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것을 깨닫기 전까지 인생의 방황은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의 원천과 그 끝 지점을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요13:3) 이것을 아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정체감이 분명합니다. 죽음 앞 위기 가운데서도 안정감을 누립니다.

이렇게 자기 정체성이 뚜렷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내가 며칠 밖에 살지 못한다고 울고 불고 난리를 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남은 시간 동안에 해야할 일을 묵묵히 수행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가 된 줄 아셨을 때,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요13:1). 그리고 죽음을 앞둔 날 저녁, 제자들과 식사 후에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렸습니다. 대야에 물을 담고 제자들의 발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씻어주셨습니다.

더러워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의 더러워진 발도 주님이 감싸주시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의 냄새나고 추악한 부분도 덮어주시겠다는 의지였습니다. 그들의 가장 밑부분, 가장 낮은 열등감이나 자존감도 주님의 뜨거운 사랑의 감정으로 포용하시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사랑하실 수 있으셨을까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조금은 아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따르기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자존심도 버리야만 하는 길, 신분도 내려놓아야 하는 길, 내 욕망이나 욕심을 불태워버려야 하는 사랑의 길은 참으로 어렵고 불가능해 보입니다. 주님이 가신 그 사랑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분명합니다.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가능한 길을 열어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15:9)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이 내 마음에 거하는 동안에는 우리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용서가 가능해집니다.

이제 교회 창립 33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주님의 사랑하심과 죽으심의 정신을 본받습니다. 내가 죽어짐으로 교회가 살아나고, 내가 낮아짐으로 교회가 영광받으며, 내가 나를 버릴 때 하나님이 나를 붙잡아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사명과 과제는 (1)내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2)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입니다.
(3)우리 자녀들을 세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예수님의 제자들로 길러내는 일입니다. 안으로는 자신을 성찰, 밖으로는 용서와 사랑, 다음 세대를 향하여는 인재양성이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요 목표입니다.


우리를 불러주신 주인께 감사하며, 그의 종 이기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