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처럼 생존이라는 말이 마음에 닿는 적은 없다. 그 만큼 살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정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좌우로 빠질 길도 없고 뒤로 되돌아 갈 수도 없다. 마치 전쟁터에서 적들에게 사방으로 포위를 당한 것 같은 심정이다. 이런 역경에 처 할 때에는 지금까지의 삶에 어떤 변화가 올 수 밖에 없다. 그 변화가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또 다른 면의 인생이 시작 되는 것이다.

극소수의 사람이기는 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섣불리 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절약하며 인내로 가까운 장래에 희망의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또한 특수한 사람들은 역경을 기회로 삼고 긍정적으로 창조의 삶을 찾는다. 어느 쪽이 현명한가? 답은 물론 세 번째 형이다.

사실 생존이라는 말의 뉘앙스는 살기 힘든 상황에서 강한 생의 의지 하나로 역경을 이기고 사는 것을 말한다. 나아가서는 시련을 활용해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돌산 위에 한 그루 진달래나무가 가냘프게나마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가 봄이 오면 아름답고 예쁜 꽃을 피우는 것과 비교 될 수 있다. 실낱같은 뿌리가 어떻게 단단한 바위틈을 비비고 들어가고, 때로는 옆으로 돌고 돌아 장애물을 뚫고 물줄기를 만나 수분을 끌어 올려 생존하며 싱그러운 꽃을 피운다. 그것은 아마도 힘이 아니고 생존의 의지다.

동물 세계도 같은 원리다.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북극에 살아 있는 동물은 백곰뿐이다. 나약한 짐승들은 기후 좋고 물과 풀이 많은 곳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백곰은 그 곳에 남아서 먼저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우선 자신들의 외형부터 그 곳에 적응시켰다. 온 천지가 희기에 자신들도 흰 털로 바꾸었다. 또 그 곳에는 풀도 열매도 곡식도 없고 잡아먹을 동물도 없다. 있다고 하면 두꺼운 어름 장 밑에 있는 물고기뿐이다. 그것을 찾아 먹으면 살고 못하면 죽는다. 곰들은 살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 어름 밑으로 들어가 물고기 사냥을 한다. 어떤 때는 두꺼운 어름을 자기의 머리로 망치처럼 몇 번이고 내리쳐서 구멍을 내고 그 속의 고기를 잡아먹는다. 그것이 생존이다. 그러한 강한 백곰에게는 대항할 천적이 없이 자신들의 왕국을 이루고 산다. 강자에 따르는 보상이다.

필자는 어린 나이에 6.25 전쟁을 겪었다. 하루아침에 한국은 지옥으로 변했다. 약 삼년간 계속된 전쟁은 한반도를 완전히 황폐케 했다. 80만 명의 양쪽 군인들이 희생되고 250만 명의 민간인 살상자가 나고 300만 명의 피난민이 생겼다. 대부분의 가옥과 산업기관은 파괴 되었다. 그 포화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생존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돈도 권력도 명예도 가족도 내가 생존해 있을 때에 하는 말이다. 산다는 것 자체가 황홀 한 것이다. 그 것을 모른다면 그의 인생은 비극이다.

필자는 성경에 나오는 <나오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그 녀는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흉년이 들자 네 식구는 곡식이 많은 모압 이라는 지방으로 살기 위해 이민을 갔다. 장성한 아들들을 그 곳에서 장가 들이고 이제 살만 한 때에 장수 같았던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나오미는 슬퍼도 두 아들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동안 더 큰 시련을 겪었다. 계속해서 2~ 3년 안에 건장한 두 아들이 별 이유 없이 죽었다. 나오미는 세상을 살아갈 의욕을 잃고 죽을 때에 고향에서 죽자는 마음으로 과부된 둘째 며느리 룻을 데리고 고향으로 힘없이 돌아왔을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쓰리고 아팠을까!

그러나 나오미는 그 곳에서 새 역사를 시작했다. 살기 위해서 두 과부가 밭에 떨어진 이삭들을 주어 연명 하지만 마음은 살아 있었다. 그 곳에서 신앙 좋은 보아스에게 룻을 지혜롭게 시집보낸다. 신앙의 유산은 묘하게도 이방인 룻을 통하여 이어 갔다. 그 후손에서 성군 다윗이 나오고 또한 예수가 태어났다. 그 모진생애를 악착 같이 살 뿐 만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이룬 것이다. 그 것이 생존의 참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