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일본의 모터 업계 대부분은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대 기업들은 대개 50년 이상 역사와 숙련된 인력을 자랑하는 명문기업이었습니다. 그런 회사와 싸워 이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자금력? 참신한 인재? 지명도? 그동안 쌓아올린 기업실적? 그런 것들로는 도저히 게임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가모리 사장은 이길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손을 떼고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때 자신의 시도가 ‘무모한 도전’과도 같았다고 회고합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자신감 이었습니다.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애먼짓한다.’, ‘거봐라, 내가 뭐라고 했냐?’ 는 비아냥 소리가 죽기보다 듣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

‘접대나 뇌물로 인맥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결국엔 내 함정을 내가 파는 일이 될 것이다. 실적을 올리려고 단기전으로 승부한다면 하루살이 같은 목숨을 연명하느라 구차해질 것이다. 사실 전통 있는 회사라 해도, 내가 근무해보니 대단할 것도 없더라, 크다고 이기는 것 아니라, 돈이 없어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한 두 사람만이라도 제대로 일한다면 큰 조직도 이길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 나가모리 사장은 우선 모터 하나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품질을 갖춘 최고의 모터만 개발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수십 년에서 수백 년 전통을 가진 회사들을 지금 당장 이길 수 있는 뾰족한 경쟁력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터 부문은 이미 몇 년에 걸쳐 개발해 보았던 전력이 있기 때문에 시도해 볼만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잘하는 것으론 부족하고, 월등히 잘하지 않으면 곤란했습니다. 나가모리 사장은 ‘월등히 잘하기 위한’ 행동강령을 정해두었습니다.

(배(倍)로 투자하라: 두 배 더 오래 일하라.) “인간이 아무리 자신의 시간을 전부 일에 투자한다고 해도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다. 24시간 내내 일을 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사람이라면 잠도 자두어야 하고 목욕도 해야 하고 한 끼에 최소한 10분-20분 정도는 밥 먹는데 시간이 든다. 이것저것 불필요한 시간을 아무리 떼어내도, 적어도 8시간은 최소한 건강 유지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이렇게 개인적으로 써야하는 8시간을 빼면 16시간이 남는다. 보통 사람이 8시간을 일한다고 치면 16시간을 일하면 딱 두 배를 일하는 것이다.” 그렇게 계산을 마친 나가모리 사장은 창업직후 자신의 업무 원칙을 이렇게 세웠습니다. ‘앞으로 5년간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두 배를 일하라.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이길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면 그때는 포기하자! 그렇게 하고도 이길 수 없다면 그만두겠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물론 그전에 체력이 고갈 되거나 도저히 그런 생활이 지겨워 미쳐 버리고 말거나, 이길 힘이 비축되기도 전에 자본금이 말라버린다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말입니다. 나가모리 사장은 그런 각오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세 명의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회사가 살아남지 못한다면 드높은 기상도 꿈도 모두 사라지고 마니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납기일은 무조건 다른 회사의 절반으로 한다.) ‘경쟁업체가 1개월 만에 납기를 해낸다면, 일본전산은 15일 만에 가능하게 한다.’는 전제 조건을 세웠습니다. 경쟁업체보다 절반의 기일로 가능하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약 구상하고 설계한 제품을 생산하는데 한번 실패한다고 해도 ‘한번 더’ 해볼 수 있고, 한번 샘플을 완성시켜 납품했는데 거절당하면 ‘한번 더’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다른 사람보다 두 배 이 상 일을 하면, 기회도 두 배로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미 수십 걸음 앞서있는 경쟁사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것, 그 유일한 환경은 ‘누구에게든 하루는 24시간’이라는 조건뿐입니다. 결국 시간투입을 두 배로 늘려서 경쟁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보다 배 이상 일한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투자하다보니 개발과 납품일정을 앞당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 가지 경쟁 우위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자사가 가진 기술력을 어필하려 합니다. 그래서 기술력이라는 카드는 시선을 끌지 못하게 됐습니다. 가격 역시 마찬가지로 모두가 싸게 주겠다고 자기 살 깎아먹기 경쟁을 하면 결국 시장이 공멸하고 맙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명의 소기업이지만 가격은 제대로 받겠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 대신 “납기를 절반으로”라는 문구는 확실하게 결정타를 날려주었습니다. 처음에 믿지 못하던 거래처들이 약속대로 납기를 절반으로 지키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일본전산이 성장할 수 있었던 첫 관문이었습니다. 나가모리 사장도 24시간중 개인이 써야하는 시간을 8시간이내로 줄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고 합니다. 머리를 짧게 깎아 머리감는 시간을 줄이고, 옷 빨리 갈아입는 방법, 출근 빨리하는 방법, 이 빨리 닦는 방법, 회의 빨리 끝내는 방법 등을 궁리했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가 경쟁기업을 이기는 소중한 비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