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운다”는 말은
내가 다른 사람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할 때는 여유있는 말이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배움의 대상이 될 때에는 참으로 부담스런 말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앉는 자세가 구부정해서
지금에 와서는 보기에도 좋지 않고,
일 년에 한 두 차례 허리에 가벼운 통증이 오는 벌을 받고 있다.

그래서 자식들은 안 그랬으면 하고 바랐는데
아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앉은 자세가 구부정해서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그 애가 어릴 적 이야기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아들의 등을 손으로 받치며
“허리 펴!”를 외치곤 했는데
어느 날 구부정하게 앉은 자세로 텔리비전을 보는 내 허리를 손바닥으로 치면서
아들이 나와 똑같은 어조로 “허리 펴!” 라고 말하고는 웃었던 것이다.
이런 난감함.

요즈음 일이다.
나는 아내로부터,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에
다리를 떠는 버릇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아들이 말할 때마다 다리를 떨었다.
그러더니 딸마저 아내로부터 같은 걱정을 듣게 되었다.
그 때 딸이 제 엄마에게 한 말,
“엄마. 나만 떠는 거 아냐. 아빠 떨지, 오빠 떨지, 우리 다 떨어.”
아내가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 보는 것으로 사건이 종료 되었지만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이러고 보면,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11:1)”고
당당히 말한 것은 얼마나 대단한가.
따로 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누군가에게 내 삶을 통해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교육학에서 말하는 바 ‘드러나지 않은 교과과정 (Hidden curriculum)’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당신은 누군가에게 교재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