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장에 보면 하마터면 하늘과 땅의 전쟁이 일어날 뻔 했던 에피소드를 담고있다. 예수께서 열두영이나 더 되는 천군동원령을 내리실수도 있는 상황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신이로서 전쟁을 원치 않으시고 평화의 길을 걸으셨던 것이다.

‘전쟁과 평화’ 라는 제목은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제목으로 유명하지만 평범한 그 누구라도 생각하는 명제이다. 내 선친께서 예수를 믿으시고 성경을 읽으면서 제일 질문을 많이 하신 것은 왜 구약의 세계에서 그토록 전쟁이 많은가? 하는 것이었다. 더 나가서 하나님은 왜 전쟁을 허락하시는가?는 질문이었는데 나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설명하였지만 그렇게 잘 이해하거나 수긍하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지난 3천 년 동안 지구상에는 3천3백 번의 전쟁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역사란 전쟁의 역사였다는 말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이다. 미소 간의 핵 경쟁이 한창 진행되던 때는 지구를 41회나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를 양국이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핵 확산을 억제하는 기구가 설치되어 감시하고 있지만 냉전시대보다 지금 더 많은 나라들이 핵보유국이 되어있고 사실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가 여전히 핵을 포기하지 않는 가운데 있기 때문에 눈가리고 아웅인격이다.

사실 일본이나 한국도 마음만 먹으면 핵보유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동족인 북한이 핵보유하는 이유를 평화를 원하는 자위수단이라고 한다. 헨리 키신저가 ‘미소핵우산아래 평화’란 그럴듯한 주장을 했는데 마치 Pax Romana 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평화를 위해서 핵폭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평화를 위해서는 핵폭탄을 없애야 한다. 왜냐하면 핵을 가지면 언제든지 그것을 사용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절제할 수 없는 까닭이다.

우리는 그 좋은 예를 일본 낭아사끼와 히로시마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도 한국동란중에 미국이 원폭을 투하했다면 오늘날처럼 분단의 비극이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참 위험한 생각이다. 원폭의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이 큰 것이다. 한국동란 60주년이 코앞에 있다. 한반도에 다시금 전쟁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전쟁은 참혹하고, 전쟁은 잔인하며, 전쟁은 비참하다. 전쟁은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모든 것을 파괴한다. 그래서 전쟁은 끔찍한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더더욱 한 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그러면 어떻게 평화를 가져올수 있을까? 평화를 위해 유엔에 평화유지군이 있고 우리나라는 최대수혜국이다. 그러나 그 평화유지군이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전쟁을 억제할 수 있을 지 모르나 평화를 만들 수는 없다.

오직 평화의 왕이신 주님만이 무기를 불사르고 전쟁을 그치게 하실 수 있다. 그분만이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의 마음에 있는 죄와 욕심과 증오를 없애실 수 있다. "저가 땅끝가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시46:9)하셨고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12: 18)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