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못하는 3중장애를 지닌 헬렌켈러는 설리반 선생의 노력으로 하버드대학까지 진학하여 공부할 수 있었고 훗날 평생 동안 농아를 위하여 헌신하며 희망과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삼중의 고통을 극복하고 사회복지와 복음을 위하여 생애를 바친 헬렌켈러는 [기적의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헬렌켈러는 생후 1년 반 동안은 발육이 좋은 아이였습니다. 19개월 때 중병에 걸려 시력, 청력, 언어 발생력을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설리반도 또한 불행한 과거를 지닌 여성이었습니다. 동생과 함께 고아원에 보내져서 학대와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동안 불결하고 열악 환경 가운데 남동생은 죽어갔고, 설리반은 실명직전까지 갔었습니다. 삶을 포기하려는 절망 가운데 있을 때 바바라 목사님을 만나 믿음을 갖게 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훗날 파킨스 맹학교에서 교사를 하던 중, 헬렌켈러의 가정교사 이야기를 듣고 자원합니다. 나이는 아직 20세에 불과하지만 설리반은 애정이 깊고, 신앙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처음으로 헬렌켈러를 만났을 때, 그녀는 6세가 되었는데도 아무런 교육이 되어있지 않았고 손으로 음식을 움켜먹고 닥치는 대로 주위 물건을 집어던지는 야수 그 자체였습니다.

그날부터 설리반과 삼중고의 소녀와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얼굴을 씻는 것도 머리카락을 빗는 것도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하는 것도 헬렌과 격투를 하면서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단지 울어대는 것과 소리 지르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해왔던 헬렌은 엄격한 교육에 전신으로 반항했습니다. 설리반은 신중하고 끈기 있게 단 하나 남아있는 인식의 통로인 촉각을 통해서 암흑에 갇힌 영혼을 향해서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때까지 갇혀있던 헬렌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지화법에 의해서였다고 훗날 헬렌이 고백합니다.

헬렌의 기억력과 상상력은 정상이었기에, 반복해서 가르치면서 같은 표현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자 잠재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는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암흑세계로부터 세상으로 끌어내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자고 있던 마음이 눈뜨기 시작하고 폭발적으로 언어를 습득하기 시작했고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헬렌의 놀람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1900년 20세가 된 헬렌은 레드 클리프 칼리지에 입학했습니다. 그때 그녀는 “나는 이제 장애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화법과 점자와 발성을 배워 정상인 이상의 지식을 얻어 대학에 입학한 그녀의 첫마디였습니다. 그리고 4년 후 세계 최초의 대학교육을 받은 맹, 농아로써 그녀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것입니다. 이 기적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경탄과 찬사를 받으며 그들에게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미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장애자에 대한 세상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말하지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엄청난 장애를 딛고 헬렌켈러가 삶의 희망의 빛을 발견한 일화가 있습니다. 헬렌이 꽃 한 송이를 꺾어서 설리반 선생에게 드렸습니다. 그때 설리반이 헬렌의 손바닥에 글을 썼습니다. [나는 헬렌을 사랑합니다.] 헬렌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사물의 이름은 배워 알 수 있었으나 사랑이라는 추상명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훗날 회고합니다. 설리반은 헬렌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에 댄 후 이마에 입을 맞추며 꼭 끌어안아 주었습니다. [사랑이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마음에 부어졌을 때 비로서 알 수 있는 것이란다.] 48년간 쏟아 부은 설리반 선생의 사랑이 기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헬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삶을 포기하려 할 때 만난 목사님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예수님을 통해 확실한 소망을 갖게 된 설리반은 어떤 역경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론 불가능한 상황을 허락하십니다. 모두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끝내는 일어서는 모습을 하나님은 기대 하십니다. 그 믿음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전능한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얼마든지 기적을 베푸실 수 있습니다. 불가능 앞에 섰을 때 참 믿음이 확인됩니다. 불가능으로 인하여 확인된 참 믿음은 얼마든지 불가능을 정복할 수 있게 됩니다.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불가능을 허락하십니다. 불가능에 직면한 상황은 가장 기적적이고, 축복적인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