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을 즐기는 인간(?)
인간은 가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현상이나 정보에서 어떤 특정한 규칙성이나 연관성을 찾아내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인식 작용을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를 아포페니아(Apophenia)라고 한다. 1958년 독일의 정신병리학자인 클라우스 콘라드(Klaus Conrad)가 맨 처음 사용한 개념인데, 사람은 이 같은 집착 가운데서 감정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아포페니아(Apophenia)는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으나 인간 인지(認知)와 사고(思考)의 오류와 착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해 왔다. 불분명하고 불특정한 현상이나 소리, 이미지 등에서 특정한 의미를 추출해내면서 나타나는 착각과 오인(誤認) 등을 일컫는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현상도 아포페니아(Apophenia)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는 그리스어로 '나란히, 함께' 등을 의미하는 'para'와 '이미지, 형태'를 나타내는 'eidolon(εἴδωλον)'에서 온 말로, '잘못된 연상에 의한 이미지나 인식의 형식'을 나타낸다.
이런 보기는 주변에 너무도 많다. 모양과 형질의 유사성을 질병 치료에 이용하는 동양의학 또는 의학의 대체요법이라든가, 꿈의 형상을 미래의 투영으로 보는 경우, 과거 달 표면을 보고 계수나무와 옥토끼가 있다고 연상하거나 별들의 배치를 별자리와 신화로 이미지화 한 것, 구름의 형태를 보면서 동물이나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 불분명하고 불특정한 현상이나 소리나 이미지 등에서 별난 의미를 추출해내려는 심리, 또한 최근의 화성에 설치된 파이프라인, 화성의 외계인 시체, 화성의 해골이나 고대 건축물들, 달 표면의 외계인 기지 등등 모호하고 연관성이 없는 현상이나 자극에서 일정한 이미지와 패턴을 추출해 연관된 의미를 추출해내려는 심리 현상이 모두 아포페니아와 파레이돌리아와 관련된다. 특정한 메시지가 무의식적으로 기억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서브리미널 효과(subliminal effect)'라는 이론이 있다. 한때 음악을 거꾸로 돌려 들으면 마귀가 인간의 잠재의식을 타락시키는 치명적 음모가 있다는 소위 '백워드 매스킹'(Backward Masking) 소동도 이와 관련된다.
이들 이미지는 가끔 예술적 상상력과 창작 욕구를 진작시켜 문화와 예술 등의 발전을 촉발시킨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물체나 생각들 사이에서 어떤 연관관계를 찾으려는 성향은 정신병과 창조성을 연결시킨다"는 피터 부르거(Peter Brugger)의 말처럼, 예술가들이 훗날 정신병자가 된 경우가 많은 것도 이와 연관된다. 남들과 다른 이 같은 아웃사이더적 경향이 예술적 창의성과 연관되기도 하지만, 주변에 대한 망상과 환각, 착란과 같은 정신분열 증상의 원인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착각의 심리학이 신앙적 착각으로
기독교적으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기독교인들도 착각에는 당연히 예외가 없다. 신앙적으로 볼 때 이 문제는 많은 부작용을 내재하고 있다. 개인의 신비 체험은 반드시 주관주의 신앙을 낳는다. 그리고 주관주의 신앙은 성경의 절대성을 허물어뜨린다. 신비 체험이 강조될 때 신앙은 질서를 잃어버리고 각자의 '내가복음', '자가복음'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신자 숫자만큼의 교리가 만들어지게 된다. 즉 '내가 예수를 보았고 내가 천국을 보았고 내가 지옥을 보았다. 하나님은 나를 절대적으로 특별 대우하시며 신비롭게 만나 주셨다'는 착각 속에 성경의 질서를 이탈하게 된다. 내 개인적 신앙 체험이 오직 최고인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남보다 특별히 사랑해서 특별한 복이나 은사를 주셨다거나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특별한 민족이라든가 우리 학교이야말로 하나님의 학교라는 등의 선민의식은 대단히 위험하다. 특별하기는커녕 선 줄로 알 때 무너질까 조심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은 우월적 착각(선민)에 빠지지 말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늘 겸손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신비한 진리이지만 일개 신비주의로 변질되어 버리면 위험하다. 최근 일부 기독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관적 신비 체험, 천국-지옥 체험, 길흉 예언, 점술식 기독교화 등 '신앙의 부채도사화' 현상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이 같은 현상은 누미노제(numinose)한 주관적 신앙 체험을 가지고 아포페니아적 연관성을 찾아내려는 심리적 집착에서 비롯된다.
성경은 주관적 신비주의자들이 하듯 사사로이 풀 수 있는 책이 전혀 아니다(벧후 1:20-21). 인간은 하나님을 자기 논리와 체험 속에 가두는 착각과 오류를 범하면 안 된다. 사사 시대는 바로 영적 포스트모던 시대였다. 그 영적 사사 시대가 지금 대한민국의 일부 병든 종교인들에게서 재현되고 있다. 성경과 성령의 사람들인 신앙의 정통 선배들이 역사를 통해 구축해 놓은 바른 믿음과 교리(신조)의 권위를 무시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제멋대로 가르친 일부 엉터리 신앙 지도자들의 일차적 책임이 크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www.kictnet.net)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이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