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의 유리 현상은 한인교회 전반에 걸쳐 과거부터 깊게 제기되어 온 문제다. 한 극단에서는 신학적 지성이 목회 현장의 영성을 제한하는 방해 요소로 취급되기도 하고 또 다른 극단에서는 목회적 열성이 신학없이 표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에 본지는 현재 신학교에서 학업 중이면서 동시에 한인교회에서 목회를 함께 하고 있는 목회자들을 만나 신학의 학문성과 목회의 현장성 간에 일치점을 찾아 본다. 시카고 지역에는 게렛신학교, 노스팍신학교, 루터란신학교, 맥코믹신학교, 무디신학교, 북침례신학교, 시베리웨스턴신학교, 시카고신학교, 시카고대 신학대학원, 위튼대학교, 트리니티신학교 등 다양한 신학교가 밀집돼 있으며 최근 한 통계에서 미국 전역에서 신학생 배출율 1위 도시인만큼 이 문제를 논하기에 좋은 토양을 갖고 있다.
네번째 인터뷰는 게렛신학교에서 실천신학을 전공하고 있는 박정은 전도사다. 박 전도사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했으며 교회 청년부 시절 소명을 받고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진학해 M.Div.를 마쳤다. M.Div. 과정을 공부하며 교회를 섬기던 중 한국의 교회교육 현실에 문제 의식을 갖게 됐고 이에 대한 답을 얻고자 버지니아로 유학와 유니온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 & Presbyterian School of Christian Education)에서 기독교 교육학으로 M.A. Th.M. 학위를 취득했다. 볼티모어에서 한인교회를 섬기면서 이번에는 이민교회 교회교육이 당면한 문화와 교회교육 문제를 고민하던 중 게렛신학교로 진학했다. 현재 그녀는 게렛신학교에서 실천신학(Pastoral Theology, Personality and Culture)으로 Ph.D. 과정 중에 있으며 글렌브룩연합감리교회에서 유스 부서를 맡고 있다.
-전도사님의 전공에 대한 간략한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신학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학문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지만 우리 인간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저의 전공은 “인간의 깨어진 자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신학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 오는 데에 비해 저의 연구는 아래에서 위로 접근해 갑니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학문이죠. “하나님이 누구신가”라는 질문보다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연구하고 우리가 그렇게 믿게 된 배경을 인류학, 심리학, 사회학적 방법을 통해 연구합니다. 사회과학을 통해 비판적으로 현장을 분석하고 이것에서 신학적 적용과 실천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다른 학문에 비해서 현장 목회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분야입니다. 여기서 현장이라는 말은 ‘세상’을 말합니다. 저는 대학생 때부터 서울 강남에서 과외 교사를 했습니다. 그때 인성 교육이 무너져 버린 한국 교육 현실을 통감했습니다. 청소년들이 공부를 하는데 부모님이 우선순위를 갖고 있는 것, 그것을 공부하면 용돈을 더 주는 것을 먼저 공부하고 그 외의 것은 뒷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신학교에 가고 전도사 사역을 하게 됐는데 교회교육은 이러한 공교육을 신앙교육으로 바로 잡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방학에 여름 캠프를 해도 학원 개강하는 일정을 고려하지 않으면 텅텅 비어 버린 캠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이민교회 교육은 이것보다 더 어려움이 큽니다. 한국은 그래도 그 문화에 맞는 교회교육 전문가가 있습니다. 반면, 대부분 이민교회 청소년 부서는 유학 신학생들이 맡고 있는데 이들은 목회 대상자들인 청소년과는 다른 한국적 문화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유학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사역지를 찾기에 청소년 목회의 전문성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이민교회의 경우는 부모가 언제 이민 왔느냐에 따라,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냐에 따라, 영어 능력에 따라, 어느 커뮤니티에 속해 있었느냐에 따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갖게 됩니다. 한류 이전과 한류 이후가 또 다릅니다. 부연하면, 1.5세와 2세, 2세와 3세가 다르고 1.5세 중에도 언제 이민 왔느냐에 따라 문화가 다른데 지금 이민교회의 교회교육은 단순히 언어를 매개로 한데 묶어 놓고 있으며 그것도 영어냐 한국어냐의 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기독교 교육을 공부해서 그 문제가 풀리지 않으셨나요? 왜 전공을 기독교 교육에서 현재의 전공으로 바꾸셨나요?
교육은 전인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전인적 교육을 말하려면 인간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 교육을 공부할 때는 교육 이론에 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지만 인간 자체를 이해하는 데에는 미흡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야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게렛신학교로 진학하게 됐습니다. 저는 교육에 있어서 사회, 문화, 심리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인교회 차세대 교육 문제에 있어서 좋은 모델이 될만한 것을 찾으셨습니까?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만큼 답도 하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본 많은 교회들을 예로 들면, 어떤 교회는 모든 2세들이 한국어를 읽고 쓰고 말하는데 완전해서 1세와 함께 성장해 가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2세들에게 독립권을 주어서 별도로 성장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이 교회들 중에는 계속해서 2세 교회를 개척해 가는 교회도 있습니다. 다민족교회로 성장해 가는 교회도 있지요. 제가 섬기는 글렌브룩교회는, 1세들은 영어를 하려고 노력하고 2세들은 한국어를 하려고 노력하면서 자연스럽게 1세와 2세가 하나되는 가족같은 교회 모델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 있어서 하나의 답을 찾기보다는 현재의 교회교육이 이민자 가정의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각 교회들이 나름의 상황 속에서 다양한 답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것까지가 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목회가 이뤄질 때 성도들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렇게 하면 된다”는 답을 추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구성해 가는지 알게 되면 그에 따른 다양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많은 목회자, 신학생들이 이민목회와 교육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류 신학교는 이 문제를 풀 적합한 토양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목회적 돌봄에 관한 개론 강의를 맡아 TA(Teaching Assistant)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교수도 백인이었지만 학생들 중 90%가 백인이었습니다. 이들은 이혼 문제, 동성애 문제, 십대 임신 문제 등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로 토론합니다. 미국적 컨텍스트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공부하고 있는 한인 신학생들이 금,토,일요일에 만나는 목회 현장의 문제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만약 우리 신학생들이 이민 목회에서 만나는 문제를 갖고 학교로 나온다면 교수들도 답이 없습니다. 이것은 이민목회를 고민하고 있는 우리들이 직접 뛰어들어 찾아내고 풀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또 한가지는 신학과 현장의 분리, 신학과 신앙의 분리가 문제입니다. 배우는만큼 실천하고 지식이 삶이 되어야 하는데 머리와 가슴의 거리가 너무 멉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신학이 실천신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푸코를 이야기하고, 포스트 콜로니얼을 이야기하지만 모든 출발점과 귀착점은 실천이어야 합니다. 신학은 현장의 고민을 성서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등 분야별로 옮겨 담아 연구하고 답을 찾아 현장에 다시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에는 이민 목회의 현장에서 당면한 하루 하루의 삶의 너무 바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교와 교회가 함께 가기 위해서는, 힘들겠지만, 이 두 곳에 모두 참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르친다든지, 가르치면서 목회 현장의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신학교에서도 실천신학에 대한 인식이 더욱 적극적인 태도로 변해야 할 것입니다.
-전도사님의 신학적 고민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 속에 있는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지요? 이민목회의 경우 미국사회 속의 한인들의 문화라는 이질성에 주목할 수도 있겠지만 한인들 안에서도 개인들이 가진 독특한 문화적 개별성을 고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앞서 지적한대로 한국어를 쓰는 1세 한인, 영어를 쓰는 2세 한인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영어를 할 줄 아느냐”라는 단순한 요소 하나로 문화를 구분짓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0% 한인 목회자가 백인 교회에 부임해서 목회도 잘 하고 성도들과도 잘 어울린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의 본래 언어는 한국어이고 문화적 배경도 철저히 한국인데 말입니다. 저는 한인 1세와 2세가 비슷하게 생긴 것이 우리로 하여금 오류를 범하게 한다 생각합니다. 아예 다르게 생겼으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모가 비슷하기에 서로 같다고 생각하고 다름이 발생할 때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려 하지 않고 자기 방식에 그 사람을 맞추려 합니다. 이민교회 성도들은 1세와 2세가 다르기도 할 뿐 아니라 1세 회중들도 개인이 모두 다르고 2세 회중들도 그렇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저 사람이 지금까지 수십년을 살아온 문화적 배경 속에 동일하게 들어가서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저는 문화적 문제를 고려함에 있어서 서로의 다름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부분이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하는지를 지적하는 것이며, 그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를 전제할 때 1.5세 목회자에 대한 정의도 새롭게 필요합니다. 저는 1.5세를 고등학생 이전에 이민 왔다, 혹은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구사한다는 기준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를 ‘가운데 있는 자’로 인식하고 그것을 장애물이라기보다는 두 세대를 매개할 수 있는 사명이라 바라보는 거룩한 부담을 느끼는 자로 봅니다. 1세와 2세의 다리가 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중언어 능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가 1.5세입니다.
우리는 1세와 2세를 연결해 줄 2세 담당 목회자를 뽑을 때 영어 실력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는 오류를 범합니다. 영어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을 1.5세로 규정하며 2세들에게 1세들과의 연결점을 만들어 주려는 열의가 있느냐입니다. 부모들은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우리 애들은 영어가 편한 2세들이니 영어 잘하는 사람을 목회자로 뽑아 주세요”라고 합니다. 그러나 목회에 있어서 언어는 도구이지 목회의 모든 것이 아닙니다. 과연 그 목회자가 그 분야에 소명이 있는가가 가장 먼저 고려 되어야 하며 그 후에 그가 영어를 잘한다면 그것은 그의 장점인 것입니다. 언어를 뛰어 넘어 양 세대를 오고 가려는 열정이 필요하며 이 열정을 소명으로 아는 자가 1.5세입니다. 누구는 한국어를 잘하니 1세 목회자, 누구는 영어를 잘하니 2세 목회자, 누구는 둘 다 할 줄 아니 1.5세 목회자라는 식의 언어를 통한 규정보다는 그 목회자가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전도사님은 실천신학을 전공하며, 차세대 사역에 대한 실천적 해법을 찾으셨습니까?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차세대 사역을 위해서 차세대 목회자에 대한 교회들의 인식이 개선되고 2세들을 목회자로 양성하는 일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주류 신학교를 볼 때, 한인 유학생들은 어느 학교에나 많지만 2세 한인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신학교도 내일의 신학생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목회자를 키우는 일에 더 나서야 하겠지요. 2세의 문화를 아는 2세들이 목회 현장에 더 많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한인교회의 2세 사역이 그다지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소년원 사역을 하던 당시, 소년원 안에 있는 청소년, 그들을 그렇게 만든 책임은 사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리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표현이긴 하지만 지금 2세 사역이 어려움을 겪는 것에는 1세들의 책임이 적지 않습니다. 2세 목회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자신은 이미 목회자가 됐는데 교회에서는 여전히 고등학생 정도로만 인식되는 것입니다. 한인교회 1세들이 2세 목회자 양성을 등한히 했으며 2세들이 목회에 소명을 받더라도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멘토링해서 미래의 사역자로 키워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그를 여전히 어린 아이 정도로만 보는 시각을 가져 왔습니다. 그러니 많은 2세 목회자들이 1세들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네 전도사님. 오늘 인터뷰에 감사합니다.
네번째 인터뷰는 게렛신학교에서 실천신학을 전공하고 있는 박정은 전도사다. 박 전도사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했으며 교회 청년부 시절 소명을 받고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진학해 M.Div.를 마쳤다. M.Div. 과정을 공부하며 교회를 섬기던 중 한국의 교회교육 현실에 문제 의식을 갖게 됐고 이에 대한 답을 얻고자 버지니아로 유학와 유니온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 & Presbyterian School of Christian Education)에서 기독교 교육학으로 M.A. Th.M. 학위를 취득했다. 볼티모어에서 한인교회를 섬기면서 이번에는 이민교회 교회교육이 당면한 문화와 교회교육 문제를 고민하던 중 게렛신학교로 진학했다. 현재 그녀는 게렛신학교에서 실천신학(Pastoral Theology, Personality and Culture)으로 Ph.D. 과정 중에 있으며 글렌브룩연합감리교회에서 유스 부서를 맡고 있다.
-전도사님의 전공에 대한 간략한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신학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학문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지만 우리 인간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저의 전공은 “인간의 깨어진 자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신학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 오는 데에 비해 저의 연구는 아래에서 위로 접근해 갑니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학문이죠. “하나님이 누구신가”라는 질문보다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연구하고 우리가 그렇게 믿게 된 배경을 인류학, 심리학, 사회학적 방법을 통해 연구합니다. 사회과학을 통해 비판적으로 현장을 분석하고 이것에서 신학적 적용과 실천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다른 학문에 비해서 현장 목회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분야입니다. 여기서 현장이라는 말은 ‘세상’을 말합니다. 저는 대학생 때부터 서울 강남에서 과외 교사를 했습니다. 그때 인성 교육이 무너져 버린 한국 교육 현실을 통감했습니다. 청소년들이 공부를 하는데 부모님이 우선순위를 갖고 있는 것, 그것을 공부하면 용돈을 더 주는 것을 먼저 공부하고 그 외의 것은 뒷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신학교에 가고 전도사 사역을 하게 됐는데 교회교육은 이러한 공교육을 신앙교육으로 바로 잡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방학에 여름 캠프를 해도 학원 개강하는 일정을 고려하지 않으면 텅텅 비어 버린 캠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이민교회 교육은 이것보다 더 어려움이 큽니다. 한국은 그래도 그 문화에 맞는 교회교육 전문가가 있습니다. 반면, 대부분 이민교회 청소년 부서는 유학 신학생들이 맡고 있는데 이들은 목회 대상자들인 청소년과는 다른 한국적 문화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유학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사역지를 찾기에 청소년 목회의 전문성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이민교회의 경우는 부모가 언제 이민 왔느냐에 따라,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냐에 따라, 영어 능력에 따라, 어느 커뮤니티에 속해 있었느냐에 따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갖게 됩니다. 한류 이전과 한류 이후가 또 다릅니다. 부연하면, 1.5세와 2세, 2세와 3세가 다르고 1.5세 중에도 언제 이민 왔느냐에 따라 문화가 다른데 지금 이민교회의 교회교육은 단순히 언어를 매개로 한데 묶어 놓고 있으며 그것도 영어냐 한국어냐의 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기독교 교육을 공부해서 그 문제가 풀리지 않으셨나요? 왜 전공을 기독교 교육에서 현재의 전공으로 바꾸셨나요?
교육은 전인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전인적 교육을 말하려면 인간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 교육을 공부할 때는 교육 이론에 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지만 인간 자체를 이해하는 데에는 미흡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야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게렛신학교로 진학하게 됐습니다. 저는 교육에 있어서 사회, 문화, 심리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인교회 차세대 교육 문제에 있어서 좋은 모델이 될만한 것을 찾으셨습니까?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만큼 답도 하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본 많은 교회들을 예로 들면, 어떤 교회는 모든 2세들이 한국어를 읽고 쓰고 말하는데 완전해서 1세와 함께 성장해 가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2세들에게 독립권을 주어서 별도로 성장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이 교회들 중에는 계속해서 2세 교회를 개척해 가는 교회도 있습니다. 다민족교회로 성장해 가는 교회도 있지요. 제가 섬기는 글렌브룩교회는, 1세들은 영어를 하려고 노력하고 2세들은 한국어를 하려고 노력하면서 자연스럽게 1세와 2세가 하나되는 가족같은 교회 모델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 있어서 하나의 답을 찾기보다는 현재의 교회교육이 이민자 가정의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각 교회들이 나름의 상황 속에서 다양한 답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것까지가 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목회가 이뤄질 때 성도들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렇게 하면 된다”는 답을 추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구성해 가는지 알게 되면 그에 따른 다양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많은 목회자, 신학생들이 이민목회와 교육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류 신학교는 이 문제를 풀 적합한 토양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목회적 돌봄에 관한 개론 강의를 맡아 TA(Teaching Assistant)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교수도 백인이었지만 학생들 중 90%가 백인이었습니다. 이들은 이혼 문제, 동성애 문제, 십대 임신 문제 등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로 토론합니다. 미국적 컨텍스트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공부하고 있는 한인 신학생들이 금,토,일요일에 만나는 목회 현장의 문제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만약 우리 신학생들이 이민 목회에서 만나는 문제를 갖고 학교로 나온다면 교수들도 답이 없습니다. 이것은 이민목회를 고민하고 있는 우리들이 직접 뛰어들어 찾아내고 풀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또 한가지는 신학과 현장의 분리, 신학과 신앙의 분리가 문제입니다. 배우는만큼 실천하고 지식이 삶이 되어야 하는데 머리와 가슴의 거리가 너무 멉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신학이 실천신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푸코를 이야기하고, 포스트 콜로니얼을 이야기하지만 모든 출발점과 귀착점은 실천이어야 합니다. 신학은 현장의 고민을 성서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등 분야별로 옮겨 담아 연구하고 답을 찾아 현장에 다시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에는 이민 목회의 현장에서 당면한 하루 하루의 삶의 너무 바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교와 교회가 함께 가기 위해서는, 힘들겠지만, 이 두 곳에 모두 참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르친다든지, 가르치면서 목회 현장의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신학교에서도 실천신학에 대한 인식이 더욱 적극적인 태도로 변해야 할 것입니다.
-전도사님의 신학적 고민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 속에 있는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지요? 이민목회의 경우 미국사회 속의 한인들의 문화라는 이질성에 주목할 수도 있겠지만 한인들 안에서도 개인들이 가진 독특한 문화적 개별성을 고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앞서 지적한대로 한국어를 쓰는 1세 한인, 영어를 쓰는 2세 한인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영어를 할 줄 아느냐”라는 단순한 요소 하나로 문화를 구분짓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0% 한인 목회자가 백인 교회에 부임해서 목회도 잘 하고 성도들과도 잘 어울린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의 본래 언어는 한국어이고 문화적 배경도 철저히 한국인데 말입니다. 저는 한인 1세와 2세가 비슷하게 생긴 것이 우리로 하여금 오류를 범하게 한다 생각합니다. 아예 다르게 생겼으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모가 비슷하기에 서로 같다고 생각하고 다름이 발생할 때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려 하지 않고 자기 방식에 그 사람을 맞추려 합니다. 이민교회 성도들은 1세와 2세가 다르기도 할 뿐 아니라 1세 회중들도 개인이 모두 다르고 2세 회중들도 그렇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저 사람이 지금까지 수십년을 살아온 문화적 배경 속에 동일하게 들어가서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저는 문화적 문제를 고려함에 있어서 서로의 다름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부분이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하는지를 지적하는 것이며, 그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를 전제할 때 1.5세 목회자에 대한 정의도 새롭게 필요합니다. 저는 1.5세를 고등학생 이전에 이민 왔다, 혹은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구사한다는 기준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를 ‘가운데 있는 자’로 인식하고 그것을 장애물이라기보다는 두 세대를 매개할 수 있는 사명이라 바라보는 거룩한 부담을 느끼는 자로 봅니다. 1세와 2세의 다리가 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중언어 능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가 1.5세입니다.
우리는 1세와 2세를 연결해 줄 2세 담당 목회자를 뽑을 때 영어 실력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는 오류를 범합니다. 영어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을 1.5세로 규정하며 2세들에게 1세들과의 연결점을 만들어 주려는 열의가 있느냐입니다. 부모들은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우리 애들은 영어가 편한 2세들이니 영어 잘하는 사람을 목회자로 뽑아 주세요”라고 합니다. 그러나 목회에 있어서 언어는 도구이지 목회의 모든 것이 아닙니다. 과연 그 목회자가 그 분야에 소명이 있는가가 가장 먼저 고려 되어야 하며 그 후에 그가 영어를 잘한다면 그것은 그의 장점인 것입니다. 언어를 뛰어 넘어 양 세대를 오고 가려는 열정이 필요하며 이 열정을 소명으로 아는 자가 1.5세입니다. 누구는 한국어를 잘하니 1세 목회자, 누구는 영어를 잘하니 2세 목회자, 누구는 둘 다 할 줄 아니 1.5세 목회자라는 식의 언어를 통한 규정보다는 그 목회자가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전도사님은 실천신학을 전공하며, 차세대 사역에 대한 실천적 해법을 찾으셨습니까?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차세대 사역을 위해서 차세대 목회자에 대한 교회들의 인식이 개선되고 2세들을 목회자로 양성하는 일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주류 신학교를 볼 때, 한인 유학생들은 어느 학교에나 많지만 2세 한인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신학교도 내일의 신학생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목회자를 키우는 일에 더 나서야 하겠지요. 2세의 문화를 아는 2세들이 목회 현장에 더 많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한인교회의 2세 사역이 그다지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소년원 사역을 하던 당시, 소년원 안에 있는 청소년, 그들을 그렇게 만든 책임은 사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리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표현이긴 하지만 지금 2세 사역이 어려움을 겪는 것에는 1세들의 책임이 적지 않습니다. 2세 목회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자신은 이미 목회자가 됐는데 교회에서는 여전히 고등학생 정도로만 인식되는 것입니다. 한인교회 1세들이 2세 목회자 양성을 등한히 했으며 2세들이 목회에 소명을 받더라도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멘토링해서 미래의 사역자로 키워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그를 여전히 어린 아이 정도로만 보는 시각을 가져 왔습니다. 그러니 많은 2세 목회자들이 1세들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네 전도사님. 오늘 인터뷰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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