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교인 늘리기, 큰 교회 건물 짓기에만 급급하며 복음을 위한 순례의 길 보다는 세상 속의 안주, 세상과의 타협을 추구하는 소수의 한국 교회의 부끄러운 모습 뒤에는 ‘순교의 피’를 흘렸던 한국 기독교의 뿌리, 믿음의 선조들의 신앙으로부터 단절이 자리잡고 있다. 9년 간 한국기독교성지순례 선교회의 부산지회장을 담당하며 한국교회 역사의 뿌리를 찾고, 선조들의 믿음을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에게 전수하는데 힘써온 김영혁 장로는 오늘날 교회가 나태에 빠진 것은 이 뿌리를 잃어버리고, 이 선조들의 치열한 정신을 망각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바탕으로 효를 실천하며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계승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역을 하고 있는 효사랑선교회는 김영혁 장로와 함께 ‘신앙의 뿌리 찾기 운동’을 기획했다. ‘신앙의 뿌리 찾기 운동’은 한국의 중요 성지 방문해 ‘올바른 기독 역사를 심어주고 선조들의 믿음을 전수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한 간증 집회를 하고 있다. 본지는 이 운동과 관련해 김영혁 장로와 대화를 나눴다.
-한국에서 어떤 사역을 했으며, 신앙의 뿌리 찾기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한국에서 기독교 성지순례 선교회 부산 지부를 운영했다. 국내에 기독교 성지 160 여 곳이 있다. 그 중 직접 방문할 수 있는 곳은 60여 곳이며 이 가운데 중요한 곳을 가이드 했다. 한국의 성지 순례가 중요하다. 성지순례라고 하면 이스라엘 성지순례만 떠올리는데 한국에도 중요한 곳이 많다. 선교사들이 한국이란 낯선 땅을 찾아와 고난, 핍박을 받으며 한국 땅에 묻히면서 까지 복음을 전했다. 그들의 어려움을 기억해야 한다. 또 우리 선조들이 핍박을 받으며 순교의 정신으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이 시대 크리스천들은 알려야 한다. 한국 교회가 순교의 정신을 잃고 나태해진 상황에서, '선조들의 신앙을 본받아 복음을 한국과 미국에 전해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의도에서 효사랑 선교회(대표 김영찬 목사)와 의논을 하던 중 신앙의 뿌리 찾기 운동을 하기로 결의를 했다.
‘우리에게 신앙을 전수해 준 신앙인들 주기철, 손양원, 최권능, 조덕삼 장로 등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바로 세우자’라는 의도에서 이 운동을 기획했다. 그 분들이 전해준 신앙 덕분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나 우리가 신앙이 얼마나 변질됐나. 이 운동을 통해 우리 신앙을 바로 세울 뿐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까지 신앙을 전수해 주고자 한다.
-한국에서는 신앙의 뿌리 찾기 간증집회를 어떻게 진행했나?
각 교회에서 신청이 들아오면, 관계되는 분들과 의논해서 그 교회 실정에 맞게 프로그램을 짜서 우리가 직접 가서 가이드 해준다. 우리 선조들의 신앙을 본 받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 그런 뜨거운 마음이 들어서 김영찬 목사님과 함께 시작하게 됐다.
-한국에서 기독교 성지순례 선교회를 하게 된 동기는?
성지순례회를 하기 전에는 은행에서 일했다. 퇴직 후, 성지순례 선교회를 맡고 있던 친구로부터 부산 지회장 자리를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아무것도 몰랐던 터라 처음엔 거부했다. 그리고 이후에 두 차례에 걸쳐 제의를 더 받았다. 그런데 마지막 제의를 받은 순간 머리가 마음에 뜨거운 영감이 왔다. 하나님의 일인데 세 번 이상 거절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억지로 맡아서 했지만 하다 보니 누가 해도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고, 할 수록 뜻 깊고 가치 있게 느껴졌다. 하나님의 일이고, 선교사의 삶 속에서 일어났던 일을 하나 하나 찾다 보니 정말 그 보다 의미 있는 일이 없었다. 8년 간 이 성지순례회 일을 하며 여러가지 어려움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맡기신 사명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했다.
-소개해 줄만한 성지는?
기역자(ㄱ) 교회로 알려진, 김제 금산교회를 통해 섬김과 엄격한 신앙에 대해 얘기한다. 조덕삼 장로는 주인이고 이자익 목사는 마부 즉 노비였다. 그런데 장로를 뽑을 때 마부가 먼저 피택되고 주인이 떨어졌다. 500년 유교 문화에서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였으나 조덕삼 장로가 직접 나가서 “이자익 장로를 지금까지 존경해 왔는데 앞으로도 그를 섬기며 교회를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모두가 잠잠해 졌다. 그는 자기의 노비였던 자를 장로로 세우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또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 목사가 신학교를 다닐 때 모든 재정적 후원을 했다.
조덕삼 장로의 이야기는 평신도에게 귀감이 될 뿐 아니고 주의 종에게도 굉장히 충격적인 이야기다. 이자익 목사는 13회 뿐 아니라 해방 후 1947년 33회, 34회 때 총회장을 세번 했다. 전후후무한 일이다.
-미주 한인들에게 전할 말?
한국에 미국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들어온 1884년으로부터 19년 후 한 민족이 하와이로 이주했다. 그것은 단순한 이주가 아니라 미국의 복음화를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듯 우리에게도 특별 사명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하셨던 ‘땅끝까지 이르러 내 백성이 되리라’는 말씀이 뜨겁게 와 닿았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한민족이 그런 포부와 자부심을 갖고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우리가 올해 추석전, 9월 1일 출국 4박 5일 동안 국내 성지를 돌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세부적인 내용은 검토 중이다. 조만간 여행사 광고를 통해 선착순 45명을 모집할 예정이다. 이스라엘에서 선교한 최국현 목사가 이 일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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