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동역자 레이몬드 코(Raymond Koh) 목사는 납치된 지 18개월이 지났지만,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납치사건은 각자 조용히 자신의 신앙에만 충실하던 말레이시아 교계의 영적 각성을 가져왔고, 서로 연합하게 만들었다."
최근 서울 광진구에서 만난 말레이시아 A선교사는 중국계 레이몬드 코 목사가 2017년 2월 13일 괴한들에 납치된 이후 일어난 말레이시아 교계의 변화를 이같이 전했다.
말레이 무슬림 대상 전도는 불법... 6개월간 중국계 목사 5명 실종
화교 교회를 개척해 목회하던 코 목사는 30년도 더 전에 말레이 무슬림을 향한 비전을 받고, 교회를 사임한 후 전적으로 무슬림 사역에 뛰어들었다. 16년 동안 개종자는 한 사람도 없었으나, 17년 째부터 열매가 생기면서 무슬림 출신 기독교 개종자(MBB, Muslim background Believer)를 양육하며 가정교회로 인도하는 사역을 활발하게 진행했다. 코 목사는 지난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 페달링 자야에서 다섯 대의 차량과 두 대의 오토바이가 동원된 가운데 복면을 쓴 남성들에게 납치됐다. 1분도 안 되는 납치 과정은 근처 CCTV에 모두 담겼다.
현지 사역자들은 코 목사가 종교적 동기로 납치된 것으로 보고 있다. 헌법으로 이슬람을 국교로 명시한 말레이시아에서는 무슬림 전도를 법적으로 금지하며 무슬림을 대상으로 한 전도자나 MBB에 대한 박해가 심각하다. 2016년 11월부터 2017년 4월까지 6개월간 코 목사를 포함하여 실종된 중국계 목사만 5명이다. 납치 영상이 발견된 코 목사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현재까지 행방불명 상태다.
말레이시아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A선교사는 "함께 동역하던 코 목사의 납치사건이 전역에 알려진 이후 말레이시아 화교 교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며 "화교 교회들은 주일 대예배 때 국가와 정부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경찰서 앞에 가서 코 목사의 생환을 촉구하는 촛불 기도회를 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납치 사건 이전에는 화교 교회가 주일 대예배 때 국가와 정부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며 "정부의 핍박을 두려워하던 이들이 공공장소로 나가 촛불을 든 것도 굉장히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더욱 놀랄만한 일은, 1957년 말레이시아 건국 이래 최초로 말레이시아 교회 연합기도회가 작년에 열린 것이다. 레이몬드 목사의 생환을 위한 연합기도회였으나, 각 교단 총회장 등이 참여하는 연합모임이 진행된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고 A선교사는 설명했다.
첫 연합기도회에서 레이몬드 목사의 부인 수산나를 만난 A선교사는 눈물을 쏟았다. 그때 수산나 사모와 다른 MBB 여성은 "우리는 레이몬드 목사가 살아 돌아오면 너무 기쁘지만, 살아 돌아오지 않아도 기쁘다. 말레이시아가 변화되고 축복받으라고 하나님이 이 일을 허락하셨으므로 우리는 너무 기쁘다"며 위로를 해주었다고 했다.
수산나 사모는 이어 A선교사에게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럽고 경황이 없었다. 왜 내 남편이냐고, 왜 레이몬드냐고 하나님께 묻기도 하고, 살아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며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셨다. 심정적으로는 (레이몬드가) 살아있다고 믿는데, 지식적으로 이미 살해당하지 않았을까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A선교사는 "저도 목사이고 선교사로 말레이시아를 위해 목숨이라도 내놓겠다며 왔는데, 나의 헌신과 신앙은 생명을 내어놓는 그들의 신앙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큰 도전을 받았다"며 "그들이 핍박 속에서도 담대히 신앙을 지키는 것이 많은 위로와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현지 사역자들에 의하면 코 목사가 살아있을 경우, 정글 속에 위치한 종교범 수용소에 갇혀있을 가능성이 크다. 종교범 수용소의 존재 여부는 한 MBB 자매가 종교경찰에 체포돼 1년 반 동안 종교범 수용소에 감금돼 있다 탈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한편, 코 목사의 가족은 수산나 사모와 세 자녀가 있으며, 작년 11월 초 코 목사의 63세 생일을 기념하여 한자리에 모이기도 했다. 막내딸은 미국 고든칼리지에서 공부하다 아버지의 납치 후 휴학하고 본국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말레이 목회자들이 학업을 끝까지 마쳐야 한다며 펀드를 조성하여 올해 1월부터 다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역은 중단됐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셔"
코 목사의 실종 이후 그와 함께 일하던 동역자들의 사역은 중단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고 계셨다. A선교사는 "지난 4월에는 모르는 중국계 목사님께 전화가 와서, 여자 교인의 남자 친구가 예수님을 알고 싶어 하니 대신 만나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며 "이 남자친구는 무슬림으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경공부 후 자신의 생일날 바닷가에서 세례도 받았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에서 무슬림 출신 기독교 개종자들이 세례를 받을 땐 아래의 5가지 질문에도 대답해야 한다. △예수 믿는 것으로 감옥 갈 각오가 돼 있는가 △예수를 믿음으로 직장을 잃을 각오가 돼 있는가 △예수 믿는 것으로 가족과 친구들과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할 각오가 돼 있는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이슬람 정부가 운영하는 신앙 재교육센터에 갈 각오가 돼 있는가 △예수를 믿음으로 칼로 목 베임을 당할 각오가 돼 있는가
A선교사는 "지금 당장 죽어도 좋으니 세례받기 원한다는 이 형제와 함께 손을 붙잡고 물속에 들어갈 때 정말 감격스러웠다"며 "지난 1년여 간 동료의 납치로 인한 힘듦과 10여 년의 사역이 위로받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날 밤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형제를 위해 케이크에 촛불을 한 개만 꼽고 생일파티를 할 때, 형제가 이렇게 고백했다. "한국 K-POP, K-드라마를 좋아하는데 한국 목사님이 오셔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도 주시니 너무 고맙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알고 싶어 5년 동안 매일 아침 '나에게 예수님을 전해줄 사람을 보내 달라'고 기도했는데, 한국을 좋아하는 제게 한국 목사님을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말레이시아 교회들은 이슬람 세력과 정부의 핍박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슬람 선교를 위해 기도하거나 무슬림을 상대로 전도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A선교사는 "앞으로 말레이 교계의 영적 가치관이 전환되고, 무슬림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 전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며 "작년 코 목사의 납치사건 이후 일어난 현지 교회의 변화들이 말레이시아의 복음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말레이시아의 종교 인구 분포=무슬림이 인구의 약 61%를 차지하며, 불교인이 약 20%, 기독교인이 약 9%, 힌두교인이 약 6%다. 헌법에 이슬람을 국교로 명시하지만, 말레이계(인구의 62%)가 아닌 중국계(24%), 인도계(8%) 등의 종교 자유는 보장한다. 단, 말레이계 무슬림에게 전도 활동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 때문에 말레이계의 99.3%가 무슬림이며, 복음주의자는 0.45%에 불과하다. 중국계는 불교인이 약 83%, 기독교인이 약 11%, 도교인이 약 3%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