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70명의 학자들이 그리스어 번역에 참여해 70인역이라고도 불리우는 이스라엘의 율법과 역사를 두루 살피고 있다. 잘 몰랐던 이스라엘 역사를 자세히 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솔로몬왕 이후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진 이스라엘은 북왕국이 먼저 앗시리아에 멸망한 뒤 철저히 유린되었다. 로마 치하의 현재 지명으로는 북왕국 지역을 다시 둘로 나누어 남쪽에는 사마리아가, 그 위에 갈릴리가 위치한 땅이다. 이 지역은 앗시리아에 의해 타민족과의 혼혈정책이 실시되어 더욱 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남유다와 거리를 두게 되는데, 훗날 선지자 느헤미야에 의해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이 추진될 때에 사마리아의 산발랏을 중심으로 훼방이 있었고 그 후로 남북이 더욱 거리가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내 의문은 여기서 출발한다. 남유다 출신의 요셉과 마리아가 무슨 연유로 저 북쪽 나사렛에 살고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마리아가 예수를 임신중일때 가이사르의 명령으로 인구조사에 임해야 했고, 법에 의해 아버지 요셉의 고향인 남유다땅 베들레헴에 도착하던 날 예수가 태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부모가 남유다 출신이고 비록 그가 태어난 곳이 유다땅 베들레헴이라 하여도 실제 예수의 고향은 갈릴리 나사렛이었고 예수도 본인의 고향을 그렇게 여긴 것으로 보인다.

참 신기한 일이다. 70인역에서 그렇게도 저주를 받았던 북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어 자신들은 그래도 하나님의 뜻을 지키고 있다고 자부하는 남유다의 바리새인들을 준엄하게 혼내는 이 역사의 아이러니가. 어찌 생각해보면 신실한 바리새인이 보기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이 북이스라엘 출신 청년이 얼마나 받아들이기 어려웠을까. 따라다니는 수제자들은 시골 갈릴리 호숫가의 어부들이었으니 진지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려 노력했을 그들이 보기에 얼마나 촌스럽고 조악했을 것인가. 하나님은 왜 아들의 고향으로 북이스라엘을 선택하였을까.

이스라엘의 역사를 들여다보니, 자신을 따르는 것이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이 마음에 더욱 깊이 와 닿는다. 하나님은 참으로 적은 수의 제자를 찾으시는 것인가. 로마제국의 각 도시에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하는 기독교인들이 모두 그러한 심각한 각오로 이 도시를 찾는 것인지 문득 마음에 의문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