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지난 20일 존 번연의 천로역정(합질) 게일선교사 번역 초판본 2종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천로역정(天路歷程,ThePilgrim's Progress)>은 영국의 청교도 작가 존 번연(1628∼1688)의 소설로 1678년 초판이 나왔다. 꿈의 형식을 빌어 이야기를 풀어낸 책으로 '기독도'라는 남자가 '장차 멸망할 도시(장망성)'를 떠나 '천성'을 향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 크리스천이 인생의 여정에서 욕망과 싸우며 사탄의 도전 앞에서 거룩함을 이뤄간다는 이야기로 구원과 성화의 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 존 번연(John Bunyan)

저자 존 번연 (John Bunyan)은 1628년 11월 영국 베드포드의 엘스토에서 태어났다. 번연의 아버지는 떠돌이 땜장이어서 가난하게 살았고 자식들에게 충분한 교육을 시키지 못하였다. 번연은 겨우 쓰고 읽는 정도를 배웠을 뿐이다. 그러나 독서를 좋아하여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책을 닥치는 대로 구해 읽었다. 특히「성경」을 탐독하였고 존 폭스의「순교자」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번연의 소년시절은 감수성이 강하고 풍부한 상상력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1644년 번연이 16세일 때 6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7월에 동생 마거릿이 죽었다. 8월에는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데려왔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번연은 난폭하고 사나운 동네의 골목대장이 되었다.

1644년부터 1647년까지는 찰스1세 왕당군에 대항하는 크롬웰의 의회군에 징집되어 3년간의 군대생활을 하였다. 크롬웰의 철기병대는 전장에서나 막사에서나 고도로 엄격한 훈련을 받았으며 노름도 않고 술도 마시지 않았으며 촌락에 접근해도 민폐를 끼치지 않았다. 군 생활에서 청교도 교리를 접할 수 있었고 크롬웰군이 가진 경건한 신앙생활에 큰 감명을 받았다.

제대 후 1649년 마리아라고 하는 매우 경건한 여성과 결혼하였다.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책 2권을 결혼선물로 가지고 왔다. 평범한 사람이 하늘에 이르는 길(The plain man's pathway to HeavenㆍArthur Dent)과 경건의 훈련(The practice of pietyㆍLewis Bayly)이다. 이 책을 통해서 번연은 쉽고 친숙한 격언을 가지고서도 통렬한 표현을 할 수 있으며 대화체 형식의 글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리아는 거친 번연을 인내와 섬김으로 받들었고 약점을 공격하기보다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충고해서 스스로 깨닫게 도왔다.

1650~55년까지는 번연의 신앙이 점진적으로 성장한 시기였다. 번연의 일생에 중요한 영적 선생인 존 기포드 목사도 이때 알게 되었다. 1653년 번연은 성요한 교회의 정규회원이 되어 평신도 설교자로 봉사하였다. 그해 첫번째 아내인 마리아가 사망하였다.

1659년 번연은 둘째 아내로 엘리자벳을 맞이하였다. 기포드 목사가 죽은 후 번연은 설교할 기회가 많아 졌다. 그러나 1660년 찰스2세의 왕정복고로 청교도 전성시대가 끝나고 성공회를 영국의 유일한 국교로 복귀시키고 비국교도 성직자들을 교회에서 축출하였다. 번연은 비국교도로 성직을 받지 못하였으나 설교를 계속하였으므로 설교금지령을 위반하여 12년 (1660~72)간 감옥생활을 하였다.

1672년 찰스2세는 비국교도들에 대한 종교관용을 선포하여 번연은 5월 석방되었다. 출감 즉시 번연은 베드포드의 비국교도 침례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1675년 다시 박해가 시작되어 6개월간 투옥을 당했는데 이때 <천로역정ThePilgrim's Progress)>제1부를 집필한 것으로 전해진다. 1678년 천로역정(제1부)이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 때문에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되어 제임스2세가 번연을 국교도로 모시기 위해 여러가지 유혹을 하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아 성공하지 못하였다. 1684년 천로역정 제2부를 출간하여 천로역정을 완성하였다. 1688년 번연은 재산상속관계로 생긴 어떤 부자간의 갈등을 화해시키기 위해 런던에 갔는데 이때 비를 맞고 열병으로 사망하였다.

천로역정

<천로역정(天路歷程,ThePilgrim's Progress)>의 출판과 게일 선교사

<천로역정> 제1부는 1677년 12월 22일 인쇄가 끝나고 1678년 2월 18일 출판면허를 얻는다. 1677~78년 런던의 폴트리에 있는 피콕 서점의 사장 나타니엘 폰더에 의해 발행되었다. 초판에 이어 같은 해 재판이 간행되었고 생전 11판을 내는 동안 상당한 내용증보가 이루어졌다.

<천로역정>이 서양에서 최초로 번역된 것은 1682년, 네덜란드이다. 그 이후 1685년에는 프랑스, 1703년에는 독일에서 네덜란드판의 중역으로 간행되었다. 동양에서는 네덜란드판의 중역으로 간행되었다. 동양에서는 1853년 중국에 체류하고 있던 영국선교사 번스(W.C.Burns)가 중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한역본이 나왔고 이때 서명을 천로역정(天路歷程)으로 지었다. 이후 일본과 한국에서는 같은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촌상준길(村上俊吉)이라는 사람이 중국어본의 중역으로 1876~77년 칠일잡보(七一雜報)에 연재한 것을 1879년 우등희봉(佑藤喜峰)이 가필하여 동경의 십자실서(十字屋書)에서 최초의 번역본을 발행하였다.

국내에는 1895년 장로교 선교사 제임스 스카스 게일과 부인 깁슨이 공동 번역해 소개했다. 당시 한글로 번역된 '텬로력뎡'은 평양 장대현교회 길선주 목사가 읽고 감명을 받음으로써 1907년 평양 대부흥을 이끌어낸 원동력이 됐다. 성결교의 이성봉 목사도 전국을 다니며 천로역정 부흥회를 개최할 정도로 이 책을 높게 평가했다. 이 목사는 '멸망의 도시'를 장차 망할 성이란 의미의 '장망성'으로 표현했다.

초판은 소설의 제 1부를 2책으로 나눠 목판으로 인쇄하였으며 미려한 한지를 사용하여 한 장 제본으로 만들어졌다. 책 중 삽화는 총 42장으로 당대 풍속화가 기산(箕山) 김준근의 삽화도 수록돼 있다. 기산의 이 그림은 외래종교인 기독교를 주체적으로 수용해 토착적인 전통을 반영한 한국 개신교 미술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다.

'텬로력뎡'은 개화기 번역문학의 효시로 국문학사적으로도 당시 한글보급과 한글문체를 보여주는 중요한 책자다. 최초로 번역된 '텬로력뎡' 초판본은 현대식 인쇄출판을 통해 초기 대중에게 복음을 전하는 통로로 사용되었고 한국의 기독교 신앙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95년의 초판에 이어 1910년에 나온 재판은 연활자로 인쇄되었는데 '기일목사 역 이창직 교열'로 바뀌었으며 장로교서회(Presbyterian Publication Funds)의 발행이다. 3판은 한국종교서적소책자학회 (Korea Religious Book And Tract Society)의 발행으로 1919년 요코하마에서 인쇄되었다. 재판과 3판의 삽화는 초판을 축소하여 동판으로 인쇄했으리라고 추정한다.

1920년에 나온 '텬료력정' 3판 끝에는 '본셔의 뎨이편 텬셩려행기가 츌판되었는데 그 내용은 긔독도의 쳐자가 그 남편을 따라 멸망의 셩에서 행한 것이라. 특별히 녀자와 아해의게 자미가 잇슬것이니 한번보시기를 바라옵'이라는 광고가 나와 있다. 텬료력졍 뎨이권은 '긔독도 부인 려행록'이라고 부제를 붙여서 1920년 8월 10일 신문관 인쇄 조선 야소교서회 이름으로 발행되었다. 언더우드부인(Mrs .H. G. Underwood)이 번역한 이 책에는 제1부와 화풍이 다른 삽화 10장이 게재되어 있다.

게일과 언더우드목사부인의 번역본에 이어 1936년 조선기독교서회에서 오천영의 번역으로 제 1부가 번역되었다. 이 책에는 삽화 10장이 수록되어 있다. 해방 이후 1949년부터 조선기독교서회의 오천영 번역의 재판에 이어 많은 번역본이 현재까지 나오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천로역정

<천로역정> 재조명과 게일선교사 연구 시급

게일 부부에 의해서 번역된 '텬료력뎡' 초판본은 한국 기독교 복음전파와 책의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희귀본이며, 철저한 연구와 고증이 필요한 책이다.

기독교신앙이 한국에 상륙한 19세기 한국은 열강의 간섭에 국기가 흔들리고 부패와 혼란이 극도에 달하여 민중의 생활이 참으로 어려웠던 때이다. 그러한 시대에 오늘의 고통과 유혹을 이겨내고 구원의 길을 걸어가 내세의 행복을 접하게 되는 천로역정의 이야기가 이 땅에 소개되었다. 일제의 기독교신앙 탄압에 대항하여 집단순교로 맞선 민중들의 꿈은 번연의 천로역정과 어떤 연관이 없는 것일까?

<천로역정>이 소개되고 130여 년이 넘은 오늘 한국교회는 천성을 향해 건강한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기복주의와 개인주의 신앙이 열병처럼 번지고 극심한 자본주의의 유혹앞에 오염되고 있지는 않은지 묻게 된다.

세계문학사의 불후의 명작으로, 또한 한국기독교 신앙 초기에 큰 영향을 미쳤을 존 번연의 사상과 천로역정에 대한 재조명작업과 더불어 최초로 번역, 소개하여 이방인으로서 한국의 영혼구원과 근대화, 그리고 문화개척에 일생을 바친 게일선교사의 사역에 대한 깊은 연구와 재평가가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이효상 원장(교회건강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