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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신학자
제럴드 히스탠드 | 부흥과개혁사 | 278쪽 | 15,000원

'목사-신학자'. 이 제목 자체가 나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정말 목사이면서 신학자이고, 신학자이면서 목사인 그런 목회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내 간절한 열망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역교회의 담임목사다. 그런데 굳이 목사가 읽지 않아도 될 법한 책들을 읽다 보면 때로는 머리가 아프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이 책을 읽는가?' 하는 질문을 한다. 이유는 바른 신학 없이는 바른 목회를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매주 찾아오는 수많은 일들을 하는 데 있어, 가끔 이런 글들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니 그리고 주변에 보면 그런 책을 읽을 시간조차 없이 뛰고 있는 이들이 있어, 더더욱 이런 나의 책 읽기가 배부른 자의 호사 같이 느껴질 때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의 제목, 그리고 부제로 있는 '고대 교회의 목회자상 회복'은 나의 이러함에 대한 근거를, 고대 교회에서까지 찾아 제공해 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주었다.

이 책의 논의는 현 시대 목회자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어 있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사역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그 혼란으로 인해 사역적 회의와 중도 포기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의 문제는 고대 기독교가 가지고 있던 목사의 정체성인 '목사 신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목사가 어떤 기능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이 크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의 분석이 모든 목회자들의 회의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목회자들의 회의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저자는 이러한 1장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2장에서는 '목사 신학자'의 개념을 교회사 안에서 정리하여 펼쳐 보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신학자와 목회자가 분리돼 있지 않았다는 것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목회라고 하는 사역을 하는 목자가 탁월한 신학자이기도 했음을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제시한 것이다. 3장은 이렇듯 교회사 속에 이어져 내려오던 '목사 신학자'의 전통이 어떻게 깨어졌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단순히 교회의 필요라는 측면이 아니라, 좀 더 거시적 차원에서 목사와 신학자가 엄격하게 분리되는 이유가 어떤 것들이었는지를 약술한다.

책에서 내게 가장 인사이트가 있었던 부분은 4장과 5장이었다. 이 '목사 신학자'가 사라져 버린 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는 것이다. 그 답은 4장에서 교회가 신학적인 답을 갖지 못한 상태로, 5장에서 신학 안에서 교회와 관련된 요소가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각각 소개한다.

"믿음이 그 길을 잃으면, 갈망은 잘못되고 윤리는 비틀거리게 된다. 윤리가 궁극적으로 믿음에 연결되어 있는 한, 그리고 믿음을 형성하는 것이 신학의 일인 한, 적잖이 복음주의의 윤리적 빈혈은 잠재해 있는 신학적 빈혈에 원인이 있다(103쪽)."

"신학자와 목사의 분리를 통해 교회에 나타난 부정적인 영향을 상세히 진술했다. 종합하자면, 이 분리는 교회의 신학적 빈혈과 신학의 교회적 빈혈을 가져 왔다(145쪽)."

저자가 내놓는 이 분리로 인해 깨어진 교회 공동체에 대한 대안은, '목사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새롭게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목사 신학자'가 과연 어떠한 개념인지를 정리하는 부분이 6장과 7장의 내용이다. 우리가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린 것이지만 고대로부터 존재했던 '목사 신학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재해석을 정리하여 제시한다. '교회의 신학적 빈혈과 신학의 교회적 빈혈'이라는 이 심각한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결국 '목사 신학자'가 다시 나타나야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목사 신학자'를 위한 구체적인 제안의 목록이다. ①박사학위를 취득하라 ②신학을 귀히 여기는 직원을 세우라 ③관계망을 형성하라 ④연구 시간을 견고하게 지키라 ⑤교회적 신학책을 읽으라 ⑥일하는 곳을 '서재'로 부르라 ⑦연구와 글쓰기를 위한 휴가를 일정에 포함시키라 ⑧신대원생을 고용하라 ⑨교회 지도자들에게서 지지를 얻으라 ⑩사랑의 필요성이 진리에 대한 사랑을 이기게 하라.

"신학은 교회를 섬기는 것이지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신학은 시녀이지 신이 아니다. 목사가 우주적 교회를 섬기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도 구체적으로 직접 헌신해야 할 대상인 지역교회를 등한시하면, 그는 자신이 정말 교회를 섬기고 있는 것인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또한 우리의 모든 학문은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더 깊이 이끌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 것인가(227쪽)?"

저자는 반복적으로 "모든 사람이 '목사 신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강조점은 이 교회와 신학의 빈혈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목사 신학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시작했던 책읽기는, 마지막 장을 탄식하며 덮는 것으로 끝났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내가 갈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그리고 이 책에 있는 '목사 신학자'의 정체성에 대해 들었다면 조금은 다른 길을 선택했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가능성보다는 훨씬 많은 제약들을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나의 결론은 "이 책을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다. 젊은 신학도에게는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현실의 교회가 그런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결코 긍정적이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살리는 일이라는 데 공감했다면, 난관이 많은 좁은 길이지만 가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목회자로서의 소명인 '목사 신학자'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미 이 책이 말하는 '목사 신학자'의 범주에 들어가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교회와 신학의 빈혈이라는 이 문제는 결국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에게 치명적인 것이기에, 교회를 돌보는 이로서 이 현상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조치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까닭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공동체에서 이 책이 말하는 빈혈을 해소할 '목사 신학자'가 나올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 이 책은 유효하다.  

이 책을 읽고, 1부터 10까지의 전략들을 살펴보면서 결정했다. "⑦ 연구와 글쓰기를 위한 휴가를 일정에 포함시키라." 내가 섬기는 동네 지역교회의 전임과 준전임 사역자들에게 연구와 글쓰기를 위한 휴가를, 기존 휴가와 별개로 주는 것이다. 이걸 원할지 그렇지 않을지는 그들의 몫이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방식으로 나는 "이 시대에 '목사 신학자'가 꼭 필요하다"는 나의 확신을 이렇게 실천해 보려 한다.

/조영민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나눔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