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선교대회 둘째날은 기도와 찬양, 3명 강사의 간증과 선교 보고 등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북한선교대회 둘째날인 16일 저녁에는 전날 ‘크로싱’을 관람하며 북한 선교에 한껏 고무된 1세와 2세들이 시카고한인교회로 찾아 왔다. 유상준 씨는 전날의 짧은 선교 보고에 이어 자신의 탈북 사역에 관해 간증했으며 윤 김 전도사는 모인 회중들에게 선교 보고를 하고 선교에 도전을 던졌다. 대표적 북한인권운동가인 팀 피터스 선교사는 중국 내 탈북 여성과 어린이들의 현실에 관해 보고했다. 실제 탈북자, 한국 내 탈북자, 중국 내 탈북자를 망라하는 간증과 선교보고 후에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뜨거운 기도회가 진행됐다.

저는 한 일 없어, 모든 것이 다 그 분이 하시는 일

▲유상준 씨의 간증은 “자신이 무엇을 했다”가 아닌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능력에 관한 것이었다.
간증을 위해 강단에 올라 온 유상준 씨는 여전히 머뭇거렸다. 아내와 아들이 죽었고 자신의 옆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끌려가고 죽는 것을 직접 본 사람, 탈북 사역을 하다 섭씨로 영하 40도에까지 이르는 내몽고에서 4개월간 감금돼 고초를 겪은 사람이 가진 정신적 충격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탈북자들이 탈북 사역자들의 도움을 받아 기획 탈북을 하는 동영상을 틀어 준 후, 그는 말했다. “이건 아주 평화롭고 안전한 방법입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졸여지고 손에 땀이 나는 긴박한 동영상을 틀어 준 그는 오히려 무덤덤하기까지 했다. “(기획 탈북이 아닌) 많은 탈북자들이 혼자서 국경을 넘는데 이건 생명을 넘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무작정 살 길을 찾아 가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탈북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는 “인간이 스러지는 것을 보셨는가? 인간은 한계가 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탈북할 때, 다른 북한 주민을 탈북시킬 때,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접하며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저같은 자가 이런 일을 하려니 하나님께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면서 “분단 조국의 아픔을 아시는 여러분도 저와 함께 기도해 달라. 기도만이 이들을 살리는 길”이라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드린 모든 말씀은 제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광 받을 일인데 저처럼 부족한 사람이 증거했다”며 다시 인사하고 간증을 마쳤다. 그가 머뭇거린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보내라, 가게 하라, 권리를 포기하게 하라

▲26살 청년의 보고가 회중들의 마음에 강한 도전을 던졌다.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26살 신학생의 도전적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윤 김 전도사는 윗튼대학교를 졸업하고 무디신학교로 진학해 신학을 공부하다 북한에 대해 알게 되고 한국에 들어가 한국 내 탈북자 청소년들을 돕는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 북한의 실상을 들은 후, 인간적 양심과 신앙적 양심에 큰 도전을 받았다. 이후 시카고 지역에서 유스 목회를 하면서 동료 목회자들에게 북한 이야기만 했다. 3년간 “귀찮게” 하자 동료들은 그만 만나면 피할 정도였다. 북한에 미친 그는 Kacy Basketball and Turkey Bowl을 기획해 유스 그룹 연합 모임을 만들었다. 유스 그룹이 즐겁게 즐기는 모임이었지만 이것을 만든 이유는 이 자리에 모인 유스들에게 북한 선교에 관해 도전을 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북한에 더 가까이 가 보자는 뜻에서 한국으로 갔다. 사회자가 “1.5세”라고 소개하자 “저는 미국에서 태어난 2세”라고 정정한 그는 한국 말에 많이 서툴렀다. 그런 그가 자신이 한번도 살아 본 적이 없는 어머니의 나라로 가서 3년동안 한 일은 탈북자 청소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신앙적 위로를 주고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김 전도사는 “제가 시카고에서 유스 목회자를 하며 알게 된 것은 유스 목회자는 설교를 하면 40%는 하나님에 관해, 30%는 자녀를 위해 고생하는 부모에 관해, 30%는 유스에 관해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들에게 선교 단체를 통해 선교에 나서라.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라. 가난해지라”고 하면 아마 당장 교회에서 쫓겨날 것”라고 꼬집었다. 김 전도사는 “같은 한국인이지만 한국을 유일한 소망으로 삼고 탈북한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은 ‘왕따’다. 그러나 미국에서 간 한인 2세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동경의 대상이다. 이 둘이 함께 해야 한다”면서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인 것을 안다. 그러나 여러분의 자녀를 동족이 있는 한국으로 보내라. 그들에게 권리를 포기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게 하라”고 도전했다. 그는 “저는 이제 26살 밖에 안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라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유상준 씨의 관점에서 북한을 보고 자녀들로 하여금 북한을 품게 하라”고 보고를 끝맺었다.

인권의 사각지대 속의 사각지대

▲피터스 선교사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 여성과 어린이들의 삶을 집중 보고했다.
자신을 선교사이자 기독운동가로 소개한 팀 피터스 선교사는 탈북한 여성들과 그 어린이들이 겪는 고통을 보고했다. 모든 탈북자들이 죽음과 인권 유린에 직면하지만 특히 여성들은 성노예로 매매되고 고아가 된 어린이들도 그와 마찬가지 신세가 된다. 그는 “중국 국경 인근에 총 20여만명의 탈북자가 있다고 추산되며 이중 70%가 여성이며 2만4천명 정도 혹은 두배에 가까운 5만명 정도가 어린이라고 예측된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남성들에게 팔려간 여성들이 겪는 폭력과 정신적 충격을 보고하는 동영상을 제시했다. 동영상 속의 여성은 자신이 돈에 의해 팔렸다는 사실에 자존감을 크게 훼손 당했으며 탈출을 시도하다 초죽음까지 갔다. 그들의 자녀들은 어머니가 언제 도망갈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하루 하루를 살고 있었다.

‘꽃제비’로 유명한 탈북 어린이들의 실상도 보고됐다. 피터스 선교사는 “국경 근처에 탈북자들을 위한 고아원이 있지만 수용 규모가 현저히 적다”면서 “미주의 모든 한인교회가 하나씩 고아원을 운영한다 해도 부족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탈북 어린이들이 겪는 생존과 자존의 위협을 하나하나 보고하면서 한인교회들의 동참을 요청했다.

모든 집회가 끝난 후에는 북한 선교 관심자들이 이 3명의 강사들과 직접 면담하는 시간도 있었다. 특히 한인 2세들에게는 김 전도사와 함께 한국에서 탈북자 청소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사역의 문호가 활짝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