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저는 조지아 주에 사는 모 교회 집사입니다. 저희 교회는 봄 가을로 부흥회가 있습니다. 몇 년 전만해도 부흥회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지금은 부흥회를 한다고 하면 제 마음이 아주 불편합니다. 그 이유는 목사님의 강사 섭외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저희 목사님께서는 얼마 전부터 다른 교회에서 어떤 부흥 강사를 모시고 부흥 성회를 하고 나면, 곧 이어 그 분을 보시고 우리 교회에서 부흥회가 시작됩니다. 맨 처음에는 재정적인 이유를 대시는 목사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따랐는데, 몇 차례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는 일들을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 불쾌한 것은 다른 교회 방식과 판박이처럼 짜여 가는 우리 교회를 보면서, 우리 교회 정체성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 담임 목사님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의문이 듭니다. 특별히 여쭈어보아도 우물쭈물 넘겨 버리는 목사님의 태도는 더욱 답답합니다. 얼마 전에는 어떤 한 분이 동네에 몇 교회를 거의 도맡아 부흥회를 하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게 바로 바람직한 부흥회입니까?

A: 요즈음 기독교 신문에 많은 부흥회 광고가 실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집사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교회들마다 봄 가을로 짜놓은 부흥회 행사 때문이겠지요? 저희들도 좋으신 부흥 강사가 부흥회를 할 때면, 함께 참석하여 은혜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고 싶었던 부흥회를 놓쳤을지라도 별로 아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멀지 않은 또 다른 교회에서 같은 부흥 강사가 부흥회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릴레이 부흥회가 언제부터인가 이민 사회의 방식이 되었습니다. 이런 흐름을 통해서 염려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들마다 각자의 아름다운 색깔들이 희석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큰 교회에서 유명한 강사를 모셨는데, 그 부흥회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것을 본 작은 교회 목회자는 저 분을 모시면, 우리 교회에서 큰 부흥이 일어날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서둘러 그 분을 모십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성도들은 그 말씀을 먹다가 영적 소화 불량에 걸려 버립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섬기는 교회의 토양과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목회자 자신의 취향을 따라 무분별하게 끌어오는 모방적인 목회는, 교회의 토양을 기름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썩게 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런 목회자들의 특색을 살펴보면, 목회에 대한 자기 정체성이 없으며, 목회를 연구하는데 게으릅니다. 그런 목회자들에게 맡겨진 성도들은 당연히 혼동과 무질서를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집사님과 같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교회를 염려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목회자와의 관계, 비즈니스에 대한 염려, 생활의 안전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그들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타서, 교회를 이끌어가야 할 목회자는 주변의 관계로 얽혀져 있는 다른 교회의 방식을 자신의 교회로 직수입하게 됩니다. 기도할 필요도 없고 연구할 필요도 없고 교회 재정도 save되고 목회자들끼리의 관계는 더욱 활성화되는데,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않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일석삼조의 효과라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그 틈을 타서 우리의 영적인 상태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우리의 영혼은 무뎌지고, 우리 영혼의 귀는 닫혀져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적 시각은 세상의 화려한 네온 사인을 향하고 있습니다. 점점 세상은 어두워져 가고 주님 오실 날은 다가오는데, 우리 각자가 여분의 기름을 준비할 때가 되었습니다. 기름은 무엇입니까? 기름은 곧 기도함으로 곧 성령 충만한 것입니다. 지금 곧 골방의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그 곳에서 세밀한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선지자 엘리야가 만난 하나님을 우리가 만날 때입니다. 엘리야는 가장 힘들고 어두운 시기에 그 분의 음성을 들었고,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분의 음성을 듣고 세 힘을 얻어 일어나 빛을 발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