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자라는 이유로 제사 참석을 거부한 윤모(28) 씨가 불교를 믿는 남편으로부터 이혼 및 자녀 양육권 소송을 당해 패소했다.

교회 목사의 딸인 윤씨는 결혼 이후 종교 문제로 지속적인 갈등을 겪다, 2007년 설날 교회에 가야 한다며 제사 지내는 것과 큰집에 가는 것을 거부, 결국 남편 이모(28)씨에게 지난 2009년 소송을 당했다.

시부모는 윤 씨의 종교를 고려, “절은 안 해도 되니 어른들께 인사나 하러 가자”고 했지만 윤 씨는 “제사에 절대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며 끝내 시부모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법원은 “종교 문제로 부부가 다투고 재결합을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혼인관계는 파탄에 이른 것으로 봐야 한다”며 “파탄에 이른 경위와 현재 상황 등을 보면 아이는 남편 쪽에서 기르는 게 옳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 변호사는 “(법원이) 제사 불참만을 이혼사유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제사 불참이 원인이 되어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법원은 “종교 문제로 힘들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결혼한 책임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있다”며 남편의 위자료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기독교인의 제사’ 문제가 부부의 이혼 소송에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간 이 문제는 유교적 전통을 따라 제사를 중시해온 한국에서 종교적 혹은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전문가들은 제사 문제와 관련, 한국교회가 타종교 혹은 사회문화와의 ‘대결적 양상’에서 벗어나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절은 못해도 제사상과 음식은 차릴 수는 있어
전통제사 무시하지 않는 추모예배 보급 시급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김명혁 목사는 “(제사 문제는) 기독교 초기부터 가정과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돼 왔다”며 “종교다원적 사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목사는 “신앙의 선배들은 많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때론 생명을 걸어서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켜왔다”며 “종교 간 갈등이 개인이나 가정,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건 사실이다. 이혼을 당할 수도 있고 가문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불이익을 당하는 걸 원망할 필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목사는 “종교간 갈등을 대결로 푸는 건 옳지 않다. 이번 문제에서도 근본 원인은 한국교회의 지나친 배타적 모습에 있다. 제사를 드리지 말자 하면서 다른 종교의 풍습을 마귀적이라 몰아세우는 투쟁적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제사상을 차릴 수도 있고 제사음식을 만들 수도 있다. 바울도 제사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절은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면 되는 것이다. 본질이 아닌 부분에서 양보한다면 상대방도 이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조성윤 교수는 “가톨릭의 장례식장을 모니터해 본 적이 있다. 아주 장례식을 정성들여 잘한다. 온 가족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며 “(개신교의) 추도회가 전통적인 형식과 부딪히고 있다. 조상을 모시는 걸 지금은 우상숭배라고 보는 시각은 적지만 형식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교회들이 사실 이 문제를 언급하면 논란에 휩쓸리고 이단으로 몰리지 않을까 걱정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다고 지적했다.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요즘 크리스천 가운데 제사를 우상 숭배나 조상신 숭배로 여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며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속으로는 제사를 우상 숭배로 여기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전통 제사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새로운 추모예배 보급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