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를 이야기할 때 오지 선교를 끔찍이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필자도 오지에서 10여 년을 살면서 사역해 보았지만 오지는 분명 선교지로서 매력이 있고 보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지에서 수고하고 힘든 일을 하는 선교사만을 인정하려는 태도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언어 훈련을 끝내고 1977년 정글 사역을 위해 들어갔을 때는 한국 교회가 선교에 대한 인식이 없었을 때라 주로 같이 일한 선교사는 서양 선교사들이었다. 내가 있는 동안 한국 선교사는 한 명도 없었고, 단기선교사도 들어온 일이 전혀 없었다. 약 10년을 정글에서 교회설립과 신학교 설립사역을 마쳤고 나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선교회의 명령에 의해 싱가포르로 선교지를 옮겼다. 선교지로 싱가포르를 선택한다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싱가포르로 선교지를 바꾸면서 일어난 일은 선교비 중단이었다. 어떤 이들은 싱가포르는 잘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선교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가장 큰 목회를 하고 있는 친구 제곱 나후와이(Jacob Nahuway) 목사가 세운 교회성장학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여러 지방에서 온 교역자들이 참석한다. 강의가 끝나면 으레 받는 봉투가 있는데 그것은 돈 봉투가 아니라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당을 짓는데 돈이 필요하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이다. 내가 싱가포르에서 왔다는 이유 때문이다. 내가 부자 나라에 살기 때문에 돈이 많다는 것이다. 사실 모든 것이 비싼 대도시나 선진국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경제적 여유가 없다. 어떻게 보면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오해를 받고 사는 곳이 싱가포르이다. 그래도 다행한 일은 지난 6년 동안 아내가 미국계 국제기독교학교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받는 봉급은 우리의 싱가포르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왜 싱가포르를 선택했는가? 싱가포르 교회의 활성적인 모습이나 선진국다운 국민성 때문에 사역을 개발하기가 쉽지 않다. 언어도 영어를 상용하기 때문에 웬만한 실력으로는 저들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 그렇지만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주변국가에 나가서 교역자들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격은 경험과 언어적 구사 능력이 있어야 한다. 나는 싱가포르로 선교지를 옮긴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국지적 선교에서 국제적 선교로 탈바꿈되었다는 점이 나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은무 선교사(1976년 인도네시아의 정글인 칼리만탄에서 현지인들과 교회 설립 사역을 했다. 2차 텀에는 1985년 칼리만탄에서 안중안 신학교 설립에 참여했으며,1990년 선교지를 싱가포르로 옮겨 현지인 선교 훈련원을 맡았다. 또한 인도네시아 바탐 섬, 반둥에 신학교를 설립해 현지 지도력 개발에 힘썼다. 이어 1999년부터는 싱가포르 베다니 선교대학원에서 강의하며 말레이시아의 바하사 신학교 프로젝트를 개발해 현지인 지도력 중심의 사역을 이루어냈다. 현재 선교동역네트웍 KIMNET 사무총장, 트랜스폼월드 4/14 운동 담당 부서인 NEW GENERATION 실무 책임자, 프라미스 교회 산하 GEN-Global Education Network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