불안, 근심, 걱정, 미움, 슬픔...주께서는 100% 를 알고 계시고 이해해 주시고 그의 품 안에서 위로해 주십니다. 그분께 내어놓고 맡기기만 하시면 평안도 주십니다. 아무리 어렵고 슬픈 일 을 만날지라도 그분과 함께하면 우리는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을 끝까지 신뢰하고 살면 우리의 결국은 놀라운 면류관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