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4일 다르푸르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에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과 관련, 평화협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래함 목사는 이날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알-바시르 대통령의 전쟁범죄 및 다르푸르에서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혐의는 명백하지만, 그는 평화협상의 핵심에 있는 인물”이라고 강조하고, 이번 조치로 그동안 이뤄져 온 평화협상 노력이 어려움에 놓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난 달 수단 정부군과 반군 간에 평화협상을 개시하기로 한 합의가 체포영장 발부로 무효화될 수 있다며, “이는 수단 내의 혼돈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또 이번 체포영장 발부에 영향을 받아 정부군이나 반군 측에서 군사행동에 나설 경우 이는 더 많은 희생자와 난민 양산을 의미한다고도 우려했다.

그래함 목사는 이어 최근까지도 면담을 통해 바시르 대통령의 평화협상에 대한 의지를 확인해 왔다며, “그는 설득이 가능한 인물”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국제구호단체 사마리아인의지갑을 통해 수단에서 구호활동을 펼쳐 온 그래함 목사는 2003년부터 바시르 대통령과 수차례 면담을 가져 왔다.

그래함 목사는 “나 또한 정의의 실현을 보기 원하지만, 수단의 평화에 대한 내 열망이 이보다 더 크다. 정의는 ICC보다 더 높은 힘에 의해 실현될 것이며, 평화 없는 정의는 공허한 승리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ICC에 따르면 바시르 대통령은 수단 다르푸르 지역에 의도적으로 공격을 지시, 많은 민간인을 살해하고 강간, 고문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직 정부 수반에 ICC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 역시 양분되고 있어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에서는 ‘인권 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마땅한 심판’이라며 지지하는 반면, 수단과 가까운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국가들은 평화협상 중에 발부된 체포영장이 사태의 격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수단 정부는 수단이 ICC의 설치 근거인 ‘로마정관(定款)’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ICC의 사법권이 행사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이번 결정에 불복한다는 입장이다. 수단 정부가 계속해서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면 ICC는 유엔 안보리에 이 문제를 회부할 수 있지만, 사실상 바시르 대통령의 신병 인도는 힘들다는 것이 전반적인 분석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 1583호는 로마정관 미가입국들도 ICC의 영장 집행에 협조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강제성은 없기 때문이다.

한편 수단 정부는 체포영장 발부 다음날인 5일, 국경없는의사회를 비롯해 수단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10여 개 국제구호단체에 추방명령을 내리며 일종의 보복 조치에 나서고 있다. 이들 단체 대부분은 다르푸르 사태로 발생한 난민들의 구호사업을 진행 중이어서 철수시 난민들의 생존이 위협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이번 체포영장 발부에 항의하는 바시르 대통령 지지세력의 시위와 이와는 반대로 체포영장의 조속한 집행을 촉구하는 시위도 연일 벌어지고 있어 또다른 유혈사태 발발에 대한 불안감도 고조되어 가는 분위기다.

◆다르푸르 사태는: 수단 정부의 ‘아랍화 정책’으로 인한 차별에 반기를 든 다르푸르 지역의 아프리카계 비아랍인들이 정부군과 정부의 지원을 받는 아랍계 민병대에 대항해 투쟁해 온 사태. 2003년 비아랍인들이 SLA, JEM 등 반군을 조직해 봉기하자 수단 정부는 아랍계 민병대인 잔자위드를 동원, 다르푸르 공격에 나섰다. 수단 정부의 보호와 지원 아래 잔자위드는 다르푸르 지역에서 약탈, 폭력, 강간, 몰살 등 무자비한 만행을 자행해 지난 6여년간 민간인 20만여 명 이상이 희생되고 270만여 명의 난민이 발생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2004년부터 아프리카연맹(AU)의 개입으로 평화협상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