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률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가장 귀한 법칙을 말한다.
여러종교에서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이 황금률에 대해 말해왔다.
기독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식이고 기본이라는 말이다.
즉,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도 이 정도는 알고 있다는 뜻이다.
성경에도 이 황금률이 있다.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말씀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지만, 굳이 이 황금률을 말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이기 때문이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황금률을 기억할 것이다. 이 것은 세상에서 살아갈 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원칙이다. 구원에 관계된 법칙은 아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자라면 그 삶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데 대해 그에 상응한 보상을 바라시는 것으로 오해할 것도 아니다. 주님의 종님(?)을 극진히 대접하여 너와 네 집이 복을 받으라는 식의 황당한 적용으로 오도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로서 이 땅을 살아갈 때, 모든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 누구에게나 이 법칙을 적용하라고 요청하신다. 하여,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이 법칙을 몸에 익히고, 삶에 녹여내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에 어떤 식당에 갔다가 황당한 일을 당한 일이 있었다.
종업원이 나에게 그릇을 거의 던지다시피 내려놓았다.
착각이려니 생각했으나 아내와 동료 목사님께도 같은 행동을 한 것으로 보아 의도적인 것이었다.
인종차별을 받았던 것일까? 내가 아시안이기 때문에 그런 대접을 받았다면 정말 큰 사건이 벌어질 태세였다.

하지만, 그도 아시안이었다. 하루에도 무수한 손님들을 맞이할 터인데 한국사람들만 골라서 그렇게 한다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었을터..
매니저를 불러 이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는 정말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하면서, 최근에 그와 관계된 몇가지 사건을 알려주었다.

한국인들이 그 종업원에게 유독 거만하게 대하고, 손가락으로 스냅을 한다든지, 휘파람을 부는 식으로 불렀다고 했다.
플리즈와 땡큐를 사용하지 않고, 지시적 언어와 고압적 자세로 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팁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인격적 모멸감을 느낄만 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내가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 날, 그 메니저가 나에게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기에 받는대로 줍니다. 좋은 걸 받으면 좋게, 나쁜 걸 받으면 나쁜게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 우리는 보통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이지만, 은혜 받은 우리들로서는 상식이 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우리도 남을 대접해야" 하는 것이다.

믿음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 은혜로 받은 구원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 구원 이후의 변화된 삶을 증거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삶으로 증거되지 않는 복음은 이 시대에는 더 이상 "복음"이 아닌 것이다.
주는 만큼 받는 법칙-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황금률임을 기억하자.

식당의 종업원들을 더욱 극진히 대접하기로 결심한 밤에
김인집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