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목회자 치유 세미나, 사진은 내용과는 상관 없습니다.
(Photo : ) 한 목회자 치유 세미나, 사진은 내용과는 상관 없습니다.

일찍이 신학을 하고 사역을 하게 된 나는 특히 사역자들은 감정을 느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꾹 참고 내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 특히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역자들은 좋은 감정만 드러내야지 나쁜 감정은 절대 드러내선 안 된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든 걱정과 근심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이 되고 사역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슬프고 힘든 감정을 자주 드러낸다면 그것은 자녀와 사역자로서의 결격사유가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나님의 자녀이고 사역자이기에 믿음의 크기가 커야 되고 그 결과 무조건 웃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믿습니다"를 연신 외치게 하며 목소리의 강도가 믿음의 크기인양 판단하기도 했다.

  아프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빨리 감정을 추슬러서 무조건 기뻐하고 감사하는 모습만 보이기를 강요했다. 그래야 성도와 타인의 본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사하셨고, 내 마음의 모든 걱정과 염려를 사라지게 했기 때문에 나는 항상 기뻐해야 된다는데...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내면에서 삐죽이 올라오는 항변과 가슴의 상처는 갈수록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억울하고 힘든 감정을 꾹꾹 누를수록 짐은 점점 더 무거워졌고, 감사는커녕 하나님의 존재마저 의심되기 시작했다. 어려운 환경이 있을 때마다 아프고 힘들어 죽겠는데도 무조건 감사만 해야지 그 외에 다른 감정들은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감정의 상처는 성경을 다시 읽고 신학을 바르게 배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품위 있게 안 그런 척 미소 짓고 있지만 내면은 썩어 문드러지는 모습이 흉측하게 느껴지면서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나의 치유와 회복은 감정을 누르고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건강하게 터뜨리는 방법을 배우는 것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목회자를 비롯한 지도자들은 자신보다 남을 더 배려하고 도와줘야 된다는 강박감에 자신의 필요와 요구를 무시하기 쉽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도와줘야 된다는 명분하에 나보다 못한 남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분주하다보니 자기는 항상 남의 위에 있어야 하고 남을 가르쳐야 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받는 일에 익숙하지 못해 누구의 충고도 받아내기 힘든 사람이 되고 만다. 그것이 바로 교만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특히 이러한 현상은 목회자나 상담자를 비롯한 지도자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도자든 팔로워든지 가장 우선적인 초점은 나의 갈증과 필요를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것이다. 편견이나 치우침이 아닌 건강한 사랑을 받은 자가 남을 사랑하고 도울 수 있다. 나의 욕구와 필요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러한 도움은 오래가지 못하고 피로와 탈진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위선과 가식이 아닌 진정성 있게 남을 돕는 다는 것은 먼저 자신의 욕구를 하나님 앞에서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고, 자신의 부족함이나 연약성에 대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이다.

지도자이기 전에 상처받고 깨지기 쉬운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과의 진솔한 대화와 만남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 진실해야 한다. 그 욕구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간절하게 간구하고 기다려야 한다. 자신이 안고 있는 모든 걱정, 염려, 앞날에 대한 불안, 맘의 상처 등의 짐을 하나님 앞에 아뢰고 겸손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우리 인간은 많은 욕구를 지녔고 그 욕구를 충족하면서 의미를 추구하고 자아실현도 하는 존재이다. 우리의 본성이 그것을 추구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다. 끊임없는 갈증과 의미추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 되고 따라서 우리의 에너지고 방편이 된다. 때론 실패하고 넘어지면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고 따라서 절대자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간절히 원하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든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아버지의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이다. 충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누리는 자가 남을 돕고 치유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충분히 아뢰고 그 아버지의 보살핌과 치유를 받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엔 나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돕는다는 생각은, 무의식중에 타인에게 등급을 매기고 수준의 정도를 자신이 판단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됨으로 자만심이란 나락에 떨어질 수 있는 아주 어리석은 발상이다. 자만심은 자기기만으로 자신을 속이고 상대를 속이는 것과 마찬가지고, 영혼을 병들게 하는 지름길이다.

우리가 타인과 비교하는 대부분의 가치는 상대적인 것으로서 개인, 가치관, 문화, 나라 등에 따라 높고 낮은 정도가 다르다. 절대적인 가치가 결코 될 수 없다. 상대적인 가치에 인간 수준의 높낮이를 매기고 등급을 정하는 것은 교만과 우월감 혹은 열등감의 발로이다. 그 수준이나 등급이라는 게 지극히 세속적이고 개인적인 것이고 변화무쌍하다는 게 심각성이 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자만심과 열등감에서 나오는 것인지 부끄럼을 가져야 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뭔가를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하나님의 위로와 사람들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 '나' 임을 인식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들어갈 때 영혼은 건강하고 안전하게 남을 도울 수 있다.

목회자를 비롯한 모든 리더의 길은 장거리 마라톤과 같아서 지속적인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경직되고 폐쇄적인 자만심으로 인한 만성피로와 탈진현상으로 남은커녕 자신도 돌볼 수가 없다. 영적으로 병들어 있기에 자정능력이 떨어지고 타락과 방종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에 빨리 헤어 나와야 한다.

진실되고 진정성 있는 지도자는 먼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욕구를 겸손되이 아뢰고 자신의 필요를 주님 앞에 솔직하게 구하는 자이다. 자신의 상처와 분노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자이다.

[출처:http://blog.daum.net/park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