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해방 후에도 흑백 차별이 여전했던 1920년대부터 시카고 남부 흑인가를 지켜온 안디옥침례교회(Antioch Missionary Baptist Church)가 57년째 개최하고 있는 성탄 기념 메시아 연주회에 전성진 목사가 섰다. 그는 올해로 15년째 이 연주회에서 테너 솔로를 연주하고 있다.
글렌뷰에서 94번 프리웨이를 타고 남쪽으로 20마일 가까이 가다 63가에서 내려 고개를 들면 바로 보이는 건물이 안디옥교회다. 이 교회는 ‘결코’ 부유해 보이지 않는 이 지역을 오랜 세월동안 지키며 흑인 커뮤니티의 안식처가 되어 왔다. 이미 1950년대에 성도 5백명에 이르렀고 지금은 1천명이 넘는 교세를 자랑하고 있다. 교회의 역사와 규모에 걸맞게 묵직한 벽돌로 지어진 건물 안에는 예수 승천을 그린 거대한 벽화와 비둘기가 날아가는 벽화가 보인다. 그 비둘기 벽화 밑에는 침례탕이 자리하고 있다.
9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교회에는 올해로 57주년을 맞은 시니어 콰이어가 있다. 이들은 매년 성탄이 되면 흑인만이 가진 열과 정(熱-情)을 발산하는 메시아 연주회를 연다.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로 마음껏 몸을 흔들며 자유롭게 외치는 이 연주회는 한인교회나 백인교회에서 보기 힘든 이른바 ‘흑인 스타일’로 진행된다.
전 목사가 매년 이곳을 찾는 이유는 베이스 윌리 브라운 때문이다. 1930년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브라운은 당시 흑인으로서는 드물게 음악으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며 왕성히 활동해 NBC 방송국의 한 쇼에서 솔로이스트를 맡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집회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음악인이자 교수이며 크리스천으로서 브라운은 흑인 사회 내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힌다. 이제 곧 80세를 맞이하는 그도 전 목사와 함께 이 음악회에 매년 서 왔다. 그는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 무대까지 왔고 무대에서도 거동이 불편해 일어서고 앉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듯 보였다. 그러나 일단 베이스 솔로 연주가 시작되자 교회당의 스테인글라스가 흔들릴 정도로, 뿜어내는 듯한 강한 중저음의 연주로 “역시 브라운”이라는 찬사와 기립박수를 받았다.
전 목사는 시카고리릭오페라단에 있을 때 브라운을 알게 됐다. 인종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친구가 된 그들은 20년째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시카고리릭오페라단 역사상 최초로 입단한 동양인 연주자였던 전 목사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당시 오페라단의 고참이었던 브라운은 알게 모르게 많이 도와 주었다. 이날 무대에 선 소프라노 타냐 소보손, 앨토 비키 핏맨도 모두 20년 지기들이다. 베이스인 브라운은 자신이 출연하는 공연에서 자신의 목소리에 적합한 테너가 없을 때 꼭 전 목사를 초청했다. 흑인 커뮤니티 내에서 한인인 전 목사가 성가대 지도도 하고 15년째 메시아 연주회에 초대받아 온 이유도 브라운의 목소리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전 목사의 실력을 그들이 높이 사기 때문이다. 반대로 전 목사도 자신이 지휘자로 있는 목사부부합창단 창단식 등에 브라운을 초청해 미국 주류사회도 인정하는 실력을 한인교계에 소개한 바 있다.
이날 전 목사는 유일한 한인으로서 무대에 서서 메시아 중 테너 솔로 5곡을 완벽히 연주하며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전 목사가 곡을 마칠 때마다 청중들의 박수가 쏟아졌고 연주를 마친 후 전 목사는 브라운과 굳게 악수한 후, 성가대원들과 한명 한명 인사했다. 객석에서는 전 목사가 음악목사로 섬기는 갈릴리교회의 이경희 목사와 성도들이 응원하고 있었고 이들을 보는 사람들마다 “닥터 폴(전 목사의 영어 이름)과 같이 왔느냐”, “놀라운(amazing) 실력이다”, “내년에 꼭 또 와서 음악회를 함께 감상하자”고 말을 걸어 왔다.
이날 2시간 이상의 연주회를 마치고 전 목사가 받은 사례금은 그가 교수 시절 1시간 성악 레슨을 해 주고 받았던 수업료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한창 잘 나가던 그때보다 지금을 더 사랑한다. 그는 그 사례금으로 자신을 응원한 갈릴리 성도들과 한국 식당에 가서 식사교제를 했다. 음식을 먹느라 정신없는 기자에게 그는 브라운에 대한 소개와 한흑사회의 연합에 관해서 말을 시작해 자신이 꿈꾸는 음악 세계와 미래, 음악을 통한 한인교회의 연합과 나눔에 관해 쉬지 않고 말했다. 그가 이날 연주회에 갔던 이유나 그 자리에서 뜨겁게 찬양했던 이유는 친구 브라운 때문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글렌뷰에서 94번 프리웨이를 타고 남쪽으로 20마일 가까이 가다 63가에서 내려 고개를 들면 바로 보이는 건물이 안디옥교회다. 이 교회는 ‘결코’ 부유해 보이지 않는 이 지역을 오랜 세월동안 지키며 흑인 커뮤니티의 안식처가 되어 왔다. 이미 1950년대에 성도 5백명에 이르렀고 지금은 1천명이 넘는 교세를 자랑하고 있다. 교회의 역사와 규모에 걸맞게 묵직한 벽돌로 지어진 건물 안에는 예수 승천을 그린 거대한 벽화와 비둘기가 날아가는 벽화가 보인다. 그 비둘기 벽화 밑에는 침례탕이 자리하고 있다.
9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교회에는 올해로 57주년을 맞은 시니어 콰이어가 있다. 이들은 매년 성탄이 되면 흑인만이 가진 열과 정(熱-情)을 발산하는 메시아 연주회를 연다.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로 마음껏 몸을 흔들며 자유롭게 외치는 이 연주회는 한인교회나 백인교회에서 보기 힘든 이른바 ‘흑인 스타일’로 진행된다.
전 목사가 매년 이곳을 찾는 이유는 베이스 윌리 브라운 때문이다. 1930년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브라운은 당시 흑인으로서는 드물게 음악으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며 왕성히 활동해 NBC 방송국의 한 쇼에서 솔로이스트를 맡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집회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음악인이자 교수이며 크리스천으로서 브라운은 흑인 사회 내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힌다. 이제 곧 80세를 맞이하는 그도 전 목사와 함께 이 음악회에 매년 서 왔다. 그는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 무대까지 왔고 무대에서도 거동이 불편해 일어서고 앉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듯 보였다. 그러나 일단 베이스 솔로 연주가 시작되자 교회당의 스테인글라스가 흔들릴 정도로, 뿜어내는 듯한 강한 중저음의 연주로 “역시 브라운”이라는 찬사와 기립박수를 받았다.
전 목사는 시카고리릭오페라단에 있을 때 브라운을 알게 됐다. 인종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친구가 된 그들은 20년째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시카고리릭오페라단 역사상 최초로 입단한 동양인 연주자였던 전 목사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당시 오페라단의 고참이었던 브라운은 알게 모르게 많이 도와 주었다. 이날 무대에 선 소프라노 타냐 소보손, 앨토 비키 핏맨도 모두 20년 지기들이다. 베이스인 브라운은 자신이 출연하는 공연에서 자신의 목소리에 적합한 테너가 없을 때 꼭 전 목사를 초청했다. 흑인 커뮤니티 내에서 한인인 전 목사가 성가대 지도도 하고 15년째 메시아 연주회에 초대받아 온 이유도 브라운의 목소리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전 목사의 실력을 그들이 높이 사기 때문이다. 반대로 전 목사도 자신이 지휘자로 있는 목사부부합창단 창단식 등에 브라운을 초청해 미국 주류사회도 인정하는 실력을 한인교계에 소개한 바 있다.
▲전성진 목사가 안디옥교회의 메시아 연주회에 참석해 테너 솔로를 연주하고 있다. 전 목사 뒤에 앉아 있는 사람이 윌리 브라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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