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희 상담사
한수희 상담사

우리 주위에는 내 탓의 달인들이 있다. 그들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자신과 연관시키며 자책하고 괴로워한다. 전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상황에서도 모든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리고 고통 받기를 자처한다. 그로 인해 상처에 취약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 생각의 이면에는 마치 온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들은 상대방의 기분, 태도, 돌연한 행동의 변화가 자신의 행동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몸이 아파서 약속을 미뤄야겠다는 연락을 받을 때 나랑 만나기 싫어서 꾀병을 부린다고 받아들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표정과 행동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불안해 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기준을 지켜나가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기준을 좇기에 급급하다. 이런 생각과 행동의 뒤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완벽주의, 그리고 열등감이 숨어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인 신호를 자신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자책감이 심해지고, 부정적인 자기상이 굳어져서 뭔가 잘못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높아지며, 많은 일에 자신감을 잃고 모든 일을 자기 잘못으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울증에 빠질 확률 역시 높아지기 때문이다.

내 탓의 달인들에게 필요한 자세는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되 그 불완전함을 자신의 무가치함으로 등식화시켜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이유는 우리가 자격을 갖춰서도 아니며, 존재 자체로 그저 사랑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을 찾으려는 불안한 시도를 멈추고, 하나님의 시선에서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 있기를 간곡히 권한다.

그런가 하면, 남 탓의 달인들 역시 있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상처를 미묘하게 권력으로 이용하여 주위 사람을 조종하려는 숨은 동기가 있든, 과거의 쓰린 경험 때문에 심리적 방아쇠(trigger)가 고장 나 있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며, 결국 자신에게 심한 상처를 남기는 것으로 종결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 탓을 할 때 상대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고스란히 내 몫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분노와 비난은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해 주지 않으며, ‘어떻게 그가 나에게 이럴 수 있지?’라는 질문 대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상담실을 찾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상처받은 사람이라고 상담실을 방문하지, 내가 상처를 준 것 때문에 괴로워서 상담을 받겠다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이 주는 상처와 받는 상처를 분리하지 않고 무조건 상처받은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면 실제로 그 사람은 어딜 가도 계속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신은 왜 자꾸 남 탓을 하며 화를 냅니까? 화를 내는 것이 당신에게 무슨 도움이 됩니까? 이 질문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다. 그 질문 대신에 우리가 먼저 꼭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은 너무 아파서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자신이 아프다고 연약한 모습이라도 보이면 대하기가 훨씬 수월할 텐데, 버럭버럭 소리지르며 화를 내는 상대를 볼 때 그 내면에 있는 아픔을 바라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은 너무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정상적 범주를 넘어서도록 남을 탓하고 화를 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상처로 인한 고통과 슬픔, 두려움을 드러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어떻게든 이 감정들을 감추려고 한다. 인정하면 자신이 상대보다 약하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 수치심, 두려움을 격렬한 분노로 표현하고 타인을 원망하는 것으로 대치한다.

무엇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었고 그 상처가 얼마나 큰지 확인하려고 하기보다는 무조건 분노하고 경멸하는 쪽을 택한다. 상처받는 고통과 두려움, 수치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상처 자체를 무효화하려는 일종의 몸부림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파괴적은 분노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내가 상처받고 고통 받는 것을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니 나를 탓하고 남을 탓하는 것으로 성급하게 결론지으려고 하지 말자. 대신에 내가 갈망하는 것이 무엇이며, 내가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 그저 잠잠히 들여다 보는 시간을 제발 갖자. 책임 소재를 따져서 분노의 대상을 자신에게 돌리거나 타인에게 돌리는 대신,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를 외면하지 말고, 바라보고 보듬어 보자. 부디 하나님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