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의 어느 새벽기도 때 또렷이 들은 주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내 능력은 사랑이라는 채널을 통하여 흘러간다. 너희가 서로 열심히 사랑하며 기도한다면, 공동체 안에 못 고칠 병이 없으리라.”

그 날 아침 이 말씀은 마치 주님이 저의 심장에 곧장 들려주시는 음성처럼 강력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목회실 모임이 있었고, 마무리 기도를 하는데 다시 주님의 음성이 주어졌습니다. “목회실 안에서부터 서로를 위하여 사랑으로 중보하라.” 그 음성을 대언하며 손을 잡고 옆에 있는 동역자들을 위하여 중보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힘을 다하여 서로를 위하여 중보하며 기도하는데 간간이 흐느끼는 소리들이 들립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중보기도의 향이 하나님께 아름답게 올라가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정말 그 시간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 같은 은혜를 누렸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며 모두의 마음을 만져주고 계심이 느껴졌습니다.

“가장 가까이서 일하는 동역자들을 과연 얼마나 마음으로 사랑하며 그들의 아픔과 외로움과 고뇌를 함께 나누며 기도하였는가?” 성령님의 부드러운 책망의 음성이 이어졌고, 그저 우리는 고개를 떨구고 눈시울을 젖힐 뿐이었습니다. 목회실 모임이 끝난 후 몇몇 사역자님들이 찾아와 말합니다. “목사님, 오늘 모임 정말 좋았어요...” 주님을 사랑하기에 자신을 불사르듯 드리며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과 성도님들을 섬기지만, 저들의 마음 어디엔가는 채워져야 할 사랑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성도님들이 주시는 사랑도 필요하고 가족간의 사랑도 필요하지만, 동역자들간의 사랑도 필요함을 그 날 아침 깨우쳐주셨습니다. 주님은 그 모두의 사랑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을 계시하시곤 합니다. 때문에 우리 모두가 사랑의 명령에 순종할 때에만이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사랑에 대한 깊은 목마름이 채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 “하나님을 전심을 다해 사랑하고 또 이웃을 그렇게 사랑하자” 라는 표어와 함께 시작했습니다. 이제 한 해가 저물어가면서, 하나님은 제게 당신을 얼마큼 사랑했느냐고 묻지 아니하시고 저의 이웃을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는가 물으시는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주님이 원하시는 것만큼 사랑하지 못한 얼굴들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떠올려주시곤 합니다. 그 가운데에는 사랑하기가 좀 힘든 사람들도 끼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 다짐하면서도 주님이 원하시는 것만큼 이웃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사랑의 계명에 대한 숙제를 가지고 새 해를 맞이하는 느낌입니다.

켄 가이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우리 존재의 심장이 될 때, 행동은 자연히 달라지게 되어 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될 수 뿐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켄 가이어는 계속하여 말합니다. “하루가 끝나고 각자 침대에 누워 생각한다. 나는 오늘 사랑하며 살았나? 내 모든 활동에 고동치던 심장 박동은 과연 사랑이었나? 그것이 내 모든 대화에 나타났나?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었나? 오늘 내린 결정은 사랑에 기초한 것인가? 나는 사랑하며 살았나?”

올해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며 저는 켄 가이어의 이 질문을 묵상합니다. 나는 얼마나 사랑하며 올해를 보내었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주님께서 가장 위대하다고 가르쳐주신 두 가지 계명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그저 꽹과리에 불과하며 아무 유익도 없고 아무 의미도 없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올해를 보내면서 우리 모두 각자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는가?” 이 질문을 묵상하는 중에 떠올려지는 얼굴이 있다면 올해가 지나기 전에 용서와 화해와 격려의 언어들로 주님의 사랑을 표현합시다. 저도 그렇게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