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금) 지미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협상으로, 북한에서 7개월 간 수감 중이던 아이잘론 말리 곰즈(31)씨가 미국으로 돌아왔다. 친구 였던 곰즈 씨의 신변안전을 위해 그간 언론과의 접촉을 꺼려왔던 로버트 박 선교사(29)가 최근 미국 잡지 크리스채너티투데이와의 단독인터뷰를 통해 지난 7개월 간의 침묵을 깨고, 심경을 밝혔다. 이 기사는 크리스채너티투데이 인터넷 판을 통해 30일 자로 보도됐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북한의 인권참상과 기독교인 박해를 세간에 알리기 위해 두만강을 넘어 북한으로 건너간 로버트 박 씨는 입북한 뒤 체포 돼 6주 동안 북한에 수감됐다 풀려났다. 곰즈 씨와 박 씨는 서울에 위치한 같은 교회에 출석하며 북한을 위해 기도해왔다.
곰즈 씨의 석방 이후 첫 공식 인터뷰를 통해 박 씨는 “북한을 떠난 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북한의 상황이 얼마나 극악한 지 더 잘 알게 됐기에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박 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 : 편집자주)를 앓고 있으며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학대를 당하고 있는 감정을 호소하는 불안 증세를 겪고 있다.
그는 “나는 하나님께 화나지 않았다. 단지 교회들에게 실망했다”며 “내가 바라고 기도하는 것은 교회들이 함께 일어나 북한의 자유화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라고 밝혀 그가 원하는 것은 북한 인권 상에 대한 인식과 연합운동이라는 것을 알렸다. 또 “앞으로는 누구도 북한의 자유화를 위해 북한에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리조나 투산에 있는 병원에서 전화로 인터뷰에 응한 박 씨는 현재 심경을 전하면서 “만약 여러분이 북한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악한 일을 목도했는데 다시 서구 사회에 돌아와 보니 축하를 받는다고 생각해 보라. 오히려 더 화나고 실망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북한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생각들에 괴롭다.”고 말하기도 했다.
21살에 기독교인이 되었고 2007년 선교사로 파송받아 활동해 왔다는 박 씨는 “북한을 떠날 때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어떤 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잠언 31장 8절~9절, 시편 82장2절~4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이 두 구절은 모두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를 돌아보고 그들을 위해 송사하라는 구절이다.
북한에 건너간 이유에 대해 “선교사 활동을 통해 북한 사람들을 사랑하게 됐다. 북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높여 정치체제에 맞서는 인권단체들이 하나된 큰 운동을 일으키길 소망했다”고 밝혔다.
“우리는 함께 북한의 인권탄압을 멈춰야 합니다. 제가 들어가기 전에 북한을 위한 운동이 일고 있었다면 저는 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앞으로는 어떤 누구도 북한의 자유화를 위해 북한에 들어가는 행위를 하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물론 그 자신도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내가 바랬던 것은 나의 희생을 통해 회개운동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북한 문제를 인식하고 드러내 말하길 원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기독교인들이 북한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북한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탈북자들과 탈북자를 돕는 북한 주민을 물질로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은 가족들과의 상봉을 위해 접경 위험 지역에서 돈을 구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타 단체들이 알 지 못하는 들어갈 수 없는 지역에 보내진 음식을 가져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박 씨는 “물론 힘이 드는 일이지만, 교회와 인권 단체들이 하나로 뭉치는 일이 가장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홀로코스트 이후로 최고로 체계적이고 의도적인 대 학살이 북한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 세대가 뭉쳐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북한의 인권참상과 기독교인 박해를 세간에 알리기 위해 두만강을 넘어 북한으로 건너간 로버트 박 씨는 입북한 뒤 체포 돼 6주 동안 북한에 수감됐다 풀려났다. 곰즈 씨와 박 씨는 서울에 위치한 같은 교회에 출석하며 북한을 위해 기도해왔다.
곰즈 씨의 석방 이후 첫 공식 인터뷰를 통해 박 씨는 “북한을 떠난 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북한의 상황이 얼마나 극악한 지 더 잘 알게 됐기에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박 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 : 편집자주)를 앓고 있으며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학대를 당하고 있는 감정을 호소하는 불안 증세를 겪고 있다.
그는 “나는 하나님께 화나지 않았다. 단지 교회들에게 실망했다”며 “내가 바라고 기도하는 것은 교회들이 함께 일어나 북한의 자유화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라고 밝혀 그가 원하는 것은 북한 인권 상에 대한 인식과 연합운동이라는 것을 알렸다. 또 “앞으로는 누구도 북한의 자유화를 위해 북한에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리조나 투산에 있는 병원에서 전화로 인터뷰에 응한 박 씨는 현재 심경을 전하면서 “만약 여러분이 북한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악한 일을 목도했는데 다시 서구 사회에 돌아와 보니 축하를 받는다고 생각해 보라. 오히려 더 화나고 실망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북한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생각들에 괴롭다.”고 말하기도 했다.
21살에 기독교인이 되었고 2007년 선교사로 파송받아 활동해 왔다는 박 씨는 “북한을 떠날 때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어떤 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잠언 31장 8절~9절, 시편 82장2절~4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이 두 구절은 모두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를 돌아보고 그들을 위해 송사하라는 구절이다.
북한에 건너간 이유에 대해 “선교사 활동을 통해 북한 사람들을 사랑하게 됐다. 북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높여 정치체제에 맞서는 인권단체들이 하나된 큰 운동을 일으키길 소망했다”고 밝혔다.
“우리는 함께 북한의 인권탄압을 멈춰야 합니다. 제가 들어가기 전에 북한을 위한 운동이 일고 있었다면 저는 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앞으로는 어떤 누구도 북한의 자유화를 위해 북한에 들어가는 행위를 하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물론 그 자신도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내가 바랬던 것은 나의 희생을 통해 회개운동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북한 문제를 인식하고 드러내 말하길 원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기독교인들이 북한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북한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탈북자들과 탈북자를 돕는 북한 주민을 물질로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은 가족들과의 상봉을 위해 접경 위험 지역에서 돈을 구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타 단체들이 알 지 못하는 들어갈 수 없는 지역에 보내진 음식을 가져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박 씨는 “물론 힘이 드는 일이지만, 교회와 인권 단체들이 하나로 뭉치는 일이 가장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홀로코스트 이후로 최고로 체계적이고 의도적인 대 학살이 북한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 세대가 뭉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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