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대표,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Photo : ) ▲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대표,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심리적 정신적 고통이 너무 커서 지독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생각하곤 했다. 

 

신의 능력이 치유로 나타나기를 바라며 단번에 해결해주실 하나님이 잠깐이라도 인간세상에 나타나셔서, 이 아픈 분을 만나서, 단번에 치유해주셨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아무리 전문가라 할지라도 한 사람의 치유를 위해서는 인간적 한계 속에서 오랫동안 치유의 시간을 견디며 기다려야 하기에 언제나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신적 능력으로 치유가 임하면 그토록 극심한 고통의 시간을 현저히 줄여줄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에서 일어나는 염원이기도 한 것이었다. 

최근에 개봉했다가 금방 내려진 영화, [오두막]을 본 내담자분들이 폭풍눈물을 흘리며 치유에 도움이 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이 영화는 오래 전 미국에서 출간된 소설을 영화화한 치유영화라고 할 수 있다. 

 

깊고 절실한 치유의 이야기가 담긴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는 호응이 적어서 금방 영화관에서 내려져버려서 안타깝다. 영화의 내용은 기독교적이지만 치유의 의미에서는 비기독교인도 똑같은 감명과 치유의 영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이른 시간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어느 장면에서부터 나 역시 눈물이 쉴 새없이 쏟아졌다.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에서 한 사람의 아픔을 조금씩 치유해가는 장면들......

형언할 수 없는 크나큰 상처를 받은 한 남자와 눈높이를 맞춘 치유적인 대화를 하면서 그 남자의 가장 극심한 고통의 자리에서부터 치유가 서서히 일어나는 장면들, 그리고 이해와 공감어린 태도로 기다려주는 사랑의 능력, 심리치료의 진행 과정과 다르지 않은 치유의 과정들.....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고통들, 그 자리마다 상처입은 사람들의 절규같은 질문들... 여전히 우리는 다 알 수 없지만, 상처입은 남자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치유되어갔다. 

그 남자의 치유는 끔찍한 기억의 현장인 오두막에 찾아가면서 시작되었다. 우리 모두는 고통의 기억을 지우려고 애쓴다. 그 고통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면 치유가 안 된다. 고통이 재현되는 듯한 통증이 몰려오더라도 상처의 현장으로 갈 때부터 치유는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죽을 힘을 다해 찾아간 오두막에서 지독한 상처를 가진 주인공 남자가 치유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일주일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단 일주일씩만 나타나 상담자가 되어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며 생각했다. 

'왜 나여야 하나요?' '왜 구해주시지 않았나요?'라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어린 시절의 내 목소리와 겹쳐서 들렸고 또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와 공명하며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20대의 한 내담자는 이 영화를 두번이나 본 이후에 소감을 이렇게 치유일지로 썼다. (허락을 받아 그 치유일지의 일부를 올린다.)

---오두막 영화를 보았다. 영화관에서 그렇게 많이 눈물을 쏟아낸 적은 없었다. 이렇게 많이 운 건 처음이었다.....  다 보고나니 무언가 내게서 씻겨 나간 기분이 들었다. 왜 제 곁에 있어주시지 않았나요? 왜 저에게 그런 슬픔을 주셨나요?, 주인공의 대사에 너무 이입되어 나의 어릴 때가 떠올라 감정이 북받쳤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도 대사 한마디한마디가 마음에 날아와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나도 엄마 아빠를 용서하자고 마음 먹었다. 천번을 용서하려 노력해도 될까말까 할지도 모르지만....내 안의 울타리 안에서만 바라보며 선과 악을 판단내릴 수 없다는 것,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왜 하필 나였을까. 왜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슬프고 외로운 어린시절을 보내야만 했을까. 왜 하필 나만 그랬어야 했을까. 이것에 대한 물을들에도 어느 정도 답을 달 수 있을 것 같다. 그 영화 속엔 상담 박사님이 내게 전해주고 싶은 모든 것이 들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박사님은 내게 신의 역할을 하고 계시는 중이었다. 영화 한 편으로 내 마음가짐이 한 순간에 바뀔 순 없겠지만 무언가 한 계단 더 올라가 새로운 문을 연 느낌이 든다. ---

---엄마와 함께 오두막을 보았다. 나는 두번째 보는 건데도 어찌나 눈물이 흐르던지, 눈물이 뺨을 타고 목까지 흘러내리며 옷을 적셨다. 이 영화를 엄마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상영하는 곳이 없어 멀리까지 가서 봐야했지만 보고나오니 엄마도 나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사 하나하나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확연히 이해하며 마음 속에 꾹꾹 주워담기 바빴고 어느새 영화관은 울음소리로 가득찼다.....엄마도 눈물을 흘리며 치유의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엄마와 나의 영화를 본 관점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어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 엄마와 함께 깨달음을 공유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붙잡은 것도 참 좋았다.----

이 내담자의 치유일지는 나에게 또다른 의미로 다가왔고 큰 감동을 받았다.이 영화는 누군가에는 잔잔한 감동을 줄 것이고, 누군가에겐 큰 깨달음으로 다가갈 것이다. '영화치료'는 넓은 의미에서는 예술치료의 범주에 속한다. 한 편의 영화가, 우리 마음 속 깊이 박혀 있는 고통과 그 의미를 해석하게 해주는 깨달음으로 연결되어 치유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여러분들도 이 영화, 오두막을 보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 속에 가시로 박혀 욱씬거리게 하는 상처들을 속속들이 깊이 들여다보며 더 많은 치유를 이루길 바란다. 우리가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지독한 고통과 깊은 슬픔이 배어있는 그 곳, 오두막으로 돌아가서, 조금이라도 더 치유를 이루길 바란다. 치유를 이루고나서 사랑의 하나님도 진정으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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