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부터 한국 토착화 신학을 주도한 논쟁의 주인공이자 ‘멋’을 말하는 신학자, 유동식 교수가 시카고에서 3차례에 걸쳐 학술강연을 한다. 자랑스런 한국 신학을 미국 신학계와 한인 이민교회에 알리고 그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창립된 한국기독교연구소(Center for Study of Korean Christianity, 소장 서보명 교수)가 창립 2주년을 맞이해 여는 세미나 “그리스도와 한국 문화”에서다.

9월 22일 오후 5시 게렛신학교(205호)에서 열리는 “복음과 풍류도-존재의 궁극적 원리에 대하여”, 24일 오후 5시 시카고신학교(George Commons)에서 열리는 “동방의 등불-한국 문화의 역사적 사명에 대하여”, 28일 오후 5시 맥코믹신학교(Common Room)에서 열리는 “장미와 연꽃, 그리고 무궁화-제3천년기의 문화적 전망” 등 강의 주제에서 볼 수 있듯이 기독교와 한국 문화에 대해 관심있는 한인 목회자, 신학도라면 진보, 보수를 무론하고 한번쯤 들어 봐야 할 강의다.

60년대 유동식 교수의 토착화 신학에 대한 논의는 존재론적이고 정태적인 서구의 기독론에서 벗어나 기능주의적이고 역동적인 한국의 기독론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역사적인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풍류신학, 예술신학, 삼태극 등 그의 신학을 대변하는 신조어들이 탄생했다.

평생을 한국문화와 종교의 역사 속에서 한국적 기독교를 찾으려 시도한 그는 단군신화에서부터 신학적 탐구를 시작한다. 유교, 불교, 선교가 한국에 전파되기 전부터 한국인의 심성에 존재하는 가장 근원적 종교성은 바로 단군신화로부터 대변되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심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던 고유 신앙이며 유 교수는 이것을 ‘풍류도’라 부른다. 유 교수는 신라의 화랑들이 풍류도를 즐기며 수련했다는 삼국사기의 최치원 난랑비문으로부터 풍류는 자연을 즐기는 멋을 상징하며 자연 안에 깃든 천령(天靈)과 교제하고 신인합일을 추구하는 것이었다고 본다. 하나님에 해당하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이 된 웅녀와 결혼해 단군이 태어난다는 신화적 내용은 이 신인합일 사상의 원류이며 이 사상이 한국인의 심성 저변에 흐르며 풍류도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이 풍류도는 한민족의 얼이며 사회 유지의 원리이며 각종 외래 종교를 토착화시켜 받아 들이는 기반이 됐다.

풍류도의 신인합일 사상은 기독교 부활신앙과도 맞닿아 있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라는 구절은 그리스도를 매개로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되는 것이며 유 교수는 이것이 부활 신앙이고 한국의 상황에서 풍류도와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신과 인간이 신의 아들을 통해 하나되는 것, 즉 부활은 단군신화의 신인합일 사상이나 이를 이어받은 풍류도와 무관할 수 없다. 그는 이런 조화를 삼태극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한 것도 풍류도의 기본 원리인 ‘멋스러움’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한국적 기독교를 찾아 가려는 유 교수의 노력은 신학계로부터 “기독교의 무교화”라는 극심한 비판에 부딪히기도 했으나 서구신학 일변도의 한국 신학계에 히브리인들에게 임한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한민족에게도 임한, 전 인류를 위한 하나님을 찾는 데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다.

1922년생으로 올해 87세인 유 교수는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서 수학하고 감리교신학대를 졸업한 후, 배화여고 등에서 교직에 몸담았다 미연합감리교회의 장학금을 받아 보스턴대학교로 유학했다. 이후 스위스 에큐메니칼 연구원, 일본 도쿄대 등에서 공부했으며 일본 국학원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감리교신학대 교수, 연세대 신과대 교수 등을 역임하다 은퇴했다.

한편, 22일, 24일, 28일 학술강연 후 29일에는 유 교수의 신학전집 기념 출판회가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