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양호 목사.
문양호 목사.

1. "빨간 선과 흰 선, 어느 쪽을 자를까요?"

영화 속에서 시한폭탄을 제거하는 주인공들의 상당수가 하는 대사 중 하나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현실 속에서 시한폭탄을 해체하는 작업이 그렇게 단순하진 않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목사가 하는 일도 대부분 시한폭탄을 해체하는 것과 엇비슷하다. 마음속에 폭탄을 안고 사는 이들이 우리 주변엔 많다. 어떤 때 그 폭탄은 정신적 불안과 어려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일어난 강남역의 불행한 사건도 그러한 것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사람들을 만나고 심방이나 상담을 하다 보면, 정신질환이나 문제를 안고 사는 이들이 상꼭 정신질환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정서적 상처와 가족의 갈등과 같은 다양한 문제를 안고 산다.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은 일종의 시한폭탄과 같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폭탄을 알아채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곤 한다. 목회자는 그런 면에서 일종의 '폭발물 해체반'과 같다. 신고가 들어와 그 폭탄을 해체하기 위해 힘쓰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폭탄의 징후를 느끼고 그것을 해체하는 일을 시도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폭탄의 위험성을 잘 알지 못한다. 자신이나 이웃들이 갖고 있는 폭탄의 성격이나 위력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 중에는 장난감용 폭죽처럼 잠깐 깜짝 놀라게 하거나 미세한 화상을 입히는 정도로 그치는 경우도 있다-상대방이 갑자기 잠깐 화내거나 가볍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것처럼.

하지만 남에게는 해를 주지 않아도 발목지뢰처럼 자신의 영혼과 삶을 불구·폐인으로 만드는 폭탄들도 많다. 또 그 폭탄이 그 차원을 넘어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 이들을 상처 주거나 해하는 것들도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생화학 폭탄처럼 자신뿐 아니라 주변인들까지 오염시키는 것이다. 비유는 좀 그렇지만, 좀비가 건강한 사람을 물면 그 사람도 얼마 안 있어 좀비로 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 속에 품은 가시는 다른 이들마저도 상처를 주고 오염시키곤 한다.

그렇기에 목사나 성도가 폭탄을 해체하는 것은 결코 가볍거나 허투루 다룰 일이 아니다. 해체하는 일만큼이나 그 폭탄을 인지하고 발견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할 줄 아는 영성을 길러야 한다.

2. 그런데 이렇게 폭탄을 해체하다 보면 난감한 일들도 많이 일어난다. 일차적으로는 그 폭탄을 품은 이들이 자신이 폭탄을 지녔다는 것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그 심각성을 모르는 경우다. 그걸 모르기에 해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게리 시니즈가 주연한 <임포스터>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필립 K. 딕의 단편소설 <스파이로봇>은-초등학교 때 읽은 이 작품은 당시 제목이 달랐다. 얼핏 생각나기로는 <나는 누구인가>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게 더 적당하지 않을까?-지구를 침공하려는 외계인들이 소설 속 주인공과 똑같은 로봇에 시한폭탄을 장치하여 내려보내 지구를 멸망시키려 한다. 첩보를 접한 정부는 주인공을 외계인으로 오해하여 추격해 잡으려 한다. 도망 다니던 주인공은 자신이 로봇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비행선이 추락한 곳으로 가지만, 그곳에서 자신의 시체를 발견한다. 결국 그가 로봇이었고, 그는 폭탄 암호였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절망적인 말을 던지고 폭발당하는 이야기다. 장황한 인용이었지만, 때 늦은 자각은 이미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남도 부지기수로 해한 이후일 경우도 많다.

3. 또 이젠 폭탄이 해체됐다고 본인이 나름대로 판단하여 상담을 중지하거나, 상담하면서 예민한 핵심을 건드릴 때 분노하면서 거북해하거나 회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전에 정신질환을 앓던 이들을 돌보았던 때가 있었는데, 몇 달 동안 노력하여 상담하거나 공부했던 이들을 병원 가서 치료를 재개하게 하는 데까지는 이끌었지만, 그것을 나은 것으로 착각하거나 이젠 자신의 힘으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해 더 이상의 폭탄 해체를 포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폭탄 해체가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폭발 시간을 지연시킨 것에 지나지 않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지금 당장 폭발하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꼭 정신질환이 아니더라도 가정 문제나 개인의 죄적 습성을 해결하지 않고 그냥 방치하거나, 그저 잠시 시간을 늦추고 미루는 이들도 많다. 그들은 나름 열심을 내어 신앙생활을 한다. 설교도 잘 듣고 성경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교에 한 번 크게 은혜를 받거나 한두 번 상담을 받은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그저 폭발 시간을 잠시 늦추거나 폭탄이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에 불과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해체되지 않은 폭탄은 결국 폭발할 수밖에 없다.

4. 하지만 이러한 일을 행하는 목회자나 그리스도인들도, 종종 이런 해체작업을 하면서 자신도 폭탄을 안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원래부터 갖고 있는 경우도 있고, 폭탄을 해체하다 본인이 오염되는 경우도 있다. 남을 돌본다는 미명하에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다, 결국 크게 폭발해 대형사고를 칠 때가 있다.

또 목회자나 영적 지도자는 앞서 이야기한 생화학 폭탄처럼 주변에 상당한 오염지구 및 폭탄을 주변 성도에게 심어 주는, 실수를 넘어선 죄를 범하기까지 한다. 자신의 폭탄을 스스로 해체할 수 있는 이들은 없다. 람보는 자기에게 박힌 총알을 직접 째서 꺼내고 상처를 꿰매며 치료할지 모르지만, 사람은 그러기 쉽지 않다. 람보도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 치료할 뿐, 등에 꽂힌 칼은 직접 치료하기 힘들다.

그러기에 폭탄을 해체하는 이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민감해야 한다. 혹시나 자기 가슴 속에 째깍째깍 시계 소리는 들리지 않는지 말이다.

/문양호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 만들어가는 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