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브라운 박사. ©크리스천포스트
▲마이클 브라운 박사. ©크리스천포스트

기독교 변증가인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 박사는 최근 크리스천포스트(CP)에 '낙태를 찬성하는 목사는 몰락에게 제사하는 기독교인과 같다'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다음은 해당 칼럼 내용.

0급진주의자들, 페미니스트, 무신론자가 되어 워싱턴 D. C. 거리에서 시위하며 '낙태할 권리'를 외치는 것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상원 후보로 나선 라파엘 워녹(Raphael Warnock) 목사가 성경을 이용해 낙태를 정당화하는 것처럼 '낙태를 찬성하는 목회자'가 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이는 도덕적인 타협이며, 신학적으로 혼돈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워녹 목사는 자신의 입장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지난 12월 8일 "난 낙태를 찬성하는 목회자"라는 글을 올렸다. 더 심각한 것은 이 글을 21만 5천 명 이상이 좋아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50만 팔로워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이다.

어떻게 목회자가 낙태를 지지할 수 있는가? 어떻게 복음의 전파자가, 성경을 가진 자가, 자궁의 태아를 죽이는 것을 지지할 수 있는가? 어떻게 아무런 자격도 없이 낙태를 하고, 그러면서 임신 9주의 태아를 죽일 권리를 주는가?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비극인가?

그러나 이 같은 그릇된 열정을 가진 자가 워녹 목사 혼자만이 아니다. 낙태를 반대하는 한 동료가 우리 도시에 살고 있는 한 낙태시술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낙태 시술로 번 돈을 교회의 십일조로 낸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일을 했다고 믿었다.

이 동료는 또 내게 조지 틸러(George Tiller·임신 후기 낙태주의자로서, 낙태반대론자에게 살해당한 인물) 박사가 자신이 방금 낙태시킨 아기에게 세례를 주는 사진을 보내주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슬퍼하는 부모에게 일이 마무리됐음을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동료는 몇 년 전 나와 함께 도심 지역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을 만났다. 이들을 중요한 낙태 반대 기도 운동에 초대한 것이다. 그 중 한 명의 목사가 "우리 교회에서 방금 젊은 여성의 낙태를 돕기 위한 모금을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신성모독자나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로서 낙태를 외치는 것은 그렇다 치자.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며 성경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낙태를 지지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래서 워녹 목사의 트윗은 낙태반대론자들의경멸을 불러일으켰다.

릴라 로즈(Lila Rose)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는 기괴하다.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자녀들의 무고한 피 흘림을 전하는 것이다. 어떻게 감히 (낙태찬성론자들이) '목사'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가?"라며 분노하는 글을 올렸다(슬프게도, 그녀의 팔로워는 워녹 목사의 절반이지만, 그녀의 트윗을 좋아하는 이들은 2,500명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낙태를 찬성하는 '기독교인'의 주장은 어떤 형태인가? 그것은 자궁 속의 아이가 완전한 인간의 신분이 아닌 태아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많은 경우, 낙태가 엄마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이나 가족의 재정 상태로 인한 딱한 선택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12세 소녀가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강간을 당해 원치 않는 (완전히 충격적인) 임신을 하게 된, 비극적인 경우를 의미할 수 있다. 이는 아이에게 평생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이다. 누가 강간범의 아기를 강제로 길러야 한다고 하겠는가?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면 누가 돌볼 것인가?

또 심각한 기형이나 생명을 단축시키는 조건 등을 갖고 태어난 아기들의 또 다른 비극을 의미할 것이다. 확실히 몇 달간 극심한 고통을 겪고 수십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출산한 아기가 아직 어릴 때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보다, 자궁 속에서 아기의 삶을 끝내는 것이 더 낫다.

그렇다. 낙태에 관해 기독교적으로 들리는 주장들이 있다. 다만 모두 이 한 가지 사실을 무너뜨리고 있다. 성경은 자궁에서 아이를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자궁에서 아이에게 생명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출산 후 중증 장애아를 죽이는 것이 잘못인 것처럼, 출산 전 중증 장애아를 죽이는 것도 잘못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목숨을 걸고 버려진 아기들을 구조했을 뿐 아니라, 매우 공격적으로 낙태를 반대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다른 기사에서 난 낙태에 반대하는 입장에 대한 중요한 성경적 토대에 관해 적었다. 그러나 지금은 워녹 목사에게 간단한 요청을 하고자 한다. 수 년 전 낙태를 했고, 아직도 그 결정에 대해 후회하고 고민하는 여성들과 대화를 나눠 보라. 많은 눈물을 흘리며 과거에 있었던 악(낙태)에 대해 말해 줄 부모들과 대화를 나눠 보라.

6천만 명이 넘는 아기들의 유골, 즉 작은 팔다리와 눈과 발, 손가락, 뇌와 심장 옆에서 "난 낙태찬성론자"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낫겠다. 그리고 생명을 사랑하시고, 정의를 사랑하시고, '이들 중에 가장 작은 자'에게 관심을 보이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면서 그렇게 해보라.

하나님께서 회개를 허락하시길, 워녹 목사여, 지금 당신의 손에 피가 묻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