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과 고대 근동 우주론

존 H. 월튼 | 강성열 역 | 새물결플러스 | 372쪽 

고대부터 동방과 서방은 서로 경쟁관계 속에서 지속되어 왔다. 그럼에도 주전 3세기부터 알렉산더에 의한 헬레니즘을 필두로 세계의 사상사는 헬라 중심적으로 넘어오게 된다. 그리고 그 방식과 문화를 라틴(로마, 서방)이 이어 받는다. 결국 현재의 학문과 사고의 방식은 헬라-라틴 방식이 표준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신학 또한 헬라의 형이상학적 존재론에 천착해 있다. 물론 헬라의 형이상학적 존재론은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와 신학 또한 정치라는 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함으로 인해 서방교회와 동방교회가 분열하게 되고, 결국 시리아, 카파도키아, 동방교회 등의 소중한 그리스도교 유산들이 지금 우리 한국 개신교회에 단절되어 있으며, 또한 지금 우리는 동방교회의 인지환경과 사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인지 환경

아직도 한국교회 다수의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계시'라는 단어를 신비적 개념으로만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성경은 성경으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식의 견해가 팽배하다. 그래서 지금 시급한 것은 '정경형성'과 '신학(교리) 형성'에 관한 바른 지식과 이해를 가지는 것이다.

또한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배경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신학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모든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성령의 영감을 받고 깨닫는 기록자는 자신의 인지환경과 문화적 상황과 인식의 진공상태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아무리 우리에게 말씀하셔도, 우리가 인식할 수 없고 인지할 수 없는 것을 우리가 깨닫거나 영감을 받지는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는 한 사람이나 한 시대에 쏟아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성장과 발전에 따라 '점진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기록될 때의 인지 환경과 그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기능론적 창조관

지금까지 우리는 '헬라-라틴'의 사유 방식에 근거한 신학과 성경해석을 해 왔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헬라-형이상학의 존재론적 관점에서 해석해 왔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를 '물질'과 '존재'의 창조주로만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신론과 형이상학은 존재의 근원과 그 원인을 증명하는데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본서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유대 주변의 고대 토판들을 통해 모세가 창세기 1장을 기록할 당시의 인지환경을 조사함으로써, 창세기 1장의 창조 내용이 존재론적 창조관이 아닌 '기능론적' 창조관임을 밝히고 있다. 즉, 기능론적 창조관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는 핵심 주제가 아니다. '왜 빛이 필요한가? 바람은 왜 창조되었는가? 해와 달과 별은 무슨 목적으로 창조되었는가?' 등의 목적론적 관점이 고대근동의 인지환경이었다는 것이다.

책의 구성

1장에서는 인지환경에 근거한 여러 해석학을 비교하면서, 해석학에 있어 인지환경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한다. 2장은 고대 근동 문헌에 나타나는 창조 이야기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류한다. 3장에서는 고대 우주론을 중심으로 여러 인지환경과의 관계들에 대해 설명한다(이 부분부터는 반드시 읽어보라). 4장에서 드디어 창세기 1장을 기능적 창조의 관점으로 풀어간다.

마지막 5장은 결론으로 이스라엘이 공유했던 광범위한 인지환경을 설명한다. 즉, 이집트와만 공유하는 것, 메소포타미아와만 공유하는 것, 이스라엘만의 독특성을 분류함으로 창세기 1장이 고대근동의 인지환경을 공유하지만, 창조의 내용이 고대근동 여러 문헌들을 참조하거나 종합하는 식의 아류작이 아님을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안식

지금까지 존재론적 관점에서 제7일에 나오는 하나님의 안식에 대해 많은 해석과 연구들이 있지만, 그 중 어느 하나 혹은 그 모든 것을 종합해도 하나님의 안식으로 마무리되는 창조에 대해 명쾌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능적 창조 관점은 이 우주의 창조가 하나님의 성전 완성을 의미한다(인간은 그 성전 안에서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하기 위해 지음받았으며, 이 우주는 하나님 자신의 입장과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인간의 입장과 필요에 맞춰지어진 하나님의 집으로서).

또 이집트의 노동력 확보를 위한 인간창조, 메소포타미아의 '제의'를 위한 창조관과 확실히 구별하며, 창세기 1장 마지막 날 하나님의 안식은 당시 고대근동의 신에 대한 초월적 인지환경을 넘어, 이 우주가 바로 자신이 거할 성전(하나님의 집)이며, 그 완성을 통해 이제 그 집에 거주(내재)함으로 안식한다는 참여적 창조 완성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설명해 준다.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이 지극히 종교제의적 신앙생활에 국한돼 있는 현실의 모습이 매우 메소포타미아의 창조 목적(신전중심의 우주관)과 유사하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필자는 본서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읽기를 추천한다(현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존재론적 창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 기능적 창조관으로 존재론적 창조관을 대체하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존재론적 창조관과 기능적 창조관은 상호 경쟁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관점으로 병행된다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예상한다. 특히 설교자, 그리고 창조과학자들은 본서를 필독하기를 추천한다. 왜냐하면 본서를 통해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강도헌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제자삼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