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에게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는 늘 대단한 존재로 인식되어 있을 때가 많다. 믿을 수 있고 자신의 어떤 문제도 문제를 말하고 의논할 수 있는분으로… 그래서 한인들은 자신이나 가족에게 문제가 생겼거나 상담 또는 의논이 필요한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미국인들은 상담자를 찾고 그들의 목사도 자신의 영역을 벗어난 문제라고 생각하면 전문 상담소에 보낼 때가 많다. 그런데 한인들은 대개는 먼저 자신의 담임목사를 찾아 상담, 의논한다. 그리고 기도를 받는다. 그런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그들의 담임목사를 찾는다. 엄마나 보기좋은가.

이렇게 자신을 찾고 상담을 하려는 교인들에게 목회자들은 진지하게 그들을 만나고 대화를 해야 한다. 상담을 잘하는 목회자들은 어떤 목회자들일까?

필자는 편견이없는 권위적이지 않는 목사, 남성우위나 남존여비, 남녀차별적 보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는 목회자, 모든 사물을 남녀평등하게 보고 대하는 목회자, 평안한 마음으로 말문을 열도록 인도하는 목회자, 눈물을 흘릴때 아무말없이 냅킨을 쥐어주는 목회자가 그런 목회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목회자에게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자신이 믿고 말할 수 없는 것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들의 담임목사에게 달려온 성도들은 자신의 마음을 주저하지 않고 차별받지 않는다는 확신과 신뢰 속에서 그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그런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호소, 문제를 중간에 자르지말고 모두 다 들은 다음에는 들은 내용으로 당황해하거나 하지말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목회자 본인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당연히 도와 주어야 한다. 그러나 도와는주되 자신의 능력 밖에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속히 자신이 해결하려고 말고 전문상담가, 전문기관에 가도록 인도해주거나, 그럴 수 있도록 설득할 수있는 목회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이 문제 해결의 가장 빠른 방법이기때문이다.

필자는 목회자들은 보편적이고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지나치지 않은 상식적인 사고와 성품을 가진 목회자가 상담에서도 중립을 지키며 바른 상담을 할 수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위험하고 지양할 것은 발생한 모든 문제를 것을 영적인 문제 때문으로 귀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몸과 마음, 영으 로 만들았다. 자신이 가장 믿는 상담하러 간 목사에게서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영적인 문제 에서 결과했다는 해석은 간절하고 절망의 마음으로 상담받고 문제의 이슈를 알고 해결하고자 찾아간 지나친 죄의식 또는 “나는 귀신이 역사하는….” 라는 생각을 가지게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에게 들려준 말, 그가 들은 말을 절대로 잊지않는다. 어느 분이 필자에게 한 말이 있다. “저와 애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귀신만 쫒고, 기도만 했습니다” 라고 미안한 마음으로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문제는 상담을 하려는 그것이 원인이 어디서 욌는지 알아보고 상담하는 과정에 정정할 것은 정정하고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면 속히 전문상담가나 치료자를 찾아 바른 치료나 상담을 받도록 해 주는 것이다. 귀신이들렸다면 당연히 쫓아내야하지만 보편적으로 말하는 귀신의 역사라는것은 오늘날의 해석으로는 대개의 경우 신경정신적인 질환이나 문제로 인할 때가 많다.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귀신의 역사로 결론짓고는 자신들로 인하여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부인하고 빠진다. 문제가 있으면 상담을 받거나, 의사를 만나 문제를 해결하고, 진단이 필요하면 진단과 의료의 각 가지 검사와 진단을 받고, 약이 필요하면 처방을 받아 먹으면 되는 것이지 모든 문제를 귀신에게서 연유했다는 말은 틀린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할 때 사랑으로 만드셨다. 그 사랑 때문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까지 지셨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고 주님의 백성에게 맹세하신 단어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성경만 열면 만나는 그 단어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의 문제는 귀신의 역사”라는 말은 쉽게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목사님들은 상담의 전문적인 지식을 알고 진지하게 피상담자의 문제를 들을 때 이미 절반의 치료는 이루어진 것임을 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