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환 목사
(Photo : ) 이상환 목사

문제제기: 솔로몬이 수용한 일부다처제를 근거로 동성 연애를 지지하는 한 교수의 글을 읽었습니다. 학생이 '한 남자와 한 여자로 이루어지는 결혼'이 성경적 결혼이라고 주장하자, 그 교수는 솔로몬이 700명의 후궁과 300명의 첩들을 둔 일을 예로 들며 한 남자와 한 여자로 이루어지는 성경적 결혼관을 상쇄하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것을 근거로 동성연애까지도 옹호했습니다. 어찌 보면 이러한 교수의 논증은 강력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좋아하는 솔로몬의 결혼 생활을 근거로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를 반증한 후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와 동성결혼(同姓結婚)을 변증하는 주장을 피력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교수가 만든 논증은 논리적 오류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솔로몬이 한 일은 다 옳다"는 잘못된 전제의 오류와 "그러므로 우리도 해도 괜찮다"는 잘못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입니다. 교수의 논증을 분석해 볼까요?

전제 1: 솔로몬이 한 일은 다 옳다.
전제 2: 솔로몬은 일부다처제의 삶을 살았다.
결론: 일부다처제는 옳다.

라는 논리가 적용된 것이지요.

논리적 결함: 논리학에서 논증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경우가 몇 됩니다. 그 중에 하나는 논증의 전제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이 거짓일 때입니다. 어떤 논증이 형식적으로 아무리 타당하다 할지라도 거짓된 전제가 있다면 그 논증은 불건전하다고 여겨저 거부됩니다. 교수가 만든 논증이 그러한 경우입니다. 교수는 "솔로몬이 한 일은 다 옳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솔로몬도 일부일처제를 따르지 않고 일부다처제를 따랐는데, 왜 그것을 죄라고 주장하는거냐?"는 논증을 펼쳤고, 결국 "한 남자와 한 여자로 구성된 결혼관은 성경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만들어 낸 후 동성결혼까지 옳다고 주장한 것이지요. 교수가 근거한 잘못된 전제가 잘못된 답을 추론해 냈고, 잘못된 답은 또 다른 잘못된 답을 유추하여 낳게 된 것입니다.  즉, 질못된 전제의 오류가 잘못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로 발전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교수가 사용한 전제가 왜 잘못됐습니까? 성경은 솔로몬이 한 일은 다 옳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온전한 인간도 아니었습니다. 그도 타락한 육신을 입고 좌충우돌했던 실수투성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았다는 이유 하나로 그를 과대평가하지 마십시오. 그가 지혜를 받은 사실이 그를 실수 하나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우리보다 좀 지혜로운 사람이었을 뿐이지 똑같이 육신과 싸워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육신에 이끌려 세상 연락에 빠져 죄를 진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우리가 닮아야 할 모델이 아닙니다. 그도 타락한 육신을 입은 인간으로써 많은 실수와 죄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어디에도 솔로몬을 닮으라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수는 이러한 사실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만약 교수의 논리가 통한다면 당대에 의인이었던 노아도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잤으니 우리도 그렇게 해도 괜찮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도 음욕을 저질렀으니 우리도 그렇게 해도 괜찮으며, 수제자 베드로도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다가 진리를 실천하지 못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말도 안 되는 추론들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당대에 의인,"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 "수제자"라는 이들의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가 이들을 과대평가하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의 무지함과 성급함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노아가 아무리 당대의 의인이었다 할지라도 그가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잔 것은 엄연한 죄입니다. 다윗이 아무리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다 할지라도 음욕을 저지른 것은 엄연한 죄입니다. 베드로가 아무리 예수님의 수제자였다 할지라도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다가 진리를 실천하지 못한 것은 엄연한 죄입니다. 이처럼 솔로몬이 아무리 지혜의 소유자라 했을지라도 혼잡한 성생활을 한 것은 엄연한 죄입니다. 이들은 그들의 죄악에 합당한 보응을 받았고, 그렇지 않았다면 받을 것입니다. 이들의 이름앞에 붙는 수식어가 이것들을 죄가 아니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하나를 더하자면 성경은 일부다처제를 금하고 있습니다. 창 2:24를 봅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고 되어 있습니다. "남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אִישׁ)도 단수이고, "여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אִשָּׁה)도 단수입니다. 한 남자에 한 여자라는 것이지요. 그 당시에는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뿐이기에 당연히 단수로 쓰일 수 밖에 없었다고요? 좋습니다. 그렇다고 백 번 양보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신 17:17은 어떻게 해석하시렵니까?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라]". "많이"라는 단어가 한 명의 여인을 지지하지는 않는다고요? 좋습니다. 그렇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고전 7:2는 어떻게 해석하렵니까?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이 구절에 사용된 "남자"라는 헬라어(ἕκαστος)도 단수이고, "여자"라는 헬라어(ἴδιος)도 단수입니다. 그리고 "남편"이라고 번역된 헬라어(ἀνήρ)도 단수이고, "아내"라고 번역된 헬라어(γυνή)도 단수입니다. 이처럼 성경이 증거하는 결혼은 한 남자에 한 여인이 만나 한 몸을 이루는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솔로몬이 했으니까 죄가 아니다"라는 주장에 속지 맙시다.  그리고 주변에 그런 주장을 펼치는 분이 계시다면 먼저 솔로몬처럼 지혜를 달라고 간구하시고, 그가 모든 것을 헛되다고 말하며 초심으로 돌아가 쓴 전도서까지 읽어 보시라고 권하싶시오. 그러면 자신의 풍기문란했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논증을 만들도록 한다는 사실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솔로몬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등장하는 의인들이 내 삶의 지표라고 생각하지도 맙시다. 성경은 그 어디에도 이들을 바라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대신 온전하시고 완전하신 예수님만을 바라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2)" 예수님께서 모델 이시라는 것이지요. (혹시 개중에 "예수님께서 모델이시라면 예수님처럼 독신으로 살라는 말이냐?"고 묻는 분이 있다면, 제 글의 논지를 아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 처음부터 다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결론: 결론은 솔로몬의 풍기문란한 결혼생활을 근거로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를 옹호할 수 없음은 물론, 동성연애까지 싸잡아 옹호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명심합시다. 성경이 증거하는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한 몸을 이루는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