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을 하늘

구름낀 하늘이 좋다. 위를 한번 쳐다보라고 신이 건네는 인사. 이불을 추스리고 아내를 가까이 안게 만드는 가을새벽의 냉기가 좋다. 수많은 사람 중에 내 옆에 누울 짝을 주심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사랑하라 마음껏. 가을 하늘 위로 지평선 저편까지 구름이 손짓한다.

5. 마가의 벗은 몸

사랑하는 친구 마가가 예수의 생애를 집대성한 책의 초안을 검토해 달라고 보내왔다. 그리스어로 적힌 다소 투박한 글과 달리 예루살렘의 부잣집 아들 마가는 부드러운 음성에 타고난 성품이 유약하다. 그의 어머니집 다락방에서 예수 사후 50일 제자들이 성령을 받아 방언이 터지고 이적을 행할 때에도 그는 조용히 관찰하는 편이었다. 수완 좋았던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바울의 첫 번째 선교여행을 수행한 마가는 그러나 선교지에서 위협을 느껴 중간에 무단이탈하였고, 바울의 심한 반대로 결국 두번째 선교여행에는 삼촌 바나바를 따라 별도로 움직이게 되었다.

바울은 자신의 은인 바나바와 크게 다툰 이때 일을 후회하는 말을 내게도 종종 하였는데 그 원인을 제공한 마가의 연약한 심정에는 오죽했으랴. 마가 역시 이 일을 두고 두고 마음에 담아 지내던 중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을 찾아와 큰 도움을 주었고 거기서 나를 만나게 되었다. 훗날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마가를 데려와 보게 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마가를 사랑하였다. 마가는 바울만이 아니라 베드로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 베드로의 비서이자 통역자로 노년의 베드로를 동행하면서 수제자가 기억하는 예수의 행적을 가장 잘 알게 되었다.

예수가 이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넘어가면서 예수에 대한 기억들에 혼선이 생겨나고 있다. 직계 제자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오류를 바로 잡을 길이 없어져 간다. 심지어 예수의 고향 가버나움 쪽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파피루스에는 예수가 어린 시절 저 멀리 인도에까지 가서 살았다는 예수가 살아 생전 한번도 언급하지 않은 이상한 이야기까지 적혀 돌아다니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의 교회들에서 예수의 이야기를 더 이상 구전에만 의지하지 말고 글로 남겨달라는 요청이 점점 들어오고 있었다. 이 일에 적격인 친구 마가가 책임을 맡았다.

예수의 공생애가 이렇게 책으로 엮이는구나 감명깊게 읽던 중 예수가 체포되던 날을 적은 내용에 마가가 남긴 뜻밖의 구절에 잠깐 무슨 소리인가 하다가 박장대소를 했다. (저자주 - 마가복음 14장 50~52절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언뜻 뜬금없어 보이는 이 짧은 에피소드 속 벗은 몸으로 도망간 청년이 누구였겠나. 마가 본인이었겠지. 이 친구 봐라. 그러니까 자기는 베드로도 도망가는 판에 그래도 끝까지 예수 옆을 지키다 잡힐뻔 했었다는 자랑을 굳이 넣고 싶었구나. 베드로와 바울의 그늘속에 평생을 살았으나 예수의 마지막에 함께 했다는 마가의 자부심과 그 와중에 벗은 몸으로 도망간 그의 유약함이 교차하며 떠올라 자꾸만 미소가 지어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