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일 전에 월요일 저녁 기도모임 멤버의 권유로 의미 있는 한 집회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그 집회는 지난 2월에 순교의 각오로 중국 단동지역을 거쳐 자진입북을 했다가 엄청난 고문과 수치심을 면류관처럼 가슴에 박은 채 풀려난 로버트 박의 간증집회였다. 그는 북한에서 풀려난 뒤 한동안 고문후유증과 북한의 현실로 인한 충격으로 자신이 살던 미국의 한 정신병원에서 수 개월에 걸쳐 심리치료를 받으며, 눈물로 수치심으로 인한 자살충격을 갓 이겨내었다고 말했다. 집회가 끝나고 필자가 로버트 박과 악수를 나누며 허그를 나누었을 때, 그의 몸은 생각 밖으로 왜소했었고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선포는 조국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심각한 고뇌의 바다에 필자를 빠뜨리기에 충분했었다.
귀가 길에 동승한 멤버들을 태워다주면서 필자는 문득, 하나님의 명령이라며 자진방북을 했었던 한 모 목사가 떠올랐다. 그 두 사람의 북한 방문이란 해프닝은 일견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이나 일개 영화감독에 불과한 필자의 눈에나 아주 극명하게 달라 보인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필자가 파악하고 알기로는 로버트 박은 북한의 낮은 곳으로 가서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이 되기를 원하였던 것이고, 한 모 목사의 방북은 소영웅주의에 입각한 방북으로써, 그는 당당하게 평양의 순안비행장으로 북한 당국자들의 대대적인 환대를 받으며 입북을 하였다. 로버트 박은 입북과 동시에 보위부로 끌려가서 모진 고문과 회유를 당해야만 했었고, 고문으로도 모자라 그를 북한에서 풀어줄 때는 그를 함구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보위부원들은 그에게 남자에게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수치심을 입혀서 만신창이가 된 채로 그를 석방해서 돌려보내 주었다. 하지만, 어떤가? 한 모 목사라는 자는 북에 있는 내내 인민의 영웅으로 넘치는 대우를 받으며 마치 자신이 무슨 영웅이나 된 것처럼, 자신이 그토록 조국이라고 갈망하는 북녘 땅을 뒤로 한 채 개선장군처럼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북한의 동포를 사랑하는 뜨거운 열망으로 혈혈단신으로 선교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북한에 갔었던 로버트 박은 이미 보위부들의 마음속에 복음을 씨앗을 떨구어 심어두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로버트 박, 그의 순교적 선교는 이미 성공하였다. 반면에 한 모 목사라는 자는 북에 있는 내내 인민의 가슴에 소망의 씨앗대신 절망의 씨앗을 심고 왔다고 생각한다. 평화를 부르짖으며 북한 고위층의 융숭한 환대를 받고 지내다가 자신들의 동토를 떠나가는 목사라는 자의 껍데기뿐인 복음이 진짜 복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북한의 인민들은 이미 잘 안다.
2000여 년 전 인간들의 원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이 땅의 한 초라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독생자 예수님의 탄생일이 크리스마스라는 사실정도는 완전통제 사회라고 하는 그들의 땅에서도 이미 잘 알고들 있을 것이다. 때문에, 진실로 자신들의 평화와 해방을 위해 방문하는 자는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데로 임하는 순교자적 선교사들이지, 인민들의 시름과 아픔은 외면한 채 영웅놀이의 재미에 빠져 환대와 향응을 대접받고 돌아가는 이상한 행색의 방문자가 자신들의 구원을 위한 자가 아님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을 한다. 로버트 박과 모 목사, 그 둘의 이미지를 오버랩 시키자 몇 년 전에 보았던 한 편의 영화 ‘디파티드’가 파노라마처럼 뇌리에 떠올랐다.
영화 ‘디파티드’는 맥조휘, 유위강 감독의 2002년산 빅히트 홍콩 느와르 <무간도>를 세계적인 명감독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미국판으로 리메이크한 범죄 영화다. 영화 ‘디파티드’의 배경은 보스톤 남부지역이다. 지역 전체를 장악한 갱단 두목 프랭크 코스텔로를 상대로 경찰은 범죄와의 전쟁을 벌인다. 형사반장 퀴난과 심복 디그냄은 경찰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갓 졸업한 신참내기 경찰 빌리 카스티갠(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을 코스텔로의 조직에 갱으로 위장 잠입시키고, 이내 빌리는 코스텔로의 신임을 받는 조직원으로 빠르게 성장해서 경찰내의 비밀정보를 코스텔로에게 흘린다.
한편, 갱두목 코스텔로는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젊은 조직원 콜린 설리반(맷 데이먼 분)을 매사츠세츄주 경찰학교에 입교시켜 결국 경찰로 만들어 역으로 경찰내부의 정보를 캐낸다. 경찰 및 코스텔로 조직 모두 내부에 배신자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영화의 두 주인공 빌리와 콜린에게는 위기의 순간이 그림자를 드리우며 다가온다. 두 조직 간의 냉혹한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이 둘의 운명은 각자 빛에서 어둠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자리를 바꾸고 한 사람은 온갖 수난과 고통을 짊어지기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어둠에서는 누릴 수 없던 많은 것들을 누리기도 하며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런데 영화에서의 이 비극적인 이야기의 구조와 캐릭터 설정이 절대로 낯설지 않다. 우리 사회 곳곳에 박혀 있는 대한민국의 안티들 때문에 작금에 새삼 드는 생각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온갖 혜택을 누리고 살면서, 정작 북으로 가서 살지도 않을 거면서도 대한민국 정부의 모든 정책은 철저히 반대를 위한 반대이다 싶을만큼 반대를 해댄다. 그러면서 북한의 인민을 굶겨 죽이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이르기까지의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북한 정권의 3대 세습독재에 관한 안티 의견은 절대로 내세우지 않는다. 또한, 불쌍한 북한 인민들의 권익을 위한 북한 인권법 제정에 관하여서는 전혀 노코멘트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무자비한 안티들의 이중 잣대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안티들에게 반드시 인자하신 하나님의 엄위하심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 날이 꼭 오리라고 믿는다.
믿는 자들이여! 세상 가운데서 흥청망청한 성탄절이 아니라, 주님의 탄생을 평화로운 이 땅에서 맞게 해주신 하나님의 크고 높으신 은혜를 찬양하고 송축하며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가 가득한 메리 크리스마스 되소서. 할렐루야!
최재훈 감독(Hnb픽처스 대표)
귀가 길에 동승한 멤버들을 태워다주면서 필자는 문득, 하나님의 명령이라며 자진방북을 했었던 한 모 목사가 떠올랐다. 그 두 사람의 북한 방문이란 해프닝은 일견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이나 일개 영화감독에 불과한 필자의 눈에나 아주 극명하게 달라 보인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필자가 파악하고 알기로는 로버트 박은 북한의 낮은 곳으로 가서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이 되기를 원하였던 것이고, 한 모 목사의 방북은 소영웅주의에 입각한 방북으로써, 그는 당당하게 평양의 순안비행장으로 북한 당국자들의 대대적인 환대를 받으며 입북을 하였다. 로버트 박은 입북과 동시에 보위부로 끌려가서 모진 고문과 회유를 당해야만 했었고, 고문으로도 모자라 그를 북한에서 풀어줄 때는 그를 함구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보위부원들은 그에게 남자에게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수치심을 입혀서 만신창이가 된 채로 그를 석방해서 돌려보내 주었다. 하지만, 어떤가? 한 모 목사라는 자는 북에 있는 내내 인민의 영웅으로 넘치는 대우를 받으며 마치 자신이 무슨 영웅이나 된 것처럼, 자신이 그토록 조국이라고 갈망하는 북녘 땅을 뒤로 한 채 개선장군처럼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북한의 동포를 사랑하는 뜨거운 열망으로 혈혈단신으로 선교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북한에 갔었던 로버트 박은 이미 보위부들의 마음속에 복음을 씨앗을 떨구어 심어두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로버트 박, 그의 순교적 선교는 이미 성공하였다. 반면에 한 모 목사라는 자는 북에 있는 내내 인민의 가슴에 소망의 씨앗대신 절망의 씨앗을 심고 왔다고 생각한다. 평화를 부르짖으며 북한 고위층의 융숭한 환대를 받고 지내다가 자신들의 동토를 떠나가는 목사라는 자의 껍데기뿐인 복음이 진짜 복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북한의 인민들은 이미 잘 안다.
2000여 년 전 인간들의 원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이 땅의 한 초라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독생자 예수님의 탄생일이 크리스마스라는 사실정도는 완전통제 사회라고 하는 그들의 땅에서도 이미 잘 알고들 있을 것이다. 때문에, 진실로 자신들의 평화와 해방을 위해 방문하는 자는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데로 임하는 순교자적 선교사들이지, 인민들의 시름과 아픔은 외면한 채 영웅놀이의 재미에 빠져 환대와 향응을 대접받고 돌아가는 이상한 행색의 방문자가 자신들의 구원을 위한 자가 아님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을 한다. 로버트 박과 모 목사, 그 둘의 이미지를 오버랩 시키자 몇 년 전에 보았던 한 편의 영화 ‘디파티드’가 파노라마처럼 뇌리에 떠올랐다.
▲영화 ‘디파티드’ |
영화 ‘디파티드’는 맥조휘, 유위강 감독의 2002년산 빅히트 홍콩 느와르 <무간도>를 세계적인 명감독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미국판으로 리메이크한 범죄 영화다. 영화 ‘디파티드’의 배경은 보스톤 남부지역이다. 지역 전체를 장악한 갱단 두목 프랭크 코스텔로를 상대로 경찰은 범죄와의 전쟁을 벌인다. 형사반장 퀴난과 심복 디그냄은 경찰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갓 졸업한 신참내기 경찰 빌리 카스티갠(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을 코스텔로의 조직에 갱으로 위장 잠입시키고, 이내 빌리는 코스텔로의 신임을 받는 조직원으로 빠르게 성장해서 경찰내의 비밀정보를 코스텔로에게 흘린다.
한편, 갱두목 코스텔로는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젊은 조직원 콜린 설리반(맷 데이먼 분)을 매사츠세츄주 경찰학교에 입교시켜 결국 경찰로 만들어 역으로 경찰내부의 정보를 캐낸다. 경찰 및 코스텔로 조직 모두 내부에 배신자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영화의 두 주인공 빌리와 콜린에게는 위기의 순간이 그림자를 드리우며 다가온다. 두 조직 간의 냉혹한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이 둘의 운명은 각자 빛에서 어둠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자리를 바꾸고 한 사람은 온갖 수난과 고통을 짊어지기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어둠에서는 누릴 수 없던 많은 것들을 누리기도 하며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런데 영화에서의 이 비극적인 이야기의 구조와 캐릭터 설정이 절대로 낯설지 않다. 우리 사회 곳곳에 박혀 있는 대한민국의 안티들 때문에 작금에 새삼 드는 생각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온갖 혜택을 누리고 살면서, 정작 북으로 가서 살지도 않을 거면서도 대한민국 정부의 모든 정책은 철저히 반대를 위한 반대이다 싶을만큼 반대를 해댄다. 그러면서 북한의 인민을 굶겨 죽이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이르기까지의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북한 정권의 3대 세습독재에 관한 안티 의견은 절대로 내세우지 않는다. 또한, 불쌍한 북한 인민들의 권익을 위한 북한 인권법 제정에 관하여서는 전혀 노코멘트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무자비한 안티들의 이중 잣대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안티들에게 반드시 인자하신 하나님의 엄위하심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 날이 꼭 오리라고 믿는다.
믿는 자들이여! 세상 가운데서 흥청망청한 성탄절이 아니라, 주님의 탄생을 평화로운 이 땅에서 맞게 해주신 하나님의 크고 높으신 은혜를 찬양하고 송축하며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가 가득한 메리 크리스마스 되소서. 할렐루야!
최재훈 감독(Hnb픽처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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