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임금을 세우는 일이나 세상의 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때를 따라 진행되고 결정되고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형편과 처지를 너무나 불쌍히 여기셨나 보다. 미국에 영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1986년 미국 정부는 불법 노동자 대사면을 단행하고 그에 대한 법령을 공포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불법 체류자들에게 합법적인 신분을 취득하는 계기가 주어졌다. 미주 한인 사회에서도 뉴욕 한인회를 비롯하여 언론사에서 대대적으로 우리 한인들도 노동 사면의 기회를 적극 활용할 것을 당부하고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고 나섰다. 특히 뉴욕 중앙일보 사에서 모든 서류 작성 및 신청을 대행해 주는 봉사 활동을 하기 시작하자 많은 한인들이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나도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서 중앙일보를 통해서 노동 사면 신청을 했다. 서류를 작성하면서도 이 일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역사하고 계신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이 길이 아니고는 가족을 만날 수도 없고 합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과정에 어려움이 없게 해주시고 순탄하게 잘 진행되어 영주권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나는 날마다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이 시점에는 불법 체류자들을 도와주겠다는 내용의 광고와 더불어 많은 이민 사기꾼들이 기승을 부렸기 때문에 피해를 당한 한인들도 많이 속출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에서는 노동 인력이 필요했고, 저들을 합법적으로 노동자로 인정해 주며 또 세금을 내도록 해서 정부도 실속을 챙기는 일거양득을 노리는 정책이라고들 했다. 그런 정책으로 인해 시행되서인지 특별한 범죄 행위만 없으면 노동 사면을 허락해 주는 듯했다.
그러나 서류 심사는 까다로웠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충 서류를 요구했으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충 서류 접수 마감일 3일을 남겨두고 나는 마이애미에 있는 농장 주인의 사인을 받아야 했다. 함께 룸메이트를 하는 지 선생도 안 집사도 정 선생도 같은 입장이었다. 우리는 대책을 논의한 끝에 마이애미로 직접 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급한 상황이라 이백호 전도사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전도사님이 이은수 목사님과 장로님들에게 말씀을 드리게 되었고, 당회에서 전도사님이 동행하시는 조건으로 교회 밴으로 다녀오라는 허락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우리는 다섯 명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출발했다. 장장 24시간을 달렸다. 잠깐 기름 넣는 시간과 식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세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운전을 했다.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모른다. 그런데 마이애미에 도착하자 이상하게도 차가 너무나 조용한 것이었다. 하도 이상해서 주유소에 들어가서 점검해 보기로 했다. 후드를 열고 보니 팬 벨트가 끊어져 있는 것이었다. 또 배터리는 다 나가 버렸고, 더욱이 놀란 것은 네 바퀴가 다 닳아서 하얀 실밥들이 너덜너덜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정신이 아찔했다. 이 상태로 달려왔다는 것을 생각할수록 정말 끔찍했다. 작은 돌멩이 하나만 있었어도 전복사고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셨다는 확신 속에 감사가 절로 나왔다.
다음날 바퀴 네 개를 새것으로 갈았다. 농장까지는 마이애미에서 세 시간을 가야 된다고 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농장으로 달려갔지만 농장주가 출타 중이었고 저녁 늦게나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없이 기다렸더니 9시가 넘어서 돌아왔다. 사정을 말씀드리고 사인이 필요해서 왔다고 하니 난색을 표하면서 돈을 요구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약간의 사례를 했더니 선뜻 사인을 해주었다. 다음날 우체국에 들러 등기로 서류 일체를 이민국으로 보낼 때 매우 감격스러웠다. 마감 시간을 열두 시간 남겨 놓고 발송 스탬프를 찍었으니까 말이다. 차량을 내어주신 교회에도 매우 고마웠고, 모든 일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다시 한 번 체험하며 돌아오는 길에는 넉넉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려 드렸다.
두어 달이 지난 후에 이민국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내가 제출한 서류는 이민국의 모든 요구 사항들을 충족시켰다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채 안 되어 노동 허가증을 발급받고 영주권 신청과 더불어 가족을 초청하는 서류를 접수했다. 나는 이제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 속에서 날마다 힘써 기도하면서 주의 일에 더욱 더 열심을 냈다.
나도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서 중앙일보를 통해서 노동 사면 신청을 했다. 서류를 작성하면서도 이 일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역사하고 계신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이 길이 아니고는 가족을 만날 수도 없고 합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과정에 어려움이 없게 해주시고 순탄하게 잘 진행되어 영주권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나는 날마다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이 시점에는 불법 체류자들을 도와주겠다는 내용의 광고와 더불어 많은 이민 사기꾼들이 기승을 부렸기 때문에 피해를 당한 한인들도 많이 속출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에서는 노동 인력이 필요했고, 저들을 합법적으로 노동자로 인정해 주며 또 세금을 내도록 해서 정부도 실속을 챙기는 일거양득을 노리는 정책이라고들 했다. 그런 정책으로 인해 시행되서인지 특별한 범죄 행위만 없으면 노동 사면을 허락해 주는 듯했다.
그러나 서류 심사는 까다로웠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충 서류를 요구했으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충 서류 접수 마감일 3일을 남겨두고 나는 마이애미에 있는 농장 주인의 사인을 받아야 했다. 함께 룸메이트를 하는 지 선생도 안 집사도 정 선생도 같은 입장이었다. 우리는 대책을 논의한 끝에 마이애미로 직접 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급한 상황이라 이백호 전도사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전도사님이 이은수 목사님과 장로님들에게 말씀을 드리게 되었고, 당회에서 전도사님이 동행하시는 조건으로 교회 밴으로 다녀오라는 허락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우리는 다섯 명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출발했다. 장장 24시간을 달렸다. 잠깐 기름 넣는 시간과 식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세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운전을 했다.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모른다. 그런데 마이애미에 도착하자 이상하게도 차가 너무나 조용한 것이었다. 하도 이상해서 주유소에 들어가서 점검해 보기로 했다. 후드를 열고 보니 팬 벨트가 끊어져 있는 것이었다. 또 배터리는 다 나가 버렸고, 더욱이 놀란 것은 네 바퀴가 다 닳아서 하얀 실밥들이 너덜너덜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정신이 아찔했다. 이 상태로 달려왔다는 것을 생각할수록 정말 끔찍했다. 작은 돌멩이 하나만 있었어도 전복사고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셨다는 확신 속에 감사가 절로 나왔다.
다음날 바퀴 네 개를 새것으로 갈았다. 농장까지는 마이애미에서 세 시간을 가야 된다고 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농장으로 달려갔지만 농장주가 출타 중이었고 저녁 늦게나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없이 기다렸더니 9시가 넘어서 돌아왔다. 사정을 말씀드리고 사인이 필요해서 왔다고 하니 난색을 표하면서 돈을 요구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약간의 사례를 했더니 선뜻 사인을 해주었다. 다음날 우체국에 들러 등기로 서류 일체를 이민국으로 보낼 때 매우 감격스러웠다. 마감 시간을 열두 시간 남겨 놓고 발송 스탬프를 찍었으니까 말이다. 차량을 내어주신 교회에도 매우 고마웠고, 모든 일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다시 한 번 체험하며 돌아오는 길에는 넉넉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려 드렸다.
두어 달이 지난 후에 이민국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내가 제출한 서류는 이민국의 모든 요구 사항들을 충족시켰다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채 안 되어 노동 허가증을 발급받고 영주권 신청과 더불어 가족을 초청하는 서류를 접수했다. 나는 이제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 속에서 날마다 힘써 기도하면서 주의 일에 더욱 더 열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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