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욕의 한인 신학교 졸업식이 한창이다. 미주 한인신학교의 졸업생 대부분은 보통 대학의 졸업생과 달리 나이가 지긋한 만학도들이다. 늦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들어온 학교라 그 졸업장의 의미도 더욱 특별할 것이다. 올해 뉴욕신학대학을 졸업한 박희택 전도사(M.Div과정, 뉴저지 세계로교회 전도사, 65세)에게도 졸업은 그 의미가 남달랐다. 졸업에 앞서 박 전도사에게는 '입학'부터가 특별한 사건이었다.

박 전도사는 21년전, 그러니까 미국에 오기 1년 전인 1988년 꿈을 통해 자신이 다니게 될 뉴욕신학대학을 보았다. 결혼한 직후부터 주님의 은혜를 강하게 체험했던 박 전도사는 꿈을 통해 그가 다니게 될 학교도 미리 본 것이다. 예수는 믿었지만 체험이 없는 신앙을 갖고 있었던 그에게 주님은 그렇게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셨다.

주님께서는 입버릇처럼 '미국 가서 살아야지'했던 그의 말대로 1989년 박 전도사의 가족을 미국으로 옮기셨다. 박 전도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 한국에서 1년 반 동안 했던 신학 공부를 뉴욕에서도 이어가고자 했다. 그러다 1991년 2년 전 꿈에서 만난 이병규 학장(뉴욕신학대학 초대 학장)과 학우들을 만나게 됐다.

미리 그가 갈 길을 알고 계셨던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뉴욕신학대학에 입학한 박 전도사는 신학을 공부하며 그의 신앙과 믿음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또한 공부하는 가운데 부족한 부분은 교수들과 학우들의 도움을 받아 따라갈 수 있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등록금이 걱정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늘 장학금이나 후원금을 받아 해결할 수 있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때로는 어떤 이가 패물을 팔아 박 전도사의 등록금을 내주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박 전도사에게 신학생 아무개를 도우라는 뜻을 전해 다른 이의 등록금을 담당하게도 하셨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박 전도사가 학부와 대학원을 마치기까지 점심 식사 준비를 맡아 하게 하셨다. 3년의 대학원 과정이 3년 반으로 연장된 것도 점심 준비 때문이었다. 집에서 키운 신선한 야채는 물론 점심 거리를 잔뜩 싸들고 뉴저지 에디슨에서 7년 반을 다녔다. 뉴저지에서 45분 버스를 타고 오다가 10분을 걸어 7번 트레인으로 갈아타고, 7번 트레인에서 내려서 또 10분을 걸어야 했다. "그 모든 과정을 늘 기쁘게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 주님의 은혜"였다고 박 전도사는 간증했다.

졸업 후에도 학교를 위해 물질과 기도로 후원하겠다는 박희택 전도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온 길이니 앞으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가겠다."고 전했다. 덧붙여 박 전도사는 "천하에 제일 귀한 것이 생명"이라며 "전도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